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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시간을 거니는 고독 1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2. 12. 7. 16:51

     

     

     

     

     

     

     


    평일 한낮의 지하철을 타고 있네.

     

    덧없는 무위(無爲)를 치열하게 살려고,

    다 놓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나의 공간을 향해 가네.

     

    아니 억누를 필요도 없지.

    다 놓을 수 있는 소수의 광기는 내게 두려움일 뿐이니까.

    애달픈 양심과 비루먹은 죄의식은 광기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타성과 무표정은 허용할지라도.

     

     

     

    너무도 인간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렇게 삶의 의미를 획득하고 이기심을 용인받은

    단출한 박색의 아름다움들이 지하철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네.

     

    평일 한낮의 치열함들은 연식이 오래된 지하철과 닮아 있네.

     

    팔팔한 아침들의 사늘한 부지런함이 끈적하게 흔적을 남겨놓은 의자마다

    죽음과 가까워진 여유로운 한낮들은 빽빽이 들어차 있네.

     

    본인들이 키워낸 효성스러운 욕망들, 매정한 연민들, 단정한 우격다짐들을 다투어 자랑하네.

     

    한 많은 슬픔들이 허름한 경망을 차려입으니,

    영혼이 허덕이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기한 다 된 육신으로 치열하게 공회전하네.

     

    모두 다

    강요된 희망에 마취되어

    태엽 감긴 꿈에 중독되어,

    지진한 가슴속 천덕꾸러기 감상이 뺨을 타고 흐르는 때조차

    그 단출한 아름다움에 모터를 다니,

    자글자글한 눈가에는 시커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

    불연소한 무위를 헛되이 게워낼 뿐이네.

     

     

     

    녹슨 환상의 안락함이 두 줄로 반듯하게 놓인 위를

    육중한 착각은 덜커덩거리며 달리네.

     

    분양받은 혹은 임차된 이기심을 향하여 왕성한 피곤들이 졸고 있네.

     

    자가도 전세도 월세도 아닌 곳에 모셔 놓은 악취나는 무위가 염려되어

    나는 다 놓고 싶은 충동 억누르며 누추한 그곳을 향해 가네.

     

     

     

    다 놓을 수 있는 소수의 광기에도 과감히 눈을 흘기는 날 선 무표정들.

     

    하물며

    덧없음을 치열하게 이어가는 게으름이 제 아무리 총명해도

    우직한 타성의 부지런함 앞에선 한낱 혐오의 대상일 뿐이지.

     

    양심과 죄의식이 가공되어도 아랑곳 않는 덤덤함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베푸는 순박함 덕에

    잘난 세상이 사네.

    못난 내가 사네.

     

    그래요, 그 덕에

    둥글둥글한 세상이 사오.

    이 모난 내가 사오.

    인정하리다..

     

     

     

    다 놓는 광기가 두려워 치열하게 나아가는 무위는

    누더기 공포를 간신히 걸치고 있네.

    그렇지만,

    깊고 좁은 무위는 용기가 없어 죽어도 앵벌이는 하지 못하네.

     

    그럼에도 지레짐작

    알아서들 시선을 피하는 무심한 공회전들.

    이렇게 약은 척을 하여도

    얕지만 넉넉한 이들이라 결국은 무용지물까지 끌어안을 테지.

    뭘 모르고 본능으로 그리할 테지.

    그러니 아름다움인 게지.

    그러니 미워할 수가 없지.

     

     

     

    조각 같은 도깨비들의 울긋불긋한 유토피아를 짝사랑만 하다 갈

    처절하게 구체적인 신기루들

    경박한 애착들이

    악착 같이 타고 내리고 타고 내리고...

     

    자라다 만 낙천은 치근대는 비관의 여유가 지겨워

    그들에게로 눈을 돌리네.

     

    겁 많아 다 놓지는 못하고 나른한 번민을 선택한

    얼치기 방관자가,

    겁 없이 이것저것 잡고 시름하다 조로해 버린

    천진한 무신경들을 흘깃거리네.

     

     

     

    예정된 비극은

    그들에게 도무지 비극 같지 않은가 봐.

     

    팍팍한 삶에 치이며 걸을 적마다 무디어진 공포는,

    노인네 각질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고

    뒤꿈치 굳은살에 밟혀 비명 한 번 지를 새가 없네.

     

    유치한 번민이 한가롭게 얼쩡대니

    여기저기 언짢은 기색들의 콧방귀 뀌는 소리뿐.

     

    욕지기나는 지배가 싫어도 할 도리는 다 하는

    저 융통성 없는 책임감들,

    존귀한 천박들.

     

    만 년 전부터 추상같은 다스림에 익숙해져 온

    여기 붙어도 흥들

    저기 붙어도 흥들.

