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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비정상(非正常) 너머의 비정상(非正常)
    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1. 15. 17:11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5)

     

     

     

     

     

     

     

    백번 양보하여 저의 분신을 변호하자면, 이것은 고의적 패륜이라기보다는

    ("죽고 싶어지는 공포"를 포함하여)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려 최후의 발악을 하는

    한 마리 짐승의 본능적이고도 처절한 절규가 아닐는지요.

     

     

    무언가에 홀렸다가 깨어나는 사람처럼 새마을 부장도 주춤하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고 그를 잠시 멍하니 쳐다봅니다.

     

    지수 또한 본인의 "비명 같은 고함"에 깜짝 놀라 아차 싶은 생각이 퍼뜩 뇌리에 스쳤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새마을의 변화하는 낯빛에서 재빨리 알아차리게 됩니다.

     

    여기서 더 인정사정 안 봐주고 폭주하겠다는 의도인지, 부장의 황달기 있는 눈에는 살의마저 번득이고 있습니다.

    증오의 화신이라도 된 양, 팔 다리를 덜덜 떨어가며 한 걸음씩 지수에게로 다가옵니다.

    그를 향해 뻗기 시작한 두 손의 형태에서 곧 목을 조를듯한 자세임이 쉽게 짐작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단 대담하게 사고를 쳐버린 시점에서

    다행히도, 아까와 같이 몸을 가누기 힘든 준패닉의 상태는 되풀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는 이른바 아드레날린 각성이

    지수를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로 만들어 방어 행태의 극단을 달리도록 종용하고 재촉합니다.

     

    그렇게 해서 표면화된 방어 기제의 첫 단추가

    엉뚱하게도 필사의 탈출 즉 삼십육계 줄행랑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엉뚱하게"란 표현을 "지혜롭게"로 바꾸고 싶지만 그러지 않으렵니다.

    여긴 어디까지나 엉뚱함의 연속인 꿈계이니까요.

     

     

     

    "에이 씨발!"이라는 (욕설임이 분명한) 외마디 소리를 운동장에 남기고

    지수는 걸음아 날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어, 후들거리는 다리에 모터를 장착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아, 그런데 방향이..

     

    새마을이 좀 더 교문 쪽에 있어서 그랬을까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교문 반대쪽 운동장으로 뛰어갑니다.

    만약 교문을 통과하여 뛰어나갔다면 그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기다리고 있을 아저씨를 만나 차로 귀가하면서,

    볼이 퉁퉁 붓고 입가에 피까지 맺힌 그의 몰골에 기절초풍할 아저씨한테

    이 불행한 사태의 전모를 밝혔다면, 모든 게 순조롭게 해결되었을 텐데.

    아니 백 프로 장담은 못 해도, 큰 변수 없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도출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여긴 어디?

    그렇죠 꿈이란 동네는 그리 호락호락한 데가 아니죠.

     

    극적인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미친 세상,

    참담한 지경으로 주인공을 몰아가며 깔깔대는 세상인데,

    현실과의 차별화에 집착하는 이곳에서, 현실과 다르지 않은 밋밋함을 선호할 리가 없죠.

    따라서 이곳의 짓궂은 섭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농락하듯 조종하는 것이고요.

     

     

     

     

    아저씨가 알고 그래서 부모가 알게 되는 것이 그에겐 아무런 이점으로 다가오지 않았답니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결백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엔 본인이 명백한 원인 제공자라

    대놓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애매하고, 따라서 힘의 논리를 활용하여 시원하게 복수하기는커녕

    잘못하다간 학교와 집 양쪽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샌드백 신세가 될 가능성이 더 크므로,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으리란 절망적 상황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냥 모든 걸 버리겠단 심정으로 반대쪽을 선택하였답니다.

     

     

     

     

    저놈 잡아! 못 잡으면 니들이 대신 맞을 줄 알아!

     

     

    뒤에서, 새마을부장의 불호령은 물론

    그의 위협에 떠밀려 지수를 잡으러 쫓아오는 여러 명의 발소리도 들려옵니다.

