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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삼청 교육대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2. 7. 16:0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7)
먹구름이라기엔 너무도 생경한 저것이
먹구름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공중의 나뭇잎들이 무엇인가에 부딪혀 후드득후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립니다.
저것이 뱉어내는 액체가, 과연 보통의 빗물일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일단 시커먼 소나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교복이 금방 축축하게 젖어 드는 걸로 봐서 그리고 머리와 피부에 닿는 익숙한 느낌으로 봐서
비라는 걸 의심할 근거가 당장은 희박하지만, 언제 치명적 무기로 돌변할지 몰라 꺼림칙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쫓아오는 군인이 비(?)를 안 맞으려고 호들갑을 떤다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는 듯한 액션을 하진 않았으므로,
지수도 이 유경험자에 기대어 별 탈 없으리라 추정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적대적인 지수 앞에서 두려움을 노출할 정도로 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 대상은
저 검은 구름(?) 자체이거나 저것이 가져올 더 큰 무엇이 될 텐데, 현재로선 정확히 알 도리가 없네요.
이렇게 급박히 도망치듯 달리는 와중에, 자신을 전쟁 포로처럼 대하는 병사를 돌아보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숨이 끊어질 듯 차올랐으나 병사의 재촉은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었습니다.
숨이 막힐만 하면 허우적거려 간신히 수면 위로 가쁜 숨을 내쉬는 -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는 - 물에 빠진 자의 몰골이 되어 지수는 삼 킬로 이상을 쉬지 않고 질주해야 했습니다.
편집되어 빠르게 장면 전환이 이뤄질 법도 한데
냅다 치닫는 과정만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체격이나 체력을 감안하면 중간에 퍼져도 몇 번을 퍼졌어야 말이 되는 형편인데 그러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호흡 곤란과 가슴 통증의 극한으로 몰리는 "데드 포인트"를 오롯이 지속적으로 겪어내고 있다는 건
또 지독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세컨드 윈드 없이 데드 포인트의 연속일 뿐인 지옥과 같은 (과장된) 현실이라
결국엔 이 또한 비현실로 수렴하고 말겠지만요..
아무리 현실적이어도 꿈은 꿈이란 말이지요.
드디어 막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의 눈이 반짝입니다.
저것이 죽음의 아가리일지라도, 우선 이 고통의 질주를 멈추게 할 목적지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부디 저걸 지나치지 않길 간절히 빌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군인은 숨을 헐떡이며 지수를 세웠고 그는 기꺼이 군인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아니, 그가 계속 뛰라 했어도 아마 서고 말았을 겁니다.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거니와, 꿈의 전개를 주도하는 드림바디의 역할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판자를 많이 사용하여 대충 성의 없이 만들어 놓은
딱 그 정도 수준의 투박한 막사들이었습니다.
7,80년대의 군부대 시설이라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생각될 만큼
백 년도 넘어 보이는 낡아 빠진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볼품없는 데다 허술해 보이기까지 하여 금방 무너져내려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가 않네요.
한심한 모양새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그렇다는 것이고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한술 더 떠야 하는 기괴한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합니다.
꿈 아니랄까 봐 이렇게라도 티를 팍팍 내는 것일까요.
막사의 겉면 대부분이 이끼류 같은 것들에 덮여 있었고 뿐만 아니라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덩굴들이
살아있는 뱀처럼 그것의 외부를 징그럽게 휘감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서슬 퍼런 괴식물의 공세에 백기투항한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어서
지수는 현재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입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규모가 작지 않은 상당히 큼직한 막사가 총 3채였는데 이것들이 놓인 위치나 상태를 볼 때
단순한 부자연스러움과 미묘한 위화감을 뛰어넘는 충격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리 설계되었다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으나, 성냥갑 세 개를 땅바닥에 팽개치면 아무렇게나 널브러지는 그런 형태라고나 할까요.
뒤집혀 있지 않은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동선 및 효율성이 깡그리 무시된 배치에다 기타 부대시설도 일체 보이지 않고,
부서지기 직전의 막사 세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저러한 지경이니 최소한의 유틸리티라도 가동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싶네요.
