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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꿈 곁을 거니는 고독 1 : 그리움이 꾸는 꿈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2. 12. 12. 14:54

     

     

     

     

     

     

     

     

     

    (1)

     

     

     

    미래도, 미래 비슷한 것도 없어

    답답하지만,

    과거로, 다채로운 "과거 비슷한 것"으로

    찬란한,

     

    무한한 건망증들이 정겹게 펼쳐놓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들이

    난교하듯 부둥켜안고 삐걱삐걱 울부짖는,

     

    억지로 맞춰 놓아 어색한

    하늘과 땅들이

    붕괴 직전의 퍼즐 조각처럼

    흐릿한 구획 안에 울퉁불퉁 갇힌,

     

    아슬한 무한 차원.

     

     

    아기자기한 사건들 속에 숨어 있다가

    슬플 틈도 주지 않고 투욱 툭 나오는,

    나의 생기발랄한 어머니.

     

    투명한 눈물 방울 속 어려진 세상이

    방울방울 증식하여 여기저기 뱉어놓는,

    맑고 화사한 형제 자매

    그리고 희소한 친구들.

     

    나오면 언제나 뒹굴며 노는

    내 어린 애증들.

    추억을 희롱하는 발가벗은 꾸러기들.

     

     

    다시 못 올 곳에 가버린 사무치는 정한(情恨)들이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오는,

    마실.

     

    구실 못하는 주인공의 세계에선 작심하여 퍼붓는

    서슬 퍼런 조연들.

     

    정정한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호령에

    여전히 치미는 속 좁은 분노.

     

    당당하게 활보하는 초라한 죽음들이 너무도 반가워 껴안고 싶지만,

    생령의 흐느낌이 거북한지

    새초롬히 멀어지는 오롯한 영혼들.

     

    염치없는 기쁨이 숨 돌린 새, 사라져 버린 야속한 옛벗이여.

    죄스러운 그리움이여..

     

     

    도도하게 펄럭이는 정염의 막으로

    칸칸이 나누어진 망망한 색계.

     

    정욕의 야릇한 내음에 취해 칸칸이 점령하는

    내 요염한 일탈들.

     

    지옥으로 떨어질 주제가

    지옥에 함께 갈 놈들을 응징하려고 요사를 떨 때면,

    항상 등장하여 졸렬한 분투를 북돋는

    미모의 귀면(鬼面)들.

     

    흥분하는 폭주를 쫓는

    올망졸망한 미색(美色)들.

     

    곧 날아오를 히어로를 위해 자각(自覺)을 부수는

    괴기한 화장발들.

     

    자각을 피해 숨은 공포 앞에서

    다 풀어헤치고 깔깔대는

    고혹적인 음란들.

     

    질주하는 비몽사몽을 타고

    초췌해진 절정을 남김없이 뽑아내는,

    광란의 질식들.

     

     

    주인 몰래 행하는 텔레파시가

    애잔한 사랑들에게 보내어지는,

    통로.

     

    그녀 몰래 그녀의 희미한 분신이

    어정쩡한 애모의 호소에 포박되는,

    미로.

     

    그녀 삶의 정지된 단면에 환상을 주입하여 부풀려진 생동감,

    그렇게 입체화 된 또 하나의 가상(假像).

     

    그녀가 숨 쉬며 말을 거는 "그녀만의 세상", 아니 나만의 세상.

     

    얼굴이 다르고 이름조차 달라도 그녀라 믿고 싶은,

    착각마저 사랑스러운 풍경.

     

    느닷없이 나타난 "그녀"도 충분히 귀엽고 어여쁘지만

    진짜 과거가 아니라서 못내 아쉬워오면,

    살포시 고개를 디미는 뽀오얀 감격.

     

    진짜가 왔구나!

    나의 영원한 사랑.

    그러나..

     

     

    진짜는 올 수 없는 곳.

     

    진짜를 모르는 무지가 만들어,

    모든 게 진짜인 곳. 몽매의 놀이터.

     

    속살처럼 말랑한 추상화 속으로 초대된

    벅찬 현실감.

     

    잔잔한 시절들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유치한 천당.

    내 수준에 딱 맞는 신비.

     

    내게 들어와 나를 만지는

    구체적인 사랑.

    나의 유일한..

     

     

     

    (2)

     

     

     

    낯선 소도시의 한산한 변두리.

    8차선 도로에서 내린 네가

    주변을 서성이던 나와 용케 만나

    손목을 잡아끌고

    찻길과 인접한 여관으로 들어가더라.

