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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인들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2. 14. 15:53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8)
명색이 중대장실인데 전기도 안 들어오는지 (당연히 안 들어올 것 같긴 합니다) 몹시 어두컴컴하였습니다.
먹구름 같은 것의 기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창문이 있던 자리를 여러 개의 판자들이 막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창문뿐 아니라 사방 이곳저곳이 부서져 급하게 수리한 흔적들이 너저분한 상태로 눈에 띄었습니다.
언뜻 거지나 양아치 소굴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잊을만하면
여기가 꿈계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으스스한 위화감들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옵니다.
뒤로 곧 넘어갈 것처럼 위태롭게 기울어진 겉모양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게 바닥과 천장은 수평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초우주의 회오리가 이곳에 내동댕이친 것이라면 지반 공사는 전무할 터이니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고
애당초 붕괴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인데
이런 평이한 신기함에만 치우쳐 디테일에 숨은 고난도 해괴함을 간과하였나 봅니다.
건물 전체의 종단면이 정확히 평행사변형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의 분리된 공간들까지 동일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강한 충격이 외벽을 기울게 할 수는 있지만 이 정도 타격이면
상당 부분 목재로 구성된 특성상 내부 구조는 엉망이 되어 있어야 하고
이후 생활을 위해 임시적인 손질이 가하여졌다면
세세한 모든 게 이처럼 일정한 각도로 고정되어 있을 리는 더더욱 없을 터인데
참 요상한 위화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만 감지할 게 아니라 이곳의 지수도 이런 것들을 재깍재깍 파악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꿈이 설정해 놓은 작위적 곤경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럴 여유는 도저히 안 나는 모양이네요.
이해는 갑니다만 꿈의 함정을 자각하지 못하는 드림바디의 한계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까 개구멍을 통과할 때 일찌감치 이러한 징후를 느껴야 했건만..
하기야 불완전 자아인 꿈분신이 굼뜨게 자각한다 한들
그 어렴풋한 각성으로 꿈계를 벗어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저라도 알려줘야 마땅한데 저 또한 아직은 그럴 깜냥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지금까지의 평행계 체험으론, 그리할만한 최소한의 해탈 게이지에도 미치지 않는가 봅니다.
제가 좀 더 영능력을 강화하여 운송자들의 차단을 뚫고
텔레파시든 채널링이든 제 분신들과 직접 소통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수만이 아니라 악몽 트랩에 갇혀 허우적대는 이곳 사람들 전부가
하나의 생각, 한 가지 감정에 매몰된 단편적 군상 같아서 왠지 거칠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들 각자도 한낱 억조창생의 드림바디들 중 하나일 뿐일까요.
아니면 4차원이 세차게 휘모는 조화 폭풍 속에서, 운이 없게도 꿈계와 융합해 버린 상념계 사람들인 걸까요.
우후죽순처럼 접합하는 꿈 파편들 속 드림바디라서 세상과 사물의 위화감에 무딘 것일까요.
아니면 평행우주의 시공파편에 존재하는 엄연한 실재 사람들이지만, 꿈계에 내쳐진 줄 모르고
기묘한 위화감들의 파상 공세에 지칠 대로 지쳐
사소한 것들 쯤은 그러려니 외면하는 단계까지 올라선 걸까요.
평행 육면체로 돌연변이한 좁은 사무실 안에서
그들은 일상적인 생활의 루틴을 깨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듯하였습니다.
심지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초비상 사태마저 그 루틴 안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 특유의 강박이 꿋꿋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미쳐 날뛰기 전까지는..
음.. 수고했어 김 상병.
또 시작됐다는 무전은 받았다. 3회전 끝나는 대로 정일병과 교대하도록.
정찰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지금은 전투준비태세이므로 휴식이 불가한 점 유감으로 생각한다.
나가는 즉시 막사내 진지 보강에 힘을 보태도록!
예 알겠숩다!
아 그리고, 나가는 길에 상황실 들러 박교관 이리로 오라 하고.
예 알겠숩다.
삼! 청!
너 이 시키 똑바로 안 서?
허튼짓 말라. 넌 현 시간부로 우리의 정식 포로다.
이는 우리가 널 심문할 자격을 가진다는 의미다.
몸은 녹초가 되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도
지수는 중대장이라 불리는 건장한 사내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감히 무너져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실에서도 방탄모를 쓰고 당장에라도 적과 싸울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다부진 모습이 인상적이긴 하나
그에게는 그저 엄하고 무서운 군인으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국민에게 우호적인 국군이 아닌)
순진한 어린 학생을 기껏해야 "죽여도 무방한 적" 취급하며 함부로 윽박지르는 국군이라니,
지수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탄모의 정면 부위에 부착된 짙은 색 마름모 세 개가
날카로운 표창이 되어 가슴으로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네가 누구인지부터 밝혀라.
이름, 나이, 사는 곳 등등..
저.. 는...
울지 마!
그딴 게 통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긴 너 만한 나이의 죄수들도 있어.
처맞기 싫으면 똑바로 대답해라.
네에!!
덕망 중학교 2학년 나지수, 열네 살입니다!
주눅이 잔뜩 들어 울먹이던 지수가
중대장의 불호령에 화들짝 놀라 본인의 신상 명세를 술술 불기 시작합니다.
든든한 뒷배경 덕을 톡톡히 보며 사는 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가,
혹시 모를 기대를 또 한 번 품고 굳이 안 묻는 것들까지 상세히 불어 버립니다.
이게 어디서 구라를 까고 있어!?
빤히 보이는 수 쓰지 말라.
그리고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지금의 우리로선 다 허위 정보로 간주할 것이다.
왜냐.
현재 여기선 네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즉,
네가 설사 각하의 숨겨둔 자식이라 해도 네가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는 한 지금의 넌 여길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단 얘기지.
