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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상가상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1. 4. 15:51
박 주은.
지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틈만 나면 그에게 말을 걸려고 애쓰는 여학생이다.
덕망 학원 이사장이 대기업 총수인 지수의 아버지 나회장에게 잘 보여 두둑한 후원이라도 받아내 볼 요량으로, 심약해 보이는 왜소한 체구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머리가 뛰어나고 공부도 잘하는 지수를 전교 학생회장 자리에 앉히려 하였으나, 교사들과 학생회 간부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등의 편법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내성적인 성격의 지수가 -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강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 학생회장의 자격에 턱없이 미달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의 반대는 완강했으며, 우선 지수 본인이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여 섭섭하던 차에, (담임의 강제적 지시로) 학급 내 학습부장 자리를 마지못해 떠맡은 지수와의 접촉을 자주 갖으려고, 학습 지도 및 향상을 위한 학생 측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 예전에 없던 - 각 학급 학습 부장들 월례모임까지 결성토록 하였으니, 남 앞에 나서길 몹시 꺼려하는 지수로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달 15일, 교장실에서 이사장과 교장,교감이 참석한 가운데 이른바 "전교 학습부장 회의"라는 것이 급조되어 처음 열렸고, 주은이는 9반 학습부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소문으로만 들어 대략 알고 있던 나지수를 이날 비로소 - 가까운 위치에서 -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괜스레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등 지수에게 자주 말을 붙이려 하는 (평소의 근엄한 모습답지 않은) 이사장의 속 보이는 호들갑에, 윗분 모시는 데에는 이력이 나 있는 교감조차 눈치껏 마땅찮은 기색을 흘리는 판인데, 하물며 학생들의 속은 얼마나 느글거렸을까.
이사장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 그것이 부담되어서 - 지수는 변변한 발표 한번 못해 보고 머리를 떨군 채, 달아오른 두 볼을 - 식혀보겠단 일념에서인지 - 손바닥으로 연방 어루만지기만 하였다.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붉어지는 얼굴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게 되자, 당황하고 초조해진 지수가 이번엔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워낙 수줍음이 많은데다, 가까이서 여학생들과 마주 앉아보는 것은 사춘기로 접어든 이후 처음인지라, 스스로도 마음을 굳게 먹고 참석한 자리였지만,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무섭게만 여겨지는 세 어르신들도 신경에 거슬렸으나, 무엇보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개만 들면 정면으로 보이는) 예쁜 주은이가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다.여학생들의 시선이 자신의 활활 타오르는 얼굴에 모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지수는 말초신경들이 물구나무서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지수가 귀엽게만 보이던 주은은, 이때부터만만한 그를 괴롭히기(?)로 작정하게 된다.
중2의 어린 여학생 티가 역력한 조그맣고 앳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161CM의 늘씬한 몸매가 제법 다듬어진 그녀에게 있어, 자기보다 키가 한참 작아 보이는 깡마른 멸치 같은 지수는 남동생뻘의 만만한 상대였다.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과감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계집애같이 하얗고 보송보송한 피부에 귀공자풍의 귀엽살스러운 외모.
귀티나는 금테 안경 뒤에 진지함을 감추고 있는 듯한 무표정.
지수의 이런 단편적인 특징들이, 사춘기 소녀로 막 성장하는 주은에게 모성본능이라는 희한한(?) 감정을 선사함과 동시에 풋사과 같은 연정을 싹트게 하는 거름 역할을 하였으나,어마어마한 재력가의 늦둥이 막내아들이라는 번쩍번쩍한 배경은 -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환상적인 매력포인트가 될지언정 - 비교적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주은이의 때 묻지 않은 정서를 낭만적으로 가꾸는 데 있어 필요조건이 되지 못하였다.
한편, 그녀의 맹랑한 대시에 지수는 엉뚱하게도 처음부터 주눅이 들었다.자신보다 큰 여자애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심장이 떨리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타인의 주목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왠지 불편하기만 한 그에게 주은의 소녀적 매력을 음미할 여유를 기대하기란 힘든 것이어서, 불행(이랄 것까지야 없지만)히도 그녀의 순수한 관심은 허망한 짝사랑의 전주곡이 될 공산이 컸다.
물론 이 시절은 사춘기적 감성의 풍요로운 숙성에 있어 여자애들 쪽에서 좀 더 일찍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진행되는 성질이 두드러지므로, 아직 젖살이 덜 빠진 사내 녀석의 무덤덤한 반응을 그러려니 하고 보아 넘길 수도 있겠으나, 지수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성적 판타지가 왕성하게 피어오르는) 또래의 다른 사내애들에 비해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적어서, 여자에 대한 단세포적인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보통 멋진 이성을 대상으로 정하고 출발하는 그 시기의 설익은 연애 감정을, 지수는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다.
