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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저씨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2. 12. 28. 22:34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2)
저 아저씨가 바로, 비참해진 저를 여태껏 돌봐주고 계시는, 저만의 충직한 집사이자 보디가드랍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제 개인 기사로 시작하여 줄곧 저를 밀착 마크하다시피 보호하고 관리해 주신,
제게는 친한 삼촌과도 같은 고마운 분이시죠.
네에, 첫 번째 사연의 서두에서 제가 보호자라고 칭한 분이 이분 맞고요.
하긴 이토록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분이니 꿈에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요.
이왕 이리 등장하셨으니 잠깐 소개 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는 키 백 팔십 오가 넘고 몸무게도 백 킬로를 상회하는 건장한 거구이며, 헬스로 단련된 근육질의 탄탄한 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십 대 후반의 철없던 시절 흔히들 말하는 어둠의 세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아버지의 경호팀에 있던 고향 선배에게 발탁되어 일찌감치 손을 씻고 경호원으로 입문한 케이스입니다.
훈장처럼 온몸에 달고 다니던 문신까지 미련 없이 지워 버리고 이른바 개과천선의 자세로 맡은 직무에만 충실하던 중
어머니의 눈에 들어 운전기사 보조 및 제 전담 경호원 겸 비서로 집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 이쯤이면 누님도 저에 대해서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셨겠지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평생 혼자 묻고 가기엔 저의 체험이 너무도 놀라워
뻔뻔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밝혀야 했습니다.
교도소에 평생 갇혀 처절하게 반성만 하며 지내도 모자랄 판에
환경의 혜택을 등에 업고 편안한 병동 특실에 파묻혀 라디오 프로에 사연이나 보내고 앉았으니,
말씀은 안 하셔도 아마 입장이 무척이나 난처하실 겁니다.
어쩌면 피해자의 심정에 동화하시어 제가 도저히 용서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렇듯 떡하니 사연이랍시고 편지를 보내는 인면수심의 행동을 하고 있으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고 나아가 분노마저 촉발할 수 있으리라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시도는, 누님에 대한 단순한 팬심의 발로일 뿐 아니라
하늘이 내린 뼈저린 참회의 마지막 기회이기도 함을, 알아 주십사 감히 청하옵니다.
만약 하늘이 제게 해탈을 허락하신다면 이는 전적으로
그분과 그분의 가족을 향한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영적 갚음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에 하나 저의 진심이 통하여 누님을 위시한 담당자분들께서 채택해 주신다면
혹여라도 이 부분 편집하지 않으셔서 제가 또 한 번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될지언정
신의 준엄한 심판으로 알고 달게 받겠습니다.
물론, 비난의 화살이 방송국으로 쏟아지는 누를 미연에 방지코자,
삭제할 부분은 과감히 쳐내시거나 처음부터 제 사연을 채택하지 않으시겠지만요..
(이 역시 제가 당연히 감수해야 마땅하고요,)
두꺼운 목과 그것을 받치는 과할 정도의 승모근이 브록 레스너를 연상케 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항상 미소 짓고 있는 귀염 상이 아저씨의 여러 매력 중 무시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바로 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어머니가 안심하고 저를 맡기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것이, 밖에서 경호 업무에 열중할 경우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랍니다.
그래서 체구에 걸맞은 위압적 포스를 풍기려고 밖에서는 검은 선글라스를 항시 착용하신답니다.
아울러 검은 정장도 자연스러운 세트로 따라오는데 워낙 우람한 체격이다 보니 도무지 핏이 살지를 않네요.
영화 속 MIB(맨 인 블랙)의 멋들어진 수트빨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일듯 합니다.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네요. 어쨌거나 여자들한테도 꽤나 인기 있을 삼 십 대 초반의 노총각 아저씨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연애도 포기한 채 이처럼 제 옆을 지키고만 있습니다.
저를 보는 아저씨의 눈에선 언제나 꿀이 떨어져서 부담스러울 지경이에요.
요즘은 큰일을 겪고 절망하는 제게 연민이 가득한 우수 어린 눈길을 한가득 보내고 있어 이 또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이건 뭐 제가 전생에 아저씨 와이프라도 된 기분입니다.
그런데 웬일, 이게 또 마냥 싫지만은 않네요.
특히 지금처럼 세상에 혼자 버려져 삶을 놔버리고 싶을 때에는, 싫지 않은 걸 넘어 저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십 년 넘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아왔으면서 고마운 줄 모르고 항상 찡찡거리기만 했는데,
기댈 수 있는 그의 존재 자체가 저에게 축복이었음을 이제야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얘들아, 집게랑 봉투 다 준비해 왔지?