     

     

     

    까마득한 2층 높이까지는

    송전탑 같은 앙상한 철골 구조물.

    그 위에 덩그러니 목재 건물 한 채가 부실하게 올려져 있는,

    기묘한 곳이었어.

     

    헛디뎌 추락할지도 모르는 가파른 철제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올라

    주인장 없는 허름한 그곳으로 무작정 들어갔는데,

    그 안은 예상 밖이었지.

     

    아담하고 아늑한 장소더라.

     

     

     

    푹신한 침대 위에 우린 누워

    여유롭게 테레비를 보았다.

     

    흥분된 맘과는 달리

    이상하게 잘 안 되더라.

     

    잔뜩 기대했던 네가 결국은 뒤돌아,

    민망함을 어루만지자,

    또 금방 부풀어 오르더라.

     

     

     

    결합하는 동안

    어둑하던 사방이 밝아지면서

    난데없는 웅성거림이 들려오더라.

     

    고개 돌려 주위를 보고 경악하였다.

     

    밀폐된 공간을 둘러싼 합판은 투명한 유리로 변하여 있었고,

    우리만의 보금자리란 착각을 비웃으며

    겹겹이 에워싼 군중이 너와 나를 구경하더라.

     

    눌러쓴 중절모들 아래로

    5,60년대식 구형 카메라들이 연신 후레쉬를 터뜨리더라.

     

     

     

    소스라친 우리를 가릴 짬도 없이,

    한 무리의 남녀들은

    연기처럼 스르륵 방 안으로 들어왔어.

     

    서너 명의 남자들은 너를 붙잡았고

    서너 명의 여자들은 나를 주물렀지.

     

    우람한 그들이 너에게 달라붙어 갖가지 실험을 행하는 사이

    굶주린 관능들은

    반복하여 나를 키우더라.

     

     

     

    난감하던 표정에는

    시나브로

    야릇함이 번지고..

    꼿꼿한 낯섦들이 주입하는 만신창이 환희에

    넌 사뭇 만족스러워하더라.

     

    나 또한

    과감한 익명들이 그다지 싫지 않아,

    어여쁜 조여옴에 흔쾌히 동조하고 있더라.

    너를 방관하면서...

     

     

     

     

     

     

     

     

    (3)

     

     

     

    많이 부족하여 짜증 나는 시리즈물.

    그러나

    과묵한 제작자의 심기를 살피며

    알아서 조금씩 완성도를 높이는

    감독.

     

    부족한 개연(蓋然) 정도는 만족하고 넘어가는,

    과묵한 추억.

     

    한 세상 또 그리 차려지면

    연출대로 움직이는,

    부실한 기억.

     

     

    가끔 내어놓는 로맨스 회차에 유독 집착하는

    시큰한 상념.

     

    한적한 지방 공장의 하얀 작업복들이 나오면

    예상 가능한 줄거리.

     

    추레하게 변모한 구내식당에서

    반가운 조연들과 잡담하며 배식을 기다리는,

    뻔한 기대.

     

    그녀의 등장을 의미하는

    아린 방심..

     

     

    그녀에게 보낼 연서인지

    혼자 간직할 소설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바랜 노트 속 낡은 고백들.

     

    너덜한 종이 위 악필의 영감(靈感)에도 반하여 다가오는

    어여쁜 감응.

     

    복잡한 남녀간 일들 과감히 생략하고

    파릇한 진심 안에 녹아드는,

    아리따운 사랑.

    결핍..

     

     

    옅은 갈색이 더욱 붉어진 머리,

    찹쌀떡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화장기 없는 얼굴.

    이렇듯 유치한 표현으로도

    천상의 미모가 세련되게 그려지는

    앵글.

    시간의 단면에 도드라진 연정만이

    천진하게 나를 찾는,

    드라마.

     

    쌀쌀맞던 현실과 정반대라서

    사랑스러운 비현실임이 입증되는

    판타지.

     

    혹여라도

    그녀의 우수한 감독이

    시답잖은 잡념을 가공하여 나를 새겨 놓았다면,

    무한의 그녀 속에서

    내가 새겨진 단 하나의 작품이 다이아처럼 반짝이고 있다면,

    잠자는 그녀의 수줍은 현실이

    웜홀을 타고 넘어,

    왕성하게 흐느끼는 이 쇠잔한 그리움을 부둥켜안는,

    다큐멘터리.