(이 즈음 흔히들 시작하게 되는) 본능적 자위 행위마저 관심이 없어, 원활한 배출을 차단당한 정자들이 데모를 일으킬 정도였으니..어쩌다 하는 몽정도 적응하는 데 일 년여가 걸릴 만큼, 그에겐 남자로 되어가는 자체가
혐오스럽고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었다.
다만, 그의 다분히 여성적인 정서상사랑,낭만,고독,감상(感傷)과 관련한 추상적인 감수성은 예술작품들(문학,음악,영화 등..)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배양되었다.
즉, "몽환적이면서 실존적인" 사랑의 신비에 이론적으로는 매혹되어 그것이 운명과 조우하는 예술성을 꿈꾸긴 하면서도, 그러한 낭만적 감성을 현실의 이성(異性)에게 접목하여 그녀와의 사랑을 시도하는 시행착오는 상상조차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성과 눈을 맞추고 상대의 호감 가는 첫인상과 매력에 반하는 것이 첫 단계인데,펄펄하게 살아서 자기 앞에 돌아다니는 여자애들에겐 좀처럼 관심이나 궁금증이 생기지 않으니,
첫 단계를 밀고 나갈 원동력이 아예 없는 격 아닌가.
더군다나, 자기 좋다고 선머슴아처럼 다가오는 솔직 발랄한 주은이에겐 거부감 밖에 들지 않으니애정이 꽃필 리 없지 않겠는가.
지수가 여학생들 앞에서 무척 수줍어하고 잔뜩 긴장하는 것도(주은이 역시 이 점을 오해하고 있지만) 자신과 성별이 달라 외계의 존재 같은 그녀들이 단순히 두렵고 부담되어서이지,
이성에 대한 호의적인 두근거림 때문은 아닌 것이다.
단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성적 성향 탓이라 돌리고 덮어두기에는 (당시 주변 어른들은 다들 이렇듯 쉽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사실 그의 심리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나중 일이지만, 지수는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후에도 여성의 원형(原型)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양성(兩性)의 정형화된 표출로 각질화한" 현실 속에서 질식의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
중증의 강박증 환자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유사(類似)동성애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이상(理想)적인 여성성"에의 집착과, 이상적인 사랑을 유지하려는 광적인 편집에 사로잡히고야 말,
그리하여 결국엔 자기 파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보더라도,
사춘기 소년의 예사롭지 않은 이상(異常) 심리는
그의 인생 전체를 잡고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비중으로 심각하게 고려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 예고되는 불운 앞에서 어른들은 무지했고악마의 사악한 복잡성에 희생될 날만을 기다리는 고독한 소년은 무기력하기만 하였다.
6년 후, 지수의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 현실에 존재하는 -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열렬한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지수의 성장하는 내면에 균열을 야기하는 "정체성의 혼돈"과, 그것으로 인한 갈등의 전개되는 양상으로 보아,전혀 예상할 수 없던 돌연변이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사건의 6년(이나) 전인 지금,주은이에게 그러한 그의 "기적"이 적어도 제 발로 찾아와 줄 것 같지는 않다.
`주은이의 큰 키를 왜 생각 못했지?
맨 뒷자리에 앉아 있을 거란 사실만 알았어도, 어떻게든 이 자리를 피했을 텐데..'
여자애들이 자신의 알몸을 마음껏 감상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하여자괴감과 절망의 골짜기 사이를 오락가락 하던 터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주은이에게까지 처절한 모습을 들키고 말았으니..
9반에서 수업중이던 가사 선생님(노총각 선생들 사이에 인기 만점인 글래머형의 처녀 교사)과 싱글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담임이 얄밉고 원망스러워, 지수는 그에게 한 바가지 저주(?)를 - 물론 마음속으로 - 퍼부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투명인간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한 바가지가 아니라 한 드럼통이라도 퍼부어 주련만..
지수야, 주은이가 널 알아봤나 부다. 이 쪽을 보고 웃는데?
`이 생각 없는 놈아, 그렇게 생중계 해주지 않아도 나 충분히 괴로우니까 제발 작작 좀 해!'
공 상만! 나 지수!벌받는 중에도 잡담 하나?! 너희 둘,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 쟤가 그 유명한 지순가요?녀석, 귀엽게 생겼네. 그런데 너무 말랐다. 부잣집 아들이 웬일이니..
엄마, 걱정하시겠네. 살 좀 쪄라, 얘.
뺀질뺀질하게, 낄 때 안 낄 때 없이 나서기 좋아하는 경택이.
가사 선생님 바로 옆에서 운동으로 다져진 상체를 은근히 자랑하며 두 교사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가,고기가 물 만난 듯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특기인 "여선생 희롱"의 현란한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저기, 선생님만큼 말랐나요?
어머머, 요 녀석 말하는 것 좀 봐!?
경택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머리 위로 "붉은 마귀"가 곤두박질한다.
두개골이 빠개질 때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둔탁하게 울리며, 겨우 잠잠해져 있던 복도로 메아리쳤다.
이놈아, 또 시작이야?선생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좀 이렇습니다.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어요.얘! 내 몸매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니!