우리 구역이 삼거리니까 꽁초 위주로 줍도록 해.
성찬아, 네가 나 대신 애들 잘 인솔해서 삼 십분 정도 청소하고 들어가렴.
선생님은 아침 일찍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먼저 들어가 봐야겠다.
이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젊은 여교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근처 사는 옆반 부반장에게 지시를 합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소설의 해설과 지문 같은 것들이 그냥 자동으로 입력되고 있습니다.
깨면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 낯설고 요상한 개꿈을 꾸더라도
꾸는 동안에는 그 사건과 내용을 당연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과 유사하다랄까.
저는 꿈을 창조한 전지적 작가가 되어
세세한 모든 상황을 채널링이나 자동 기술 같은 방식으로 실시간 보고받고 있는듯합니다
꿈계의 창조주 "무의식"으로부터 말이지요 아주 자연스럽게..
한 학급의 급우들로만 구성된 소집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담당 구역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으면, 반이 달라도 같은 구성원이 되는 모양이네요.
모여서 동네 청소를 하려면 이렇게 밖에 짤 수 없었겠지요.
타반과의 인맥을 자랑하는 오지랖쟁이거나 활달하여 친화력이 좋은 친구가 아니라면 - 한 달에 한 번으로는 - 매번 뻘쭘함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애매한 모임입니다.
하물며 저의 꿈 분신(드림 바디)인 중학생 지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데다 이번에 처음 나오기까지 하였으니
뻘쭘함의 정도가 아주 심했겠죠.
다행히 평상시 그를 다정히 대해 주던 같은 반 정식이가 보이네요.
그가 반가워하는 미소로 지수를 맞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이제 겨우 열 서너 살은 되었을까 아직은 사춘기도 본격 진행되지 않은 파릇한 아이들 머리 모습이 참 가관입니다.
정식이도 지수도 갓 산에서 내려온 동자승인양 머리를 빡빡 민 상태입니다. 스포츠머리는 저리 가라네요.
중학생 두발을 저 지경까지 단속한 시대라면 제 중학교 시절보다 훨씬 예전이란 얘긴데 음..
흥미롭군요. 과연 몇 년도일까.
정식이의 시시껄렁한 농을 대충 한 귀로 흘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척하며 슬금슬금 지수 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역시 그 시절다운 귀밑 이 삼 센티의 앳된 단발이 그를 힐끔 쳐다보며 가볍게 목례를 하네요.
당시에는 희소했을 텐데 남녀공학 정확히는 남녀 병학이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제가 중학교를 남녀병학으로 나왔기에 꿈에서도 이렇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두발 자유화 이전이라면 70년대거나 최소한 80년대 초반인데 그때에도 요런 맹랑한 여학생이 있었네요.
자기가 먼저 인사하는 걸 넘어 (길게 이어질) 본격적인 대화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눈빛부터가 똘망똘망한 것이 귀엽고 깜찍한 인상이라 적극적인 성격을 가늠은 할 수 있었지만
이처럼 대놓고 접근하여 말을 걸어올 줄은 미처 예상 못 하였습니다.
너 지수 맞지? 나 13반 미화부장 영미라고 해.
네 얘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어. 너 우리 학교 유명 인사잖니.
지난번 네 덕에 우리 반 애들도 치킨 회식 잘 했어. 다들 고맙대.
어? 어.. 그래..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쑥스럽게..
학교에서도 가끔씩 마주쳤는데 넌 기억 못 하지?
네가 이 동네 사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오늘에야 만나는구나.
그간은 너 대신 그 잘생긴 오빠가 나왔잖아 그치?
어어.. 김기사 아저씨가..
이제부턴 내가 직접 나올 거야.
그래? 그렇담 잘생긴 오빠는 이제 못 보는 거야? 좀 서운한데?
하하 농담.
실은 매달 보면서 얘기도 나누고 쬐끔 친해졌걸랑.
어어? 방금 그 표정 뭐야?
호호, 걱정 마. 오빠가 네 뒤따마 아주 조금 밖에 안 깠어.
또 정색. 너 귀엽다.
이것도 농담이니까 오빠 자르기 없기?
뭐야..
왜 첨 만나서 농담만 해? 내가 만만해?
화났어?
우웅.. 미안.
용건만 말할게. 나 네가 맘에 드는데 오늘부터 나랑 친구 할래?
친구? 여자 친구 말하는 거야?
오호, 얌전한 샌님인 줄만 알았는데 나보다 앞서가네?
여자 친구면 더 좋고.
그럼 다시 물을게. 나랑 사귈래?
어 으음.. 글쎄..
