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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싸대기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1. 14. 17:09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4)
내가 목이 터져라 불렀건만 학생 주제에 감히 선생님을 쌩까고 도망칠 생각을 해?!!
간덩이가 얼마나 부은 놈인지 어디 그 잘난 상판대기 좀 볼까?
정신이 반쯤 나간 영미의 한쪽 귀를 쥐고 예열하듯 슬슬 흔들던 그는,
안경은 안 썼어도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눈을 찡그리며,
다시 교문을 넘어서고 있는 지수를 비로소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누군지 판별이 가능한 지점에 다다르자 중년의 교사는 일순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이내 안면몰수의 무표정으로 굳어졌는데, 그렇다 해도 착잡함의 여운을 완전히 감추기에는 역부족인 듯했습니다.
지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점점 다가서고 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음에도 너무나 확연하게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새마을 부장은 짜증과 당혹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벌건 대낮 - 보는 눈이 한 둘이 아닌 - 야외 한복판에서 지수를 후려 패기에는, 이로 인한 후폭풍과 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수의 집안이 학교에 갖다 준 유무형의 혜택으로부터 이 작자 또한 자유롭지 않다는, 방증이겠지요.
나지수 욘석 봐라!? 얌전한 고양이 뭐 어쩐다더니..
엎드려뻗쳐! 새꺄!!
체벌과 구타의 경계를 넘나들기로 악명이 자자한 새마을이지만 차마 지수를 때리지는 못하겠는지, 고작 시키는 것이 "엎드려뻗쳐"네요. 그답지 않게 한발 물러서는 물렁한 모양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애꿎은 영미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위협을 선사하고 말았으니..
함께 한 아이가 지수가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아주 강력한 타격이, 공범인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수로 인해 들키고 만 "본인의 약한 모습"을 만회하고 주변이 보내는 의심의 눈길을 제거하려는
새마을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영미는
지수의 몫까지 두 배로 희생양 노릇을 해야 할 얄궂은 역할을 강요받게 된 것입니다.
여자를 무시하면서도 여자니까 많이 봐주던 이율배반적인 시대여서
그러한 모순된 행태가 뼛속까지 스며든 꼰대임에도, 이 순간 그의 억지스러운 행동은
공평함을 넘어 남자를 더 봐주는 기현상을 발생시키려 합니다.
야 이년아, 미화부장이라고 그간 이쁘게 봐 줬더니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그러고도 무사하길 바라냐 지금?
연신 쥐고 흔들어 빨개진 귀를 놓고, 이번엔 통통한 한쪽 볼을 거칠게 움켜잡아 아까보다 더 드세게 흔들어 재낍니다.
니코틴 밴 누런 엄지가 입안으로 반이나 들어간 상태에서, 영미는
미풍에 나부끼는 나뭇잎이 부러울 만큼 새마을의 완력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겨우 이 정도가 기합의 끝이 아님을,
숨죽여 지켜보던 남녀 학생들은 본인들의 직간접 경험을 토대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당하는 저 얼차려만으로도 남학생들 앞에서 얼마나 수치스러울지
격하게 감정이입 중인 몇몇 학생들은, 도저히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고 맙니다.
남녀 교사를 막론하고
체벌을 빙자해 손바닥으로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뺨을 사정없이 올려붙이던 무자비한 시절이라,
일상적으로 뺨따귀를 내어주던 말썽꾸러기들에게는 이런 장면이 별다른 느낌 없이 다가오겠지만,
지수나 영미같이 모범생 범주에 들어 강도가 약한 단체 기합 외에는 개인적 치도곤을 당할 일이 딱히 없는 학생들의 경우, 남이 귀싸대기를 맞는 모습만 봐도 감정적 동요나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여 심한 공포증에 곧잘 시달리기도 하고
자신도 언젠가는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게들 되는데, 더군다나
지금처럼 본인들이 직접 체험해야 하는 "개 같은 경우"가 온다면
이것이 바로 - 조금 과장하여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것이죠.