엄청 센 무엇인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그로기의 몰골로도 만족이 안 되었는지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방점을 찍어버린 장면을, 지수는 마침내 목격하고 맙니다.
거의 팔십 도 각도로 비스듬히 기운 채 - 덩굴들이 붕괴를 막아주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 위태로이 서 있는
(그와 제일 가까운 지점의) 막사 뒤편에
멀찍한 원근감을 유지하며 희미하게 숨어 있는,
또 한 채의 막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기이한 외양에 있어 결코 만만치 않은 앞의 막사도 그것에 비하면 평범한 레벨이 돼 버리는,
결정타가 도사리고 있었던 겁니다.
앞의 것에 가리어져 살짝만 드러난 비주얼로도 확실한 존재감이 각인될 수 있었던 건
하필 그 드러난 부분이 - 적나라한 충격들의 실체이자 온상을 상징하는 - 묵직한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거목이 그 부분을 뚫고 치솟아 있었습니다.
막사 안에서 나무가 자랐다고 여기는 게 이 광경에 대한 나름의 상식적 판단일 테지만 그리 가정한다면
건물이 최소 수백에서 수천 년 전에 지어져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근대 이후의 건축 방식이 만들어 낸 형태임을 알 수 있으므로, 또 다른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정황입니다.
이를테면, 어떠한 연유로 인해 처음 설계 시부터 저 나무를 포함하였다라든가..
그런데 그렇게 한가한 추측을 하기에는 주변의 꼬락서니가 참담하기 한량없습니다.
그러니 괴물 같은 거목에게 잠식당한 듯한 저 모습도 이런 주변과 궤를 같이하여 바라봐야
맥락이 닿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알 길 없는 미지의 기운 또는 에너지가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조화를 부려
이렇듯 꼴사나운 결과를 초래하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극소수의 사특한 인간들이 위험천만한 기술을 독점하여 만든 불안정하고 조악한 인공 장치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극적 사태를 야기하였는지도 모릅니다.
** 이는 물론, 드림바디의 사고와는 별개로 저의 독립적 사유 체계가 개입하여 발생시킨 상념일 뿐입니다.
꿈계에 갇힌 것을 이따금씩 망각하고 "제가 겪어온 현실적 상념계"들과 혼동하여 사고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지요.
환상적인 체험들을 마치고 그것들을 글로써 정리하는 지금에서야, 이를 깨닫게 되는군요.
둘 중 어느 쪽이든 혹은 제3의 원인이든 간에,
우리나라의 군부대 일부가 지구상이라기에도 의심스러운 이국적인 공간으로 곤두박질치듯 한순간 이동해 버리는,
가공할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또 한편으론,
차원이 다른 이계의 시공이 - 인간은 도저히 알 길 없는 까닭으로 - 우리나라에 포개어지면서
저 막사 세 곳을 비롯한 그 외 불특정 장소들이 거칠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차원 변환 되어 이계에 이식되어 버렸다는,
역시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가정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시나리오는 판을 너무 키워 현실성을 떨어뜨리기에 최종 채택하지 않기로 합니다.
(꿈의 세상에서 현실성을 논하는, 어리숙한 오류에 또 빠지고 말았군요.)
저의 복잡한 몽상에 영향을 받아 나이답지 않은 상념 포스를 잠시 발산한 어린 드림바디가
병사의 벼락같은 외침에 문득 정신을 차립니다.
심하게 기울어진 막사의 현관에 해당하는 자리가 그를 빨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죽고 싶어? 왜 자꾸 머뭇거려?!
살고 싶으면 들어가!!
문이 달려 있어야 할 위치에 원래의 문은 - 일찌감치 부서져 폐기되었는지 - 보이지 않고
널빤지들을 못으로 고정한 임시방편이 추레하게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문의 기능을 한다기보단 방어 목적의 (외부의 위협을 막는 데 급급한) 임시 조치인 것 같습니다.
