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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침공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12. 12:24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7)
이제야 학교 전경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저 시절에 이미 꽤나 낡아 있네요. 일제강점기 훨씬 이전에 지어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운동장 하나는 넓어 보여요. 거짓말 좀 보태서 지금의 학교 운동장들 두 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교문까지 걸어 나가려면 한참이겠는데요?
저 어린 것들 종아리에 알통 배기겠어요.
엎드려라 지수야. 저 아이를 땅에 눕히고 그 위에 엎드려!
예에? 무슨 소리예요? 뜬금없이 엎드리라니요? 저는 이 아이 몸을 지배할 수 없다면서요.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면서요!?
시간이 없다! 우리가 일시적인 통제권을 네게 부여하였으니 그런 걱정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어서! 그 여자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서둘러라. 꾸물거릴 시간 없어!
그들의 다급한 종용에 익숙해진 저는 큰일이 곧 벌어질 거란 걸 직감하고 거두절미 지시부터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방관자 모드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의 심신은 저와 일체화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정하게 손잡고 가로지르던 운동장 거의 한가운데쯤이었습니다. 소영의 어깨를 눌러 흙바닥에 쓰러뜨리기 위해 저는 가녀린 지수의 온 힘을 짜내야 했습니다. 돌발적인 행동에 그녀는 많이 놀랐는지 어 어 하면서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픽 쓰러져 버립니다. 백화점에서 산듯한 원피스가 흙투성이 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어안이 벙벙한 그녀는 황망한 표정으로 지수를 올려다봅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저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어깨를 힘껏 밀어 그녀를 완전히 눕히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그러고는 지수의 몸을 그녀 위에 덮어 포개어버리는 것으로 지시받은 내용의 수행을 완결하였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한껏 달구어 놓은 땅입니다. 그 뜨거운 열기에 등이 닿은 것을 생각하면 몹시 미안한 일이지만 이러한 염려가 사치일 정도의 무시무시한 사건이 들이닥치리란 걸 확신하는 저로선 그녀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미지의 습격에 떨 여유조차 주지 않고 무자비한 공포가 쓰나미보다 빠르게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철두철미한 그들조차 알려줄 시간이 없는 촉박함 속에서, 그것의 살벌한 정체가 이 한적한 변두리까지 격렬하게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은 대폭발의 형태였습니다. 핵폭발은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위력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외계인 운송자들이 하라는 대로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준 후, 눈을 감아버린 그 애들과 달리 저는 다시 전지적 관찰자가 되어 이 가공할 파괴의 신을 상하 동서남북 입체적 방향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어디서 누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공격을 감행한 것인지 제 영적 능력으로 거기까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인지한 첫 충격은 수 킬로 상공에서부터 반경 수 킬로에 달하는 폭발 현상이 계단을 밟듯이 연달아 발생하며 불과 몇 초 사이에 수 백 미터 상공까지 내려와버리는 연쇄 폭발의 광경이었습니다.
단계적 폭발의 시너지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쳐다보면 실명할 황백색 섬광이 하늘을 다 뒤덮는 착시를 유발함과 동시에 수 백 도의 고열 장막이 상공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고막을 단번에 찢어 놓고도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돌파하며 끝없이 고조되는 굉음 이른바 고요의 굉음이 낳는 기괴한 적막 현상입니다.
이 지경까지 오는 데 수 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파괴가 시작되기도 전입니다.
참극의 징조이자 서막은 대기의 흐름이 일순 멈추고 공기가 한꺼번에 증발하는 것 같은 찰나의 진공 상태입니다. 이로 인하여 생명체들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졸도 초입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그다음은 그냥 괴멸이지요. 잔인한 고통을 우회해서 죽음으로 도착하는 통로들 중 하나가 기절이고, 이렇듯 준비없이 괴물의 아가리에 팽개쳐지는 일촉즉발 속에선 유일한 방책인 이것이 마취 역할과 완충 작용을 하여 처참한 죽음의 과정을 망각케 해주는 셈입니다. 극악무도한 죽음 사냥꾼이 인심쓰듯 목숨에게 던지는 서푼어치 배려라고나 할까요. 웃기지도 않는 역설이로군요..
