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3. 폭풍 전야
    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1. 6. 23:00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3)

     

     

     

     

    오늘 며칠이냐.

    9일이요!

    그러면 9번 10번부터 둘씩 해서 69, 70번까지 총 열네 명, 종례 마치자마자 사열대 앞에 집합한다.

    새마을 부장 선생님의 사역 인원 차출 요청이 계셨어. 각 학급마다 모두 참여하는 일이니 한 명 열외 없이 집합하도록.

    만에 하나 도망가는 놈 나오면 너희들이 무서워하는 부장 선생님뿐 아니라 나한테도 죽는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인원도 딴 데로 새는 일 없이 바로 귀가하도록.

    어제 미처 카네이션 달아드리지 못한 녀석들은 오늘이라도 달아드리고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 하는 화목한 주말 보내길 바란다.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지수가 마침 9번이네요. 키가 작아 저럴 줄 알았어요. 전 그래도 12번이었는데.

    그나저나 한 반에 칠 십 명이 넘다니! 제가 다닐 때보다 교실 면적이 엄청 넓었을 리 만무하고..

    밤톨 머리의 쾨쾨한 중삐리 녀석들이 비좁은 교실에서 바글거렸을 걸 생각하면 짐작만으로도 숨이 턱 막힙니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잔재들 가운데 하나였던 시커먼 교복은 다행히 눈에 띄지 않네요.

    시커먼 놈들이 우글거렸다면 더욱 갑갑하게 느껴졌을 텐데 그나마 하복을 입고 있어 조금은 시원해 보입니다. 디자인이 촌스럽고 투박하긴 해도 말이죠.

     

     

    반가운 모습이 건물 입구 계단에서 실내화를 구두로 바꿔 신고 있습니다.

    대여섯 명의 급우들이 몰려 있는 와중에 단짝으로 보이는 친구와 나지막이 수다를 떨고 있네요.

    다들 책가방을 들고 있지 않으니 방과 후 귀가는 아닌듯한데 혹시 지수가 가야 하는 곳으로 이들도 가야 할 신세일까요?

    평소의 그 같으면 여학생들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하였겠지만

    여자친구가 되어 준 그녀를 코앞에 두고 차마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많이 부담되었으나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어? 너 집에 안 갔어?

    어, 지수야. 우리 붙잡혔어. 두 시간 정도는 꼼짝없이 화단을 가꿔야 할 것 같다.

    너도 그럼, 새마을부장 선생님이 운동장에 모이라고 해서 나가는 중이었구나..

    지수 너도 니?

    너나 나나 운이 참 없네 흐흐. 하필 오늘 이게 뭐람.

    오늘 약속 잊지 않았지? 이거 다 마치고 가면 영화 보고 한밤중 되겠다.

    잉잉 지수야 아무래도 우리 오늘 못 갈 것 같아. 어쩌지?

    왜? 무슨 문제 있어?

    내가 말한 친척 언니 있잖아. 세 시까지 근무하고 교대거든.

    언니 있을 때 가야 신분증 검사 없이 안전빵으로 들어갈 수 있걸랑..

    우리 이거 끝나면 세 시 거의 돼갈 텐데 어쩌나..

    오늘 꼭 보고 싶은데 그 영화..

    나두..

    영화도 영화지만 너랑 하는 첫 데이트라 기다리면서 설레었는데..

    일주일이나 기다리고,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다니 잉잉.

     

     

    여기서 "잉잉"은, 울면서 말했단 의미가 아니라, 영미가 혀 짧은 소리를 하며 습관처럼 내뱉는 (제 딴엔 애교랍시고 섞는) 표현입니다. 좋아하는 지수 앞이라 말괄량이 영미가 본능적으로 평소의 버릇에 낯간지러운 애교를 덧입혔을 테지만 정작 두 사람은 그것이 애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둘 다 어리다는 증거겠지요.

    그리고 당장의 미묘한 감정을 즐기기에는 그들에게 닥친 난관(?)이 이 둘의 신경을 온통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 함께 하고픈 열망 때문에, 현재 한껏 부풀어 있는 (서로에 대한) 애착이 홀대를 당하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운동장 일부를 용도변경하기 위한 일종의 정지 작업에 남학생들이 투입되었고

    여학생들은 조성된 화단의 마무리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흘렀을까.

    작업 참여 인원들을 감독하던 새마을 부장 교사가 교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됩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될 일탈적 아이디어가 지수의 머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영미의 동선을 파악해 두었던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운동장 옆 화단으로 부리나케 뛰어갑니다.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가쁜 숨을 몰아쉴 짬도 없이, 모종삽으로 흙을 고르느라 여념 없던 영미의 손을 낚아챕니다.

     

     

    영미야 가자. 지금이 기회야.

    밖에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우리 자가용 타고 가면 3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어머 지수 너, 이렇게 화끈한 애였니?

    근데 괜찮을까? 작업자 명단 이미 적어 냈고, 일 끝나면 인원 체크도 다시 할 텐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둘러댈 이유야 월요일 전까지 천천히 생각하면 되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

    가방도 교실에 있는데..

    내일 아저씨 하고 같이 와서 챙겨 가면 돼. 그때 네 것도 챙겨다 줄게.

