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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하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0. 23. 11:18
우주왕복선만큼이나 거대한 (SIG/SAUER P228 권총의 40 구경 9밀리) 탄알이
대기권에 진입하는 유성처럼 화염 덩어리가 되어 총구를 빠져나온다.
고속촬영의 진수(眞髓)를 보여주듯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그것을 따로이 세울 필요도 없이, 외로운 히치하이커는 그것으로 딸려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그를 지지(支持)해주던 "분신의 친화(親和) 오오라"는 로켓 발사대인 양 떨어져 나갔다.꿈틀대는 고온(高溫)의 "상념 + 금속" 혼합체가, 한 여인의 (공포로 경직된 채 아우성치는) 가녀린 피부 세포들 위에 소행성처럼 충돌한다.
이봐, 지수. 용기를 내!
온갖 힘든 훈련 다 받아낸 자네가 겨우 이까짓 점프에 겁먹고 안절부절인가.자넨 무적(無敵)의 해병대원이야! 잊은 건 아니겠지?
입대 동기인 상준이 형이 내 등을 두드리며, 수송기 엔진음을 능가하는 고함으로 나를 격려한다.
'내게 고소공포증이 있을 줄이야.. 막타워 훈련 땐 안 이랬는데..이거 정말 야단 났군!'
시커멓게 위장한 구릿빛 얼굴에 낙하 초년생의 긴장감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는 (대기 상태의) 훈련병들 철모 위로,조교들의 걸게 쉬어버린 일갈(一喝)이 날아다닌다.
열린 출구 너머엔 구름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단 말야??
눈 질끈 감고 몸을 날려!
비행기 착륙할 때까지 저놈들한테 직사(直死)하게 얻어터지는 것보다야 그 편이 훨씬 낫잖아. 안 그래?
우리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낙하 장비를 재차 점검하면서, 곤두박일 하늘을 향하여 주뼛주뼛 무거운 한 걸음씩을 내디뎠다.
동작들 봐라! 이 정도밖에 못 하겠나?!쪼그려 뛰기 오십 회 실시!!
하나! 둘! 셋! 넷!............
목소리 이것밖에 안 나오지!!?
한바탕 땀을 빼고 나도, 훈련병들은 "첫 번째 시도"의 불안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아, 이제 뻥 뚫린 저 구멍을 박차고 창공을 비상(飛翔)하는 일만 남았다. 알겠나!?
일 번 독수리부터 준비이!!
내 바로 앞이 상준 형이고 난 뒤에서 두 번째였다.
추락의 문턱에서 힘차게 도약한 그가 뛰면서 외친 이름은, "한결".
한결아! 사랑한다!!!
저 자식, 아주 광고를 하는군 광고를 해!한결 안 좋아하는 놈 있나? 도맡아서 생색은...
어쭈 이 자식..야! 49번 독수리. 안 뛰고 뭣해!!
씨발, 나뭇가지에 꽂혀 산적(散炙) 신세 되기 싫음 어서 뛰어! 개센찌야!!
드넓은 구름 세상을 횡단하는 고니 편대가 무심한 두려움을 잠시 홀렸고, 덕분에,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군홧발도 안락한 추진력일 수 있었다.
눈을 감고 몸을 날렸을 뿐인데 하늘은 지체하지 않고 뒤집어졌다.
드릴처럼 파고 들어오는 탄알이 피하조직과 뼈를 갈아내는,"피 튀기는 한참"을 견디기가 몹시 힘들다.
'젠장! 육신을 관통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참혹하기 이를 데 없군.도대체 얼마나 오래 피를 덮어써야, 다른 세계로 빠져나갈꼬...'
엄밀히 보자면, 엄청난 발사 속도가 만들어낸 (탄알을 둘러싼) 초강성 오오라 막이 회전하며 끔찍한 생체 터널 공사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탄알 오오라"에 융합되었다고나 할까..
가공(可恐)할 에너지 빔 역할을 하는 그것의 직경과, 터널의 직경은 정확히 일치한다.
힘줄과 핏줄 신경 등을 골고루 훼손하며 "가장 소중한 장기(臟器)"를 파헤치는 동안,차츰 시야가 환해지더니 이윽고 눈부신 빛의 다발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 드림홀에 가까워진 모양이군.저 빛 속으로 상념을 던지면 탄알과 분리될 수 있으려나..'
드림홀이 내 유체를 흡수함으로써 특이성(特異性) 시공 반응을 일으킨다.
드림홀 내부에서 굽이치는 "시공 진동자(振動子)"들이,일정한 방향으로 꼬아져 있던 각개의 파동 줄기들을 풀었다가 역방향으로 다시 꼬아 나가고 있다.
'앗! 탄알로부턴 벗어난 줄 알았는데..뭐야! 총알째 넘어온 건가..??'
그러나 아까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탄알이다. 코팅된 에너지 막의 살기(殺氣)가 열 배는 더 강력한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발사되어 타깃을 향해 나아간다기보단 명중한 목표물에서 맹렬하게 후퇴하는 듯한,기이한 상황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필름을 거꾸로 돌렸을 때나 볼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영화 속 장면이, 현상계에서 실제 재현되고 있단 말인가.
실재를 의심한 데 대한 응징(?)은 가차 없었다.거대한 블랙홀 같은 (검고 긴) 총열이 화염과 탄알을 함께 삼켜버린 것이다.
순간, 용광로 속을 헤엄치는 열기가 날 휘감았고, 곧이어
시뻘겋게 달구어지는 강선(腔線)을 따라 나는 가속기의 입자처럼 질주해야 했다.
바람도 잠잠한데 11시 방향 덤불에서 미동(微動)이 감지된다.
나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자동으로 놓인 M-16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이를 신호로 다른 대원들의 사격도 일제히 시작되었다.
날렵한 동작의 송하사가 때를 같이 하여 수류탄까지 투척하는 기민함을 과시하는 통에, 우리는 볼일보다 말고 바지 올린 양 어정쩡하게 사격을 끊고, 늪지가 되어가는 진창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땀에 전 철모를 때리고 지나간다.
됐어. 그만 일어나!
몇 초간의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건, 언제나처럼소대장인 박소위의 카랑카랑한 음성이었다.
나는 일어서려다 멈칫하였다.
허리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쳐져 있음을 직감하며 무의식적으로 전일병을 찾았다.
상준이 형!어딨어?! 괜찮아?
짜슥이.. 이 판국에 전일병은 왜 찾노.꼬랑지 지키는 놈이 동기가 부른다고 지 맘대로 대열 이탈할 수 있겠나. 답답키는..
니 꿈쩍 했다간 이쁜 천사랑 한 딱까리 하게 될 기다. 그러니, 가만히 있거래이!
송하사님! 이.. 이게 뭐죠?
그는 - 사색(死色)이 되어 납작 엎드린 -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와서, 그 기분 나쁜 무언가를 번개 같이 낚아챘다.비로소 고개 돌려, 그의 굵고 단단한 팔뚝을 감으며 꿈틀대는 기다란 물체를 볼 수 있었다.
캬아, 요놈 보거래이. 놀라 기절한 놈이 금세 팔팔해져서 발악을 하네.
내 말이 맞제?나일병, 니 까딱했음 곧장 갈 삔 했다 아이가!
송하사의 강인한 손아귀에 목이 졸리어 무척이나 괴로운 듯 징그럽게 뒤트는 녀석의 몸통은, 잔챙이라기엔 꽤나 튼실하니 살이 올라 있다.
고통으로 쩌억 벌려진 아가리에서 독물이 뚝 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