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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꿈 곁을 거니는 고독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2. 12. 16. 20:44
(1)
처음으로부터 어딘가에서,
"처음의 나로부터 몇 번째"의 나를 걸고,
댄스파티를 뒤엎기 위한
주사위 놀이가 벌여졌다면,
"지금의 나"를 깨우는 천둥 번개는,
북극성 너머 널브러진,
주사위 구르는 소리들인가.
핵폭발을 기다리는 증발이
후끈하게 애무를 하여,
당황한 눈은 떠지지 않는다.
베갯속에 기생하는 근질거림이,
지옥에까지 고인 오르가슴을 참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이 쏟아 내는 천국들.
공룡처럼 사라질 그것들이
눅눅한 침대 위에서 끈적여도당황한 눈은 떠지지 않는다.
처음으로부터 어딘가에서,
"처음의 나로부터 몇 번째"의 내가
주사위를 흔들어,
"숨 쉬며 기다리는 가위"를 떨쳐 버리고,
천둥이 귀띔해 준 확률은
침대를 빠져나와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기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내가
잠이 덜 깬 확률을 껴안는 지금,
멎었던 주사위는 다시 구른다.
(2)
청년인가중년인가
모호함이 빚어낸 3인칭 전지적인 내가
수학 여행을 가려하는가
패키지여행을 가려하는가
푸르름이 덜 빠진 청바지 색의 거리,
뿌옇게 선명한 "동네만 한 세상" 위에서,
함께 가는 들러리들을 대신해 기사에게 묻는다
어느 것을 타야 하는지.
금방 내가 된 그가
여러 대의 도열한 번호들 사이에서 유난히 낡은 무(無)번호를 가리킨다.
캐리어와 백팩이 뭉개져 뿌연 들러리들이
버스 둘레로 모여들 때였다.
겁 없는 중학생이
한껏 멋 낸 폼으로 차도 위를 슬라이딩하다가
멈추고 보니, 흠모받기 딱 좋은 미(美)청년.
툭툭 털고 일어서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보면, 저버리지 않고 이번에도
청순한 추억을 이쁘게 차려입은 오싹한 미모가
저 혼자 컬러풀하게 웃어 준다.
꿈마다 변화무쌍한 익숙함이 이번엔
"날 알아보는 미(美)소녀"가 된 것이다.
나를 버리지 못하는,
참으로 끈질긴,
요 어여쁜 귀신아..
(3) 루시드 드림 1
누군가가
"잠마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찾아온다.
올 때마다 천지개벽하는,
파리한 서정이 온다.
불안과 산만이 찢어 유혈이 낭자한
그리움이 온다.
고착된 매일의 떨리는 기대가 온다.
"세상을 뒤집어 활짝 피어나는" 음울함이
찾아온다.
귀엽게 일렁이는 "나의 다락"으로..
"같은 자리에서 미동도 않는" 빅뱅을
누군가 매일 타고 넘어
차가운 확장을 시도한다.
폭발한 채 멎어 있는 헛웃음이 좋아,
살가운 위협 속을 숨 가쁘게 넘실댄다.
시간을 버리고 달라지는 누군가를
고정불변의 다채로움은 그렇게 백허그한다.
시공 뒤에 숨어 기다리는 나는
잊지 않고 찾아 주는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
집착하는 매일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누군가가,
고독한 천국과 쁘띠한 지옥을 다스릴 때까지.
(다스리는 동안과 다스린 후에도..)
행복에 찌든 영혼의 무게조차 버거운 누군가가
"아련한 유혹이 팽창하는 몽롱한 우주"마저 가르고,
내가 되어 솟구칠 때까지.
(솟구치는 동안과 솟구친 후에도..)
(4) 루시드 드림 2
엄숙 주의 산문이 정장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봉두난발 시의 우스꽝스러운 광대짓에 기꺼이 놀아난다.
헤벌죽 처웃는 울긋불긋 불가지(不可知)가막힘없는 테두리를 찢어
깎아놓은 미지(未知)를 풀어주면,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우등한 방향을 지우고
망망한 협소함을 친숙하게 헤집어 놓는다.
설쳐대는 중구난방을 벗기려고대하소설의 댄디한 광기가
설계된 우주에서 넘어와 휘몰아칠수록,시는 껴입을 평정(平靜)을 움켜잡는다.
과거와 미래의 요란스러운 커플 댄스가 지겨울 만도 해야
은밀한 그녀 안에 누워 신화를 희롱할 자격이 생기겠지.
"신성의 차가운 입김이 닿지 않는" 뫼비우스의 동굴을신나게 미끄러지면
그녀의 격한 반응이,오한을 주입하던 관념들을 녹이겠지.
눌어붙는 시간의 수프를 저어 그녀가 건져 올리는 한 점 추억.
타지 않고 남은 소중한 그것을 그녀의 은밀함이 삼켜야,
직진하는 은총의 추적도 중단되겠지.
빛의 세계에서,부지런한 그녀는
필요 없는 얼굴을 만들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잘생긴 죽음을 곁에 앉힌다.
냉철한 논설이반듯한 책상을 떠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은,
시가 난무하는 "게으른 그녀의 암흑"이 새삼 그리워서인가.
아스라한 태고(太古)가 어여쁜 무정형(無定形)을 가공하던,무량(無量)한 천국들. 바스러지는 시공들.
비실대는 죽음을 밟고 우쭐하는 비장(悲壯)들.
이것들이 행복하게 방목되는, 그녀 안의 비밀스러운 농장.
그리고 그곳에 삽입되는 힘찬 혼돈이줄기차게 뿌리는, 흥건한 시(詩).
천상의 사랑도 시샘하는 "누운 그녀의 열린 비밀"로즐거운 시들이 복귀한다.
넋 나간 시에 놀아나는 무표정한 절망도
질펀한 춤사위를 마치면 복귀해야 한다.
현실 같은 꿈으로 돌아가다시 정장을 하고 책상 앞에 서야 한다.
절실히 아쉬워야 자각하는가.길 잃은 어린 양인 척 가냘프게 휘청거리다가,
그녀가 깨우면
막힘없는 울타리를 뛰어넘어미지의 인자한 난동(亂動) 속으로 들어가 볼까.
깨어남의 방향을 반대로 틀어더 깊숙하게
꿈다운 꿈속으로 깨어나 볼까.'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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