교사들마다 싸대기를 날리는 방식이나 버릇 등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새마을 부장의 싸대기 기술은 특징적인 쿠세가 노골적으로 도드라져 보입니다.
저 지경으로 볼따구니를 잡혔다는 건, 본격적인 제2 동작을 원활히 하기 위한 예비 동작으로서
정조준을 위한 영점 잡기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을 막아 불필요한 잡음을 미연에 방지하고,
때리고자 하는 위치에 정확히 갈기는 이른바 정밀 타격을 성공시키고자, 나름 고안해 낸 그만의 방법이라는데,
그다지 독특하지도 않고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좆같은 짓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정태의 흔들 타법은 삼 할 타율을 유지하며 팬들에게 즐거움이라도 줬지, 이건 뭐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이 악물어라 혀 잘리기 싫으면!
흔드는 속도를 슬슬 줄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서 손가락을 뗌과 동시에 다른 쪽 손바닥을 올려붙여 버리는
숙련된 싸대기 기술이 영미에게 기어코 적용되고 마는군요.
저렇게 능숙해지기 위해서 이십여 년 이상 얼마나 많은 뺨들이 희생되어 왔을까요. 그리고 또
초창기 기술 연마가 덜 된 시절엔 잘못 맞아 생기는 크고 작은 부상들이 얼마나 자주 있어 왔을까요.
그러나..
존경받아 마땅한 스승이 친히 행하시는 고귀한 사랑의 체벌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어느 누구도 감히 터치할 수 없었으니..
가뜩이나 살벌했던 (군을 포함한) 공권력 및 가부장적 권위가 남발되던 가정과 더불어
훗날 권위주의의 삼 대 결정체로 박제될 운명인 주제에,
뭣도 모르는 것들이 저 때는 저런 게 영원할 줄 알고 저리 날쳤던가.
그리고 지금도 뻔뻔하게 시절의 핑계를 대고 합리화하려 용쓰는, 더러운 꼬락서니 하고는..
털끝만큼이라도 미화하려 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라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애들만도 못 한 아니 금수만도 못 한 망나니짓일 뿐이니.
인간이라면 그 입 다물고, 남은 인생 진심으로 뉘우치며 죽음을 기다리라.
열받음의 단계에 따라 싸대기 횟수가 결정되는데
오늘은 한두 대로 마감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도 계속 엎드려 있던 지수는, 후들거리는 팔다리로 안간힘을 다해 버티며
보통 때의 겁쟁이 샌님 이미지와 치열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본인으로 인해 영미가 괜한 곤욕을 치른다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소중한 감정의 첫 번째 대상이 기꺼이 되어준 아이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당할 봉변을 대신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촉이 오자
그녀를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일단 구해내고 보자는 생뚱맞은 일념이 솟구쳤고
그것이 분연한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느낌을 지수는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앞뒤 잴 겨를 없이 벌떡 일어나 부르짖듯 울먹이며 외쳤습니다.
초주검이 된 영미가 두 대째를 맞고, 다시 세 대째가 날아오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만해요!!
뭐야!?
이 새끼가 돌았나. 뒈지기 싫으면 계속 엎드려 있어!!
걔는 잘못 없어요. 내가 도망가자고 부추겼어요.
새마을 부장과 지수 사이를 번갈아 움직이는 학생들의 시선에서
두려움과 흥미로워함이 한 데 섞여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둘 간에 팽팽한 대치가 이뤄질 줄은 상상도 못 한 만큼
흥미진진함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아이들의 편견 가득한 시선을 의식 안 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공명정대한 교사임을 이 자리를 빌려 각인시키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떠밀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계산된 처신임과 동시에,
보통 교사도 아닌 "새마을 교사"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햇병아리 학생의
용납 불가한 무례함과 돌출 행동이 촉발한, 즉흥적 응징이었습니다.
학교에 대한 지수 부모의 대대적인 지원이 잠정 중단된 시기와 맞물려 당장은 아쉬울 게 없으니
이참에 애송이 녀석을 위한 그간의 특별 대우를 잠시 생략하고 본때를 보여 줄 작정인 모양인데,
지원은 아니어도 불이익은 초래될 수 있음을 간교한 그답지 않게 간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교사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알면서도 혹은 그것을 잠깐 망각하리만치
지수의 당돌한 일탈은 묵과하기가 힘든 것이었을까요.