정작 출입을 위한 통로는 바닥 쪽에 개구멍처럼 마련되어 있었으며
성인이 기어서 간신히 들어갈 만한 아주 작은 크기였습니다.
이마저도 평소에는 거적때기 같은 걸로 막아놓아 통로가 아닌 듯 위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였으나
허술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관 출입구가 이처럼 상흔을 적잖이 간직하게 된 것은 당장에 덩굴들의 대범한 침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남긴 자국은 자잘한 훼손들에 불과하였고, 대대적인 파손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순간이동의 여파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봅니다.
코앞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보니
멀쩡한 데를 찾기가 어려울만치 매우 심각한 지경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되어,
아주 중요한 "비밀의 열쇠"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는데도 하마터면 놓칠 뻔하였습니다.
그것이 위치한 곳은 현관 옆에 가까이 있는 벽면이었습니다.
막사 전체가 기울어져 있고 덩굴과 이끼가 맹렬한 기세로 퍼져 있음에도,
첨부터 얼마나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으면, 떨어져 나가지도 않고 용케 매달려 있습니다.
온갖 수난을 견디며 꿋꿋이 붙어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육중한 나무 현판이었습니다.
이 부대 이름이 세로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검은색의 꽤 커다란 한글이 정확히 다섯 글자였습니다.
중학생인 지수조차
뉴스 등의 대중 매체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뇌에 각인이 되도록 접하여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매스미디어로 볼 때마다,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절로 일어나는 혼돈의 감정에 매번 휩싸여야 했습니다.
그곳에 끌려가 고되게 교육받는 깡패(?)들만 무섭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정화하고 갱생시키느라 수고하시는 국군 아저씨들이
고마워야 하거늘 어째서 그들 역시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지.
이러한 이중적 심리가, 어리고 소심한 그를 줄곧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실체를 파악할 능력이 없어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쉽게 세뇌당하는 나이임에도
생래적으로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내재되어 있기에 그러한 반응이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인류의 근원적인 폭력
그리고 사회와 역사가 용인하고 묵인하는 폭력을 철학적으로 고찰하지 않고도
무의식적으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평생 자신을 괴롭히도록 예정된 "세상의 폭력"을 나이와 학식에 상관없이 대비하게끔
인간의 유전자에 신이 새겨 넣은 정표
"생존 본능"의 발현인 걸까요.
어느 날 소리 없이 다가와 지수에게 공포가 되어 버린 존재를
빼도 박도 못 하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미지의 검은 공포에 쫓겨 숨어든 곳이, 커밍 아웃한 공포의 소굴이라니요.
이 두 공포가 평형을 이루어야만 본인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입니다.
지수의 이런 고독한 절망을 알 리 없는 병사가
거적때기를 들추고 당장 죽일듯한 기세로 그를 몰아붙입니다.
이 새끼 정신 못 차리고 있네.
빨랑 들어가 띨빵한 새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깜깜한 구멍 속으로 마지못해 기어 들어가고 있는 지수를
성미 급한 다혈질 병사가 철모 쓴 머리로 마구 들이받아 밀어 넣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면 밖의 무엇인가가 신속하게 해치기라도 하는 양
그의 조급증 묻은 행동 하나하나에는 지수 못지않은 두려움이 찌들어 있었고
이것이 지수의 전신에 남김없이 전해져 왔습니다.
다가올 운명에 대한 지수의 절망적 두려움과
병사의 패닉에 가까운 불안감이 한 데 섞여 뒤범벅되고 있습니다.
뒤죽박죽 된 공포의 습격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신의 계시처럼 감지하며
지수는 개구멍을 꼼꼼히 막고 있는 다른 두 기간병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의자 여러 개와 철책상 세 개가 순식간에 제법 든든한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현관 안쪽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이들에겐 이골이 난 동작인 듯
동료들이 출입할 때마다 이 번거로운 행위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모양입니다.
단, 검은 비구름 같은 게 주기적으로 생겨날 때에 한해서.
그만큼
그것의 활성화가 이들에겐 특급 비상사태 발령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삼! 청!
중대장님
수상한 꼬맹이 놈 잡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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