우리들 중 누군가가 너를 알고 있다면 또 모를까..
사실, 여태컷 네 입에서 나온 것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네가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가"이다.
삼! 청!
중대장님 호출받고 왔습니다.
어, 박 중사 어서 와.
좋은 말로 하려 했더니 이놈이 영 협조를 안 하는구만.
자네가 특기 좀 발휘해야겠어.
190센티에 육박하는 장신의 하사관이 - 유격 조교 특유의 챙이 길고 각진 전투모 아래 감춰진 - 매서운 눈초리로
지수를 훑어봅니다.
키만 삐쭉 솟았지 깡마른 체구였으나 까맣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과 도드라진 광대뼈가,
만만히 봤다간 큰코다칠 악역의 아우라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더 센(?) 악당이 등장하는 점입가경의 상황에서, 지수는 점점 구석으로 내몰린 생쥐 꼴이 되어갔고,
가뜩이나 바들바들 떨던 경련의 강도는 급상승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곧 벌어질 물리적 폭력을 몸이 먼저 예감하여, 의지로는 제어가 안 될 반응을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생체의 예감은 소름 끼치게 정확하였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박중사가 뚜벅뚜벅 걸어 지수를 지나친 채 중대장의 책상 앞까지 나아가는가 싶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갑작스레 뒤돌려차기를 시전 하여 그의 가슴팍을 돌덩이 같은 군홧발로 강타하였던 것입니다.
폭력 전문가의 느닷없는 일격에
왜소한 지수는 버텨 낼 기력도 없이 부웅하고 나가떨어졌습니다.
문짝이 부서질 듯 그것과 세차게 부딪히며 쓰러지는 모습이, 바람에 맥없이 날리는 낙엽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맞은 즉시 눈앞이 핑그르르 돌고 정신이 아뜩해지면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동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얼떨떨하여
육체적 고통을 느낄 겨를은 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힘겹게 사투를 벌이며 쫓아내려 애쓰던 공포가
이때다 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무너져가는 그를 지긋지긋한 스토커처럼 물고 늘어집니다.
죽음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져서 파멸이란 최후의 한 방을 맛 보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그것이
물 만난 생선인 양 펄떡거리며, 넋이 거의 나간 지수를 재밌어 미치겠다는 듯 희롱합니다.
중대장님, 이제 곧 놈이 쳐들어올 텐데
이 새끼는 3회전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조져도 되지 말입니다.
그러긴 한데,
본격적인 취조 전에 뜨거운 맛을 미리 보여주는 것도 나쁠 것 없지.
호수가 생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지 않나.
예에, 그렇지 말입니다.
이때, 부실하게 달려 있던 문이 예고 없이
"반쯤 나간 정신이 다시 반쯤 돌아오려는" 지수에게 3차 충격을 가하였습니다.
그의 보잘것없는 체구는 무게감을 전혀 안 준다는 듯
약간의 멈칫하는 시간 차도 허용치 않고 빠른 속도로 대차게 열려 버렸습니다.
뭐야!? 노크도 없이..
이병 강. 창. 태.
죄송합니다.
무..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뭐 벌써??
어디까지 차올랐어?
그.. 그게..
중대장님
바닥을 보십시오!
이런 젠장! 언제 이렇게 된 거야!?
박 중사, 자네 들어올 때 이랬었나?
절대 아니지 말입니다. 군화가 뽀송뽀송했지 말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군화야 항상 뽀송뽀송하지. 철벅거리지도 않는 이게 보통 물이냐고!
하아, 저 골칫덩이 신경 쓰느라 중요한 변칙을 눈치채지 못하였군.
그럼 1, 2차 때의 규칙성은 패턴이 아니었단 건가.
그 검은 것이 나타나고 최소 세 시간은 지나서 땅이 십여 센티 덮였었잖나.
고작 십 센티 차오르지 않았나 말일세!
그렇습니다.
그러고 나선 이 분지가 호수로 변하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 정체불명 녀석, 손 좀 봐주려 했더만..
정체는 아직 몰라도 저 시키 재수 없는 놈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놈 오고서 벌써 일이 이렇게 꼬이고 있잖습니까.
생각 같아선 그 괴물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주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어쩌면 우리가 여길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저 음습한 녀석일 수도 있으니..
역시 중대장님이십니다.
저놈이 여길 들어온 경로에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제가 책임지고 캐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려면 우선 자네가 죽지 말아야겠지.
한데 이번엔 왠지 불안하단 말이야..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건 놈이 나올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남았단 얘긴데..
2차전 때 그리 철저하게 준비하고도
첫 번째 대결 때의 극심한 피해를 많이 줄이지는 못했잖나.
두 번의 경험이 있어 그런지 우리 애들이 더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상당히 침착해진 것 같습니다.
대응할 시간이 줄었다 해서 마냥 비관적일 필요는 없잖을까 합니다.
음, 그렇담 다행이지만서도..
변수가 단지 시간에 국한되지 않을까 봐 솔직히 우려가 된다네.
놈의 행동 양상이나 파괴력 또한 앞의 두 번과 다르지나 않을까 해서 말이지..
최악의 경우 상대가 그놈 하나가 아닐 가능성도 대비해야 하는데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우리 병력이 얼마나 견뎌낼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해진 건 없는데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대장님의 강력한 지휘 하에 우리가 똘똘 뭉쳐 여기까지 버텨 올 수 있었습니다.
저 오합지졸 인간 버러지들도 중대장님의 통솔력에 감화되어 이제는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껏 잘해 오셨으니
중대장님만 믿고 따르는 저희를 위해 계속 강한 모습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 번의 결전을 앞두고 내가 약한 소릴 한 모양이군.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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