뭐라 해야 할지..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에게 노골적인 대시를 받아 보는 장면이군요.
유치원이나 국민학교 시절 스스럼없이 여자애들과 곧잘 놀기는 하였으나, 사춘기 초입으로 들어선 이후 여자 만날 일은 어른이 되기 전까진 없을 거라 생각하고 꿈조차 꾸지 않던 터에, 방심한 지수 앞으로 이렇듯 깜빡이 없이 훅 들어와버리니
얼떨떨하고 잠시나마 정신이 아뜩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잠깐의 당황스러움은, 두근거리는 긴장감과 황홀함이 뒤섞인 묘한 기쁨으로 빠르게 대체되었습니다.
그를 지배하는 왕성한 호르몬이 다시 안 올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강하게 종용하는 것 같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까짓 거 사귀지 뭐.
너 좀 멋있다 남자한테 말도 다 걸고.
오해는 마. 나 아무한테나 막 이러는 애 아니야.
너니까 용기를 낸 거라고.
어련하시겠어.
이제야 하는 말인데 난 사실 너처럼 적극적인 여자애가 좋아.
그런데 넌 내가 왜 좋은 거야?
부끄럽게 그런 건 왜 물어.
그냥 귀엽게 생겼고 귀공자같이 얼굴도 하얗고 내 스타일이라서..
참, 나 너 학교에서만 본 거 아니다? 교회에서도 봤어.
그래? 난 왜 못 봤지?
그럼 거기서 아는 척하지 그랬어.
응, 나 너네 교회로 옮긴지 얼마 안 됐걸랑. 아직 성경공부 모임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렇구나. 아무튼 앞으로 교회에서도 자주 보겠네.
아니 이따가 교회에 올 거잖아. 그럼 거기서 다시 보자 성경공부도 같이 하고.
응 알았어.
이따 얘기해도 되긴 한데.. 에이, 말 나온 김에 해야지.
오늘은 외할머니 댁 가야 해서 안 되고, 우리 다음 주말에 같이 영화 안 볼래?
영화? 나도 영화 보는 거 좋아하긴 해.
그러자. 담 주 토요일 수업 마치고 같이 영화관 가자.
근데 무슨 영화 보지? 우리가 볼 만한 게 있나?
지수 너, 무서운 거 좋아하니? 요즘 잘나가는 공포영화가 하나 있는데 말이지..
들어는 봤나 13일의 금요일!
어, 당연하지. 나도 공포영화 없어서 못 볼 정도이긴 한데..
그걸 같이 보자고? 너도 여자애가 취향 참 독특하구나.
그런데 내가 알기론 그 영화 미성년자 관람불가거든. 그림의 떡이라고.
다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롱. 아무렴 대책도 없이 그걸 보자 했을까.
친척 언니가 개봉관 매표소 아르바이트하고 있걸랑. 잘 말해뒀으니 우린 가서 보기만 하면 돼.
스무 살처럼만 보이게 잘 차려입고 가자고.
참고로 나 그날 화장도 살짝 할 거야 히히. 큰 언니 원피스 몰래 훔쳐 입는 건 기본이고.
근데 네가 걱정되긴 한다. 얼굴에 수염을 그릴 수도 없고..
키도 나보다 작으니 어떡한다?
넌 부자니까 일하는 아줌마나 아저씨한테 잘 좀 꾸며달라고 해 봐.
되도록이면 굽 높은 구두 같은 거 신고 나오고.
맞춤양복 여러 벌 있으니까 그중에 하나 골라 입고 나오지 뭐.
그리고 저기 전봇대 뒤에 서 있는 아저씨 보여? 내 경호원이야.
아저씨가 차 태워 줄 거니까 편하게 갔다 오자.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우왕! 저 아저씨 프로 레슬링 선수 같으시다.
짐작은 했지만 너, 경호원도 있고 대단하다.
좋아, 그럼 아저씨랑 셋이서 관람하면 되겠네. 무서운 장면 나오면 저 두꺼운 팔에 매달리고 말야 후훗.
13일의 금요일이 개봉한 연도라면 제가 갓난아기였던 해로군요.
역시 애들이라 그런지 천진해서 금세 허물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키만 길쭉하니 컸지 꾀죄죄하고 깡마른 정식이가 몹시 부럽다는 표정으로 지수와 영미를 번갈아 보면서도,
급작스레 여자친구가 생겨버린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눈치였습니다.
또 한 명.
멀리서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그윽함을 가득 담아 이쪽을 주시하는 아저씨도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고 있네요.
자신의 조언을 단박에 실천하는 도련님이 무척이나 대견하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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