지수와 소영이도 예외 없이 졸도의 수순을 밟았고, 영으로 존재하는 저만 또렷한 의식을 지닌 채 해일처럼 밀려오는 참상을 맞게 되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육신이 없다는 게 이렇게 후회되기는 처음입니다.
저들의 논리 대로라면 이런 지옥 같은 체험은 영혼의 아우라에 상흔을 남기고 카르마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게 뻔한데, 저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저들의 설득과 해명에 수긍이 가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의문에 휩싸이는 이 다람쥐 쳇바퀴를 언제쯤이나 졸업할런지..
얘네들 학교가 서울 근교였네요. 저 당시 외곽 지역이라면 거의 농촌이나 진배없었지요.
이 한 번의 공격이 서울 전역을 거의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중앙의 대부분 지역은 박살 나다시피 되었고 변두리는 물론 경기도 일대까지 참혹한 피해를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핵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메커니즘이 대폭발을 야기하는 방식인듯한데 지구의 과학 능력을 한참 초월한 다른 세상 무기 체계라고 밖에는 설명 불가입니다.
불바다로 변한 상공에서 온갖 파편과 불붙은 잔해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 소행성 낙하나 화산 폭발 시에 흔히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불공들도 심심찮게 떨어지는군요. 이로써 이 무기가 소행성과도 관련 있지 않나 유추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안 그래도 낡고 허름하기 그지없던 학교인데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불이 붙어 곧 무너지려 하네요. 유리창들은 모조리 깨진지 오래지만 그것은 신경 쓸 거리도 안 됩니다. 목재가 많이 섞인 건축물이라 교실들도 대부분 크게 파손되고 화재가 나는 등 멀쩡한 교실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두 아이가 아직 교실에 남아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벽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흔들거립니다. 건물 전체가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인데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입니다. 하교 시각이 많이 지났기는 하나 이러 저러한 이유로 교실이나 교무실에 소수의 학생 교사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요. 소영이 지수처럼 말이지요. 일찍이 무더위의 열기가 점령해버린 탓에 운동장에는 늦게까지 노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다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찍 하교하였다 한들 상황이 이럴진대 근처 동네에 남아난 집이 몇이나 있을까요.
추락하는 대형 물체들이 그 자체로 포탄의 위력을 구사하여 운동장 곳곳에는 깊숙한 구덩이들이 여러 개 생겨납니다. 이에 질세라 작은 파편들도 총알처럼 공간을 할퀴며, 치명적 상처를 안겨줄 제물들을 고르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을 위한 마취제의 약발은 벌써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금은 뜨거운 후폭풍이 찰나의 진공을 대체하고 있으니까요. 이 폭풍으로 인해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은 지옥의 불구덩이 한복판에서 눈을 뜬다는 뜻인데 충격으로 다시 졸도하지 않는 이상 큰 부상을 당했거나 당할 극도의 위험이 그를 잡고 사정없이 후려 팰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
살아 돌아온 게 후회막심일 만한 실감 나는 참상을 결국 두 아이도 맞이하게 됩니다. 어쨌든 살아 있으니 저와 운송자들 입장에선 다행한 일이나 이제부터 극한의 공포를 이겨내야 할 아이들의 운명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살기로 충만한 인공 폭풍이 날아드는 흉기들의 속도를 늦춰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돌의 충격파로 몸이 들썩이고 가까운 주변에 구덩이가 파여도 아이들은 무사합니다. 아직까지는..
애석하게도 저는 무기력하여 이들의 방패막이 노릇을 전혀 못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자잔한 생채기 외에는 크게 다친 데 없이 아이들은 버텨주고 있습니다. 이런 대환란 속에서 이는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면 저 운송자들이 나도 모르는 이중의 안전장치를 가동하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공격의 양상이 백 프로 무자비한 것 같진 않다는. 70년대 지구상 무기 체계와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비교적 약한 축에 들지 않을까. 이보다 더한 가공할 무력으로 대멸종을 획책하거나 지구 자체를 절단 낼 수 있는 존재임에도 왠지 봐주고 있다는 느낌말입니다.
많이 궁금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잔인무도한 짓을 저지르는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렇다 너의 추측대로 외계 집단의 침공이 맞다. 저들은 은하 연합 문명권의 변방 행성을 근거지로 하는 일종의 우주 해적 집단이다. 기존에는 은하 연합의 일원이었으나 수 차의 쿠데타를 통해 퇴보가 진행 중인 행성이며 현재는 은하연합의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퇴보라고는 해도 지구에 비하면 극과 극일 정도의 고도 문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강성 군사 행성이다.