    새마을부장 집요한 인간인데 설마,

    우리 가방 찾아내서 교무실에 짱박아 두는 건 아니겠지?

    야, 한가하게 야부리 털 시간 없다고!

    나중의 일이 중한 게 아니야. 지금 걸리면 모든 게 끝장이란 말이야!

     

     

    영미의 친구들이 술렁이며 걱정 반 응원 반의 심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쉬잇! 조용히 해!

    뒷일 좀 부탁할게 미안해.

     

     

     

     

    십여 미터 앞이 교문인데도 둘은 심장이 쫄리는 지 후다닥 내달릴 생각은 감히 못 하고 있네요.

    아무 일 아닌 듯 여느 때처럼 걸으려 무던히 애쓰지만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경직된 자세입니다.

     

     

    간신히 교문을 통과하였고 이제는 정신없이 줄달음치기만 하면 되는데, 지수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지능범 놀이에 심취하였는가 머리를 너무 굴리고 말았습니다.

    혹여 급하게 줄행랑치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도망치는 현행범을 자인하는 꼴일 것 같아

    그냥 하교하는 일반 학생인 양 조금만 더 걷기로 하였는데 이것이 치명적 패착이 될 줄이야..

     

     

     

     

     

    야! 일루 와!

    야! 거기 둘 일루 당장 튀어와! 뒤지기 싫으면!!

     

     

    저 격앙된 고함소리는, 격렬히 부정하고 싶지만,

    아니나 다를까 새마을 부장의 분노로 끓고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설마 우리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 하며 비루먹은 자기합리화에 매달려 보지만, 지수의 무기력한 자아는

    상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음을 간파하며 자포자기 상태로 진입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자아는, 사태를 무시하고 우유부단함을 결단력의 탈로 가린 채,

    공포에 질린 영미의 손을 놓을 생각 없이 걷던 방향을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자아가 어쩌고 하는 건 그냥, 잠재의식과 연결된 차원에서 그렇단 얘기고,

    그의 결박되어가는 현실은 뇌 정지를 유발하여,

    그는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다리를 기계적으로 놀릴 따름입니다.

    외부의 가혹한 힘이 분명 가해지고 있거늘 애써 외면하고 교문과 계속 멀어지려는,

    뉴턴의 법칙마저 무시하고 싶은 필사적이고 애처로운 관성이랄까요..

     

    훗날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 자명한 비극적 개인사(史)가 버티고 선 곳으로,

    열린 지옥 문의 입구를 차지한 저승사자의 일갈이 무서운 흉기를 감추고 포효하는 곳으로,

    자석처럼 끌려가려 하는, 영미의 "순응"을 위한 저항이, 잡은 손에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흡사 사자의 매서운 눈초리에 최면이 걸린 새끼 사슴처럼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절대 권위에 백기투항하려고 하네요.

    숨 막히는 공포의 순간을 못 견뎌 차라리 아늑한(?) 죽음에 안기려는 사슴의 정신착란을 보는듯합니다.

     

    그 와중에도,

    공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영미가 안쓰러웠는지 지수는 결국 그녀의 손을 놓아 버립니다.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그리하였다는 표현이 더 옳겠네요.

    (안쓰러웠을 거라는 건 단지, 그의 위축된 차크라에 올라타 있는 제가 주관적으로 하는 추측이랍니다..)

     

    여자라서 현실을 직시한 걸까요.

    그러나 직시하던 외면하던 시간의 문제일 뿐 지수의 예고된 운명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결속의 끈이 맥없이 풀려 버리자, 천천히 걷던 빨리 달아나던 아무 의미 없음을 불현듯 깨달았는지

    지수 또한, 정말로 마주하기 싫었던 상황을 마주하기 위해 돌아서게 됩니다.

     

     

    몹시 화나고 흥분해서 스스로를 주체 못 하고 있는 40대 후반의 새마을 부장이

    붉으락푸르락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이 둘이 왜 일탈을 감행하였는지 찬찬히 살피고 알아가려는 의지는 애초에 상실된듯하였고,

    모범생의 범주에 드는 이들의 일탈에 대하여 교사로서 나타낼 수 있는 자괴감이나 안타까움 또한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미 괴팍한 거친 사내가 순전히 울분을 참지 못하여 그것을 분출하고 마는,

    그저 그런 저속한 행동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달이 날까 봐 최대한 짧은 통화로 용건만 마치고 부랴부랴 뛰어온 보람(?)이 있었는지,

    한 놈만 걸려 봐라 단단히 벼르던 그의 날카로운 레이다에 대어가 둘이나 포착되었네요.

     

    "새마을"의 권력에 반항했다간 어찌 되는지를 한 번쯤은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 여기던 차에,

    오늘을 그날로 잡아, 본보기가 될 희생양들을 기어이 물색해 내고 말았군요.

     

     

     

     

     

     

    'Letters to D.J. (지수 외전) > FRIDAY THE 13TH'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아공간  (1) 2023.01.28
    5. 비정상(非正常) 너머의 비정상(非正常)  (1) 2023.01.15
    4. 싸대기  (1) 2023.01.14
    2. 아저씨  (2) 2022.12.28
    1. Inner Space  (0) 2022.12.1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