     

    각색된 행복, 치장된 낙원을 향하여

    그토록 치열하게 다쳐온 대부분들,

    구십 퍼센트들.

     

    닳고 닳아 감가상각 된 지구와 어느덧 닮아 버린

    구릿빛 중력들,

    핏빛 토지들.

     

    이 못난 나까지 낳아 포기 않고 길러온

    야박한 관용들, 구린내 나는 향기들을

    나는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해야 하는데...

     

     

     

    악마마저 무시하는 비생산을 수발하러 가는 내가

    조급하여 시계를 보네.

     

    고장 난 시계를 일부러 안 고치고

    망가진 액정을 일부러 갈지 않는 내가, 왜 조급한 걸까.

     

    살 만한 무위를 누가 채갈까 조급한 걸까.

     

    견딜 만한 무위를 행복해하는 뻔뻔한 자기암시가 천벌이라도 받을까, 초조한 걸까.

     

    생산적인 아침들에 더부살이하는 무임승차라서,

    노숙할 걱정 없는 레저 같은 무위라서, 그런 걸까.

     

    다 놓지도 못하는 무능한 혈혈단신이

    아웃풋 없는 고독을 간신히 부여잡고 안도하여서,

    반드시 다가올 비극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부질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서일까.

     

    무위를 계획하느라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시계가 떠오르고

    나는 그 시계를 보네.

     

     

     

    유무형의 재화를 남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하는 것은

    다 놓은 것이 아니라네.

     

    부러 가난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을 모독하는 것이라네.

     

    책임을 회피하는 대가는

    피 말리는 불안과 병적 자격지심 그리고 곰팡이처럼 파고드는 우울이라네.

     

    못난이를 거부하는 자존이 스스로 저주를 내려

    참담한 수치(羞恥)는 관계의 도리를 파괴하려 하네.

     

    이리되어 병이 된 건지 병이 들어 이리된 건지

    혼란스러워도 해답은 없네.

    우주를 벗어나야 풀릴 의문이라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무위가

    쇠약한 활달함으로 시계를 보네.

    의기소침해진 시간을 보네.

     

    한 사람의 시간이

    지상으로 올라온 차창을 타고 다사롭게 흐르네.

     

    전철의 속도만큼만 흐르는 시간이라 코끝이 시려오네.

     

     

     

    서글픈 한결같음이 흑백으로 굴절하는 차창에,

    축축이 젖은 동시(同時)들이 달려와 철썩철썩 달라붙네.

    연달아 충돌하는 소행성 떼처럼..

     

    저 멀리 하늘에서 나풀대던 시침과 분침들이

    전철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내려와 내게 무거워진 시간을 알려 주네.

    지금이 몇 시 몇 분일 리 없는데

    자신들을 입증 못하면서 지금은 몇 시 몇 분이어야 한다고 아우성치네.

     

    물기 어린 꽃잎들이 풍경의 역주행에 조의를 표하고

    내 무채색 질주를 빼곡히 뒤덮네.

     

    전철 한 칸은 꽃상여가 되어,

    낮게 읊조리는 무쇠 바퀴의 곡(哭)을 따라

    무작위의 잔상들을 주파하고 있네.

     

    몇 시 몇 분이란 기억들이 나를 떠올리네.

     

    보석 같은 뜬금없음을 타고 와서, "다듬지 않은 나"를 고르네.

    무위다운 무위를 고르네.

     

     

     

    싸구려 오데또이렛 향기가 내 어깨를 노리며 졸고 있네.

     

    매서운 번영을 축복하고 남은 햇살이

    추레한 희망들의 눈치 보는 졸음 위로도 선심 쓰듯 쏟아지네.

     

    싸구려 오데또이렛과 닮은 햇살에서

    코를 쏘는 프리지어 향이 나네.

     

     

     

    햇볕에 드러나는 먼지들처럼

    몇 시 몇 분의 스틸 사진들이 분주하게 부유하다가

    마비된 사랑 위에 한 컷 한 컷 떨어지네.

     

    헉헉거리는 치열함으로 무위를 향해 달음박질하던 내가

    스틸사진 속의 나를 그리워하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멈춤 속의 나를

    칼 든 불안에 쫓기던 내가 연민하네.

    우둔한 나르시소스가 그랬듯이..

     

     

     

    하나의 인생을 미끄러지는 시간이

    유아용 놀이열차보다 하잘 것 없어도,

    졸렬한 드라마보다 못한 스토리의 하품나는 늘어짐 끝에

    김 빠진 사이다 맛 죽음이 기다릴지라도,

    몇 시 몇 분의 단면들은 하나같이 영롱하여

    정지의 여백에서조차 알싸한 시(詩)가 선혈처럼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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