     

     

    질투하는 주변을 즐기는

    당당한 사내(社內) 연애.

     

    이십 대 남자의 잘생김에 족하여

    똑 부러진 새침을 벗는 

    무욕, 청순.

     

    왕자병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나를 찾아 품는

    일편단심.

     

     

     

    다만 아쉬운 건,

    관능이 묘사되는 씬에서

    허락 없이 대역이 투입되기도 한다는 점.

     

    늙어가는 나를 보고도 좋다며 달려드는,

    그녀를 닮은 엑스트라.

     

    파아란 조명에 나신을 뽐내며 충실히 연기하는

    괴이한 위화감.

     

    주연을 감동케 하는 애욕이면

    양기에 허기진 가짜인들 어떠하리..

     

     

    내가 좋아서

    자취방의 자물쇠를 기꺼이 여는 그녀.

     

    깔끔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불결함부터가 NG.

     

    내가 그녀 방에 들어왔는지

    그녀가 내 방에 들어왔는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허술한 시나리오.

    허름한 방의 지저분한 디테일은 사라지고

    줌인되는 주인공들.

     

    죽은 듯 잠자는 진짜(?) 옆에 붙어 앉아

    연서를 쓰는 나.

     

    잠옷 사이 드러난 살색 욕망을 외면하고 쓰기에만 열중하는,

    나답지 않은 나.

     

    그렇게 그녀를 희망하며 행복해하는 나를 끝으로

    크레딧이 올라와도,

    점점 작아지는 화면의 밖에 있는 난

    그것이 해피엔딩 아님을 곧 알 수 있지.

    처음부터 음침한 색상과,

    오래된 밥상 위의 두툼한 노트.

    그리고

    흐릿하게 없어지는 그녀.

     

    해피엔딩일 리 없지.

    다음엔 각본을 고쳐 써 볼까.

     

    안 될 걸 알지만,

    대역 아닌 그녀와 진하게 살을 섞고 뒹굴어나 볼까.

     

    나의 대사(臺詞)와는 차원이 다른

    애드립인데,

     

    안을수록 그립고

    입 맞출수록 슬픈

    다른 우주인데,

     

    그런다고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겠지.


     

     

    (4)

     

     

     

    눈을 감으니 그녀가 다가옵니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녀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눈을 닫고 나를 잊어야 "나를 감싼 그녀"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불그레한 미녀들을 흘끔거리는 시야에

    시원한 안약이 번져옵니다.
    부르르 떠는 깜박임으로 투명이 파고드는,

    흐릿한 풍광입니다.

     



    눈 감은 나는 적나라한 터치를 갈망하지만
    스치며 지나갈 하얀 그림자로 그녀가 다가옵니다.


    눈을 감아도 다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기척에,
    무한(無限)을 쥐고 웅크린 그림자는 탈색됩니다.


    하얗게만 보이는 착시를 지적받지 않으니,
    꿈에 취해 수척해진 그림자는

    하얗게 살이 오릅니다.

     



    그림자조차 눈부신, 그림자여도 충분한

    그녀가
    "유혹하는 마녀"들을 그림자로 묶어놓습니다

    내가 홀리지 않게.
    방울방울 떠다니는 시간들이 정렬하여 행진하지 않게.

     



    무한의 그림자가,

    감은 눈꺼풀 안에 갇혀 하얗게 상승합니다.


    나를 잊어도 그림자인 나는,

    "나를 감싼 그녀"를 안으려 합니다
    노골적인 투명함 속으로 사라지려 합니다
    파릇파릇 돋는 천국들을 하얗다고 믿으며.

     



    그녀의 맑은 속살이 그립지만,

    그림자가 키우는 그림자는,
    성스러운 그림자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얀 그림자 뒤

    무한 광년 거리에 있을 또렷한 연민이,
    눈꺼풀만한 다중우주를 뚫고 나와서,
    감은 눈 위에 입을 맞추고 지나갑니다.


    눈 뜨면 감당 못할

    무색의 햇살 가득한 위안입니다.

     

     

     

    잠 밖에서 그녀가 손짓해도 돌아볼 용기 없는 그림자는

    하얗게 부푼 리얼리즘이 빠지고 야위기 시작합니다.

    하얗게..

     

    그리고,


    스치는 영광이면 족한 흐릿한 풍광 아래

    온통 하얘진 착시를 즐기며,
    정숙한 뭇여인들의 교성에 흠뻑 홀려봅니다
    그녀가 다시 드리워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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