이것이 현실적 판단이 마비된 결과 나타난 행위인지, 이성적 판단의 결과로 나타난 의지의 표현인지는,
오직 저 교사만이 알고 있겠지요.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집안 좀 빵빵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알았어. 죽고 싶어 환장한 놈 기꺼이 그리해 주지.
영어 교사인 담임도 애들 줘 패는 데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거진 깡패 또라이급이지만 - 지수의 담임을 맡은 지 석 달도 채 안 되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 그를 건드릴 생각은 감히 못 하고 있던 실정이었는데,
교내 최초로 이 금기 아닌 금기가 지금 막 깨어지려고 합니다.
새마을 부장의 언짢은 심기에 기름을 끼얹어 버린 지수의 맹랑한 도발로 인해서 말입니다.
이제는 누구라도 가차 없습니다.
지수 역시 무시무시한 악력에 볼을 저당 잡힌 채
가혹한 형벌을 기다리는 죄수의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군요.
때리고 맞는 당사자들은 깨닫지 못하였겠지만, 근처의 사역 차출 학생들 외에도 적지 않은 눈들이
일방적 폭력이 난무하는 그러나 멀리서 보면 처연하기 짝이 없는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네요.
"복도 유리창에 붙어서" 또는 "교무실 창가에 몰려 담배를 태우면서" 목격을 합니다.
교사들의 폭력성에 길들여져 무감각해진 아이들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가벼운 심리로 차창 밖 맹수를 구경하듯 합니다.
다만 사파리 공원을 여러 번 관람하여 표정들이 하나같이 무덤덤하거나 시큰둥할 뿐이고요.
이와 달리 교사들은 저마다 표정에서 복잡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별을 떠나 유순한 성향의 교사는
겉으로 내색은 못해도 저런 상황 자체에 안타까움 나아가 비애감이 드는 눈치였고,
짜릿한 손맛깨나 느껴 본 (구타가 익숙하여 중독이 돼버린) 교사는
때리는 자에게 감정이입하여, 맞는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증폭하는 모양새입니다.
몇 명 되지 않는 구경꾼들 가운데 눈썰미나 촉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담임도 끼여 있었는데,
명색이 담임인지라 꽤나 먼 거리에서도 저 어린 말썽꾼 희생자가 자기 반 지수임을 확신하였는지
누군가의 노획물(?)로 추정되는 망원경까지 동원하여 생생한 장면을 감상하고 있네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띤 채로 말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자기 반 학생이 저리 당하고 있는데 이토록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요.
더구나, 보통의 학생도 아니고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 지수가 저 정도로 죽사발이 될 만큼 잘못을 저지를 리 없다
생각해야 정상일 것 같은데,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는 식의 어물쩍 넘기려는 태도가 오히려 엿보이고 있으니,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자신이 간절하게 하고 싶었으나 눈치 보여서 여태 그러지 못했던 걸 새마을 부장이 대신해 주어
무척이나 속이 시원하단 표정이라고 밖에, 저 얼굴을 설명할 수가 없군요.
무려 세 번의 정통 귓방맹이 동안 한 번은 나가자빠지기까지 하여 자칫 뇌진탕을 겪을 뻔한 지수는,
적당히 마무리할 기색 없이 네 번째를 위해 또 볼을 잡아당기는 새마을에게
급기야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자랄 때 아버지한테 귀싸대기 한번 안 맞아 본 적 없는 당시의 일반 아이들과 달리
아버지와 형들을 제외한 주변 모든 이들의 "속 보이는 우쭈쭈" 속에서 온실의 화초로 살아온 특별 케이스 나지수에게는
이렇듯 황망한 개인적 급변사태를 현실과 타협하며 감당해 낼 사회적 면역력이 애초부터 형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이쯤에서 인정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아파!
그만하라고 십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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