받아치려고 씰룩이는 경택이의 입술을, "붉은 마귀"의 번들대는 주둥이가 덮친다.
너, 입 안 다물고 있으면 본드로 땜질해 버릴 거야!?
본드는 몸에 해로우니까, 정성 들여 한 땀 한 땀 바늘로 꿰매는 게 어떨까요.. 김 선생님?
예??
아이참, 내 정신 좀 봐. 욘석들 골체미 구경하느라 수업하는 거 잊어버릴 뻔했네.
그럼, 수고 많이 하세요, 김 선생님.
아, 예 예!..
볼륨 있는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교실로 들어가 버리는 가사 선생님의 뒷모습을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담임.
선생님, 양복에 침 떨어지겠어요.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와 대담하기 그지없는 경택의 현란한 혀놀림이 지수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괴팍스러운 담임도, 넉살 좋고 배짱 두둑한 경택이하고는 자주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등마치 친구지간처럼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많았다.
무뚝뚝한 그의 감추어진 유머감각을 유도하며 "붉은 마귀"의 고문에도 아랑곳 않고 여유롭게 말을 받아넘기는경택의 사내다운 배포가 마음에 들었는지, 웬만한 말장난은 눈감아주는 편이었다.
호남형(好男型)으로 남자답게 생긴 데다 운동도 잘하여 교내 배구팀의 주장을 맡고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그 애의 표적이 되는 당사자들(미혼의 여선생들)조차도 녀석의 유들유들한 농지거리와 은근슬쩍 눙치는 버릇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애교쯤으로 - 그녀들의 그날 기분에 따라 - 봐주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는데, 이는, 장난기의 수위를 적당하게 유지할 줄 아는 경택의 세련된 운영(?)의 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마음 여린 신참 여교사를 울릴만치 장난의 도가 지나쳐담임을 비롯한 정의감(?) 넘치는 몇몇 열혈 남교사들에게 돌아가며 응징(?)을 당하는 적도 있긴 하지만..
한동안 꿇어앉아 손을 들고 있던 통에 갑자기 일어서려 하니 어깻죽지와 오금이 저리고 쑤셔왔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선 지수는,따끔거리는 주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상만이의 널찍한 등 뒤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어이, 경택이 너도 일어나라!너희 세 놈은 이 정도 벌 가지고는 만족을 못하는 모양인데..
지금부터 말이지, 9반 뒷문으로 들어가서 교실 뒤편 구석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다.
빨리 들어갓!!
난 교실로 가서 남아있는 녀석들 정신 개조를 위한 훈화를 하고 있을 테니,모두들 이 자세로 10분만 더 있다가 정확히 2시 20분까지 교실로 복귀하도록.
그동안 요령 피우는 놈들은 개박살 날 줄 알아!?
이따가 가사 선생님께 물어보면 느그 놈들 벌 받는 태도가 어땠는지 단박에 알 수 있으니깐, 괜히 허튼수작 부리지들 말고 얌전하게 있다가 내려온다, 알았나?!
예에__!!
거기 세 놈! 빨리 안 들어가고 뭘 해?!붉은 마귀로 한 대씩 맞고 들어갈래?
`정말 해도 너무 하는구나. 차라리 날 죽여라!'
여유작작한 경택이는 이 순간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가슴을 쫙 펴고 보무도 당당하게 앞장서 9반으로 들어갔다.이어서 터지는, 여학생들의 찢어지는 비명과 환호성.
어미 등에 찰싹 붙은 아기 코알라처럼, 지수는 상만이의 우호적인 협조 아래 교실 뒷벽에 붙다시피 하여 들어왔다.
교실의 뒷자리를 점령하여 요새화하고 있는 왈패들이, 경택이의 다부진 몸매와 지수의 화려한 팬티를 노골적으로 주시하며, 휘파람을 불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좋아서 날뛰고들 있다.
그녀들처럼 한 말썽하는 말괄량이는 아니지만 큰 키 탓에 뒷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창가에 앉아있는) 발랄한 주은이는, 뜻밖의 사태에 당황은 하면서도마음에 두고 있는 지수의 벗은 몸을 훔쳐보기 위해 자꾸만 돌아가는 자신의 목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앙상한 몸을 어떻게든 가려 보려고 친구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에게서, 그녀는 연민과 함께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조용히 못해?!!별 꼴이야, 날 뭘로 보고..
자기 반 애들 벌줄 거면 조용하게 줄 일이지, 왜 남의 반까지 쳐들어와서 피해를 주냔 말이야!
수업의 맥이 자주 끊겨 바짝 약이 오른 가사 선생이, 가느다란 금속 안테나를 길게 뽑아 신경질적으로 교탁을 두드린다.
야! 너네 세 명 당장 나가지 못해?!
지엄하신 담임선상님의 명령이시라 저희도 어쩔 수 없사옵니다.
경택이, 너어..!!?..
바로 이때,이 끔찍한 해프닝에 일대 종말을 고하는 또 다른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