     

    잡히면 끝장이란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뛸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교문 맞은편 운동장 너머는 곧바로 수풀이 우거진 산이었고,

    우기에 대비하여 산사태 방지를 위해 쳐 놓은 야트막한 철망만이

    담벼락 대용으로 세워져 그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경은,

    저를 비롯한 제 모든 상념 분신들 중에서 누군가가 꾸는 꿈속의 장면이거나,

    이들 가운데 둘 이상의 꿈들이 혼합된 "복합 꿈"속의 배경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꿈들이 다 그렇듯 그 속에서의 움직임은 대략 세 경우로 나뉩니다.

     

    현실과 비슷한 경우

    그리고 두 배 이상의 중력이 작용하듯 아주 무겁거나

    반대로 굉장히 가벼워 비상(飛上) 직전의 경쾌함을 보이거나 하게 됩니다.

    무거운 경우는 육신의 컨디션 저하 또는 - 가위 등으로 인한 - 영적 컨디션 저하에 의함이고,

    반대의 경우는

    렘수면 상에서 꿈주가 무의식의 장막을 걷고 일시적으로 각성 상태에 접어들 때 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명상에 준하는 정신적 쾌청함이 잠시나마 최고조가 되지만

    한편으론 - 일종의 안전장치인 - 무의식 완충이 현저히 얇아져

    차원 패러독스의 덫에 걸려들기 쉬운 취약한 구조로 잠재의식이 변이 됩니다.

    이와 같은 모순이 병립하는 순간부터 - 흔히 얘기하는 - 루시드 드림으로의 진입이 시작되나

    대개는 꿈을 완전히 자각하는 데 실패하며 깨게 됩니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수 정도가

    꿈에서의 지극히 가벼운 움직임을 통해 낌새를 어렴풋이 느낄 뿐,

    고도의 훈련을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는 이상

    다수의 드림바디들은

    초능력에 가까운 반중력적 움직임이 주는 쾌감에만 매몰되기 십상이지요.

     

    운동장을 가로질러 질주할 때 저의 분신이 가지는 감정 또한 이러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여 두려움이 극대화하고 있는 와중에도

    웬만해서는 잡힐 것 같지 않는 본인의 엄청난 주력을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네요.

    자신과 세상이 공히 상식을 넘어 그 이상을 허용하고 있다,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죠.

    낮은 수준의 자각 단계라 할까요.

    그러나 아직은 여기까지가 다인 듯합니다.

     

    생명체처럼 꿈틀대는 변화무쌍한 스토리에 결박되어

    그 너머의 비밀을 깨달을 능력도 여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우선은 무사히 도망가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가뿐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을 십분 활용,

    백오십 센티미터는 족히 될 철망 울타리를 손쉽게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빼곡히 심어진 침엽수림의 가파른 경사면이 코를 때릴 듯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모양인지

    철망 두드리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아이들의 원망 섞인 한 마디씩이 지수의 귀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너 하나 때문에 우리 다 죽게 생겼잖아.

    빨리 다시 넘어와. 어서!!

     

     

    당황한 지수가 화들짝 뒤를 돌자,

    동기생 사내 녀석들이 철망에 다닥다닥 붙어 처음에는 하소연 식으로 다급하게 외쳐대더니

    계속 머뭇거리는 그를 보고 이내 울부짖음에 가까운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저 왕따 멍청이 새끼가 끝까지 우릴 엿 먹이는구나.

    너 때문에 우린 곧 죽는다. 절대 용서하지 못해!

    죽으면 끝인 줄 알지? 귀신이 돼서 널 아작아작 씹어먹을 것이야.

    각오해라 개자식아!!

     

     

    여럿이 한꺼번에 악다구니를 써대던 시끄러운 소리가,

    엠피쓰리 노래의 점점 느려지는 재생 속도처럼 어눌하게 느려지고 있습니다.

     

    철망의 면적을 상하좌우로 거진 다 차지한 얼굴들이 마치 바위에 촘촘히 붙은 따개비들 같습니다.

     

    좀 징그럽다는 느낌이 퍼뜩 들 무렵, 핏기가 돌던 아이들의 낯빛이 어둠침침한 회색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희번덕이는 눈알들은 하나같이 핏발이 서 붉게 물들어 있고 더 나아가

    입가에 피 칠갑을 하고 뾰족한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좀비 같은 형상들도 여럿 눈에 띕니다.