문명 유지에 필수적인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는 시점에서 저들은 그것을 찾아 은하계 행성들을 탐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행성들을 무력 침공하여 식민지화하는 패턴을 고수하게 되지. 이를 좌시 못한 은하 연합 지도부가 저들의 수뇌를 연합법에 따라 징계하고 복속이 허용되는 원시 단계의 자원 행성들을 따로이 지정해 주게 되는데 이곳들을 점령하려면 저들의 현 기술력으로는 부족하여 기술 향상에만 백 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실정이지. 사실상의 가중 처벌이라 저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시간문제.
은하 연합이 직접 나서 최소한의 자원을 공수하고 조달하는 방식으로 저들을 통제하였고 이에 반기를 든 신진 쿠데타 세력이 연합 몰래 건조해온 인공 행성으로 본격적인 해적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암흑에너지와 블랙홀을 이용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의 우주 항해술에 저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한계를 가진 저들의 탐사 반경에 포착되는 소수의 타겟행성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문명 발전 단계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동이 가장 용이한 지구가 우선순위로 선정되었고 저들의 자원 레이더망에 집중 매장지로 잡힌 구역이 한반도였기에 오늘의 이런 기습 침략이 현실화된 것이다.
대체 그 자원이란 게 무엇이기에 우리나라가 이처럼 엄청난 비극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재수 없게도 참..
지금 얘기해도 넌 알아듣지 못해. 고로 자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저들의 식민화 전략은 간단하다. 식민지를 대리 관할할 괴뢰국을 먼저 세우고 이로 하여금 저들에게 철저히 복종케 하는 것이다. 저들은 은하연합의 눈엣가시가 되었기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통치할 여유가 없고, 눈치 보며 적당히 치고 빠지는 전략을 활용해야만 버틸 수 있는데, 그러려면 자원 행성에 자신들을 신격화하고 맹종하는 심복을 만들어 두는 게 급선무.
도저히 거부하기 힘든 상상 그 이상의 당근을 선사하면 어떤 인간도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그런 괴뢰국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다만 겉으로 표시되지 않을 뿐. 저들은 심복을 세뇌시키고 속성으로 교육해 외계 카르텔 헤게모니의 대리자로 양성한다. 그리하여 그는, 지구에 잠입해 있는 반 은하연합 세력들과의 협력 및 연대를 도모하고 나아가 지구에 뿌리내린 은하연합 집단들과도 견제 및 협상하는 데 있어 절대 부족하지 않은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는 거지.
이거 이거.. 기분이 싸해지네요. 설마 제가 생각하는..? 에이 아니지요?
맞아. 저들은 자신들과 코드가 유사한 북한을 선정하였다. 너희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불행의 시작인 것이지. 비밀리에 회동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밝힌 후 어르고 달래며 선택을 종용하는 수법이었고, 이때 북한의 지도자를 클로킹된 인공 행성으로 순간 이동시켜 첨단 군사 기술력을 과시하면서 본격적인 당근 제시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절 강성대국을 꿈꾸고 핵무력을 염원하던 지도자는 그 이상의 대업도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오자 그만 눈이 뒤집어지게 되지. 미뤄둔 남조선 해방이 드디어 마무리되리란 꿈에 부풀어 그는 제2의 기습 남침을 명령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민족의 비극은 더욱 비참한 방향으로 되풀이된다 주모자의 생전에.
70년대에 제2의 6.25라니.. 와도 어떻게 이런 델 델꼬 오는지 원.. 빵빵한 외계 세력이 뒤를 봐주겠다 이건 뭐 해보나마나 한 싸움이네요. 우선 무기부터가 후덜덜, 쨉이 안 되니까요.
아이들은 눈만 떴을 뿐이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로군요. 이게 무슨 일인지 감이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올 수가 없겠지요. 천재지변보다 더한 이 난리를 겨우 열 한 살 먹은 아이들이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미증유의 대폭발이라 후유증조차 매섭게 발악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자세를 고칠 엄두도 못 내고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울음을 터뜨릴 뿐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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