     

    위화감이 갑자기 휘몰아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지수는 거듭 눈을 비벼가며, 그들의 괴상한 모습과 기이한 행동을 주시하려고 애써 봅니다.

     

     

    얘들아 너희들..

    이 학교 학생 맞아?

    아니지? 너희들 뭐야!?

     

     

    그의 이 물음은, 좀비 비슷한 것들의 소란을 일거에 멈추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드림바디에게 어떠한 대가가 도사리고 있을지 잘 안다는 표정으로

    다들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이와는 상반되게,

    부릅뜬 무서운 눈은 계속해서 지수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한 놈도 빠짐없이.

     

    정체가 밝혀진 게 못내 원통하다는 듯 원망이 가득 담긴 눈초리였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뭔가 일이 괴이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하였지만

    이 판 자체가 꿈인 것을 깨닫기에는 역부족인 듯합니다.

     

     

     

    사람이 디딜만한 데조차 마땅치 않은 급경사를 빽빽한 나무들에 의존하여 급히 오르면서

    지수는 일단 이 산부터 넘고 봐야겠다는 강한 목표 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아까 운동장을 달릴 때와는 사뭇 다르게 동작이 굼떠지고 일보 전진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단지 비탈진 언덕을 기어오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먹구름 같은 무겁고 어두운 기운이, 꿈계의 하늘을 침범하여 사악함을 비처럼 뿌리려 합니다.

    이러한 기미를 뒤늦게 눈치챈 그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다시 돌아보려 하는군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을 새마을 부장이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아이들만 보내지 않고 그도 직접 쫓아온 것이 새삼 놀랍지는 않았으나,

    정작 놀라운 일은 그다음부터였습니다.

     

     

    170이 겨우 될까 말까 한, 결코 크지 않은 체구의 중년 교사가, 비탈의 중턱에 매달려 있는 지수와

    같은 눈높이에서 그를 쏘아보고 있습니다. 마치 원근법을 무시한 것처럼 말입니다.

    공중에 떠서 그를 마주 본다는 얘기가 아니라 몸집이 그만큼 커져 버린 것입니다.

     

    단순히 부피가 늘어나 거인이 되었다 해도 놀라 자빠질 일인데

    머리에 외뿔이 달린 흉측한 도깨비의 형상으로 죽일 듯 노려보고 있으니

    그로선 혼비백산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일 듯"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팔을 뻗어 주먹으로 내려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지수는

    머리부터 피가 쑤욱 빠져나가 무릎 아래까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성이를 향해 발버둥 치듯 기어오르지만, 납덩이같은 공포를 발에 매달아 한껏 무거워진 다리로는

    산을 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저렇게 커지고 괴물이 돼 버린 새마을이

    마음만 먹으면 그를 충분히 없애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연유인지

    몸도 못 가누는 지수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고 애꿎은(?) 좀비 학생들에게 화풀이를 하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손바닥을 파리채마냥 휘두르며, 벽에 붙은 파리 잡듯이,

    철망을 붙들고 늘어진 아이들을 모조리 터뜨려 버립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가는 참상이,

    더는 뒤돌지 않고 산을 오르는 데도 지수의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집니다.

    (이 정도 현상은 이제 신기한 축에도 못 들겠지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체들이 웬만한 타격에도 쉽사리 뭉개지는 양상이라고나 할까요.

    검은 피와 썩은 살점, 내장들이 철망에 붙어 너덜거리고 있습니다. 구토를 유발하는 악취는 덤이고요.

     

     

     

     

    사태가 이 지경으로까지 비화하고, 꿈주의 수면마비가 의심되는 움직임의 둔화가 지속되는데도,

    이 한심한 드림바디는 여기가 꿈속이란 걸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게

    또한 문제입니다.

     

    루시드 드림의 유혹이 꿈주에게도 그리고 꿈 분신에게도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안다면 "자격 안 되는" 사람들이 과연 꿈을 자각하려 들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가하게 자각몽 놀이를 하는 것보단

    이 "지옥의 습격"으로부터 우선 도망치려 기를 쓰는 지수가

    어쩌면 더 현명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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