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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되살아난 설렘
    이상한 연애편지 (상준 외전) 2022. 10. 20. 00:58

     

     

     

     

     

     

     

    경미야  넌 지난날 학창 시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나에겐 그때만큼 순수하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

     

    비록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 때묻지 않고 그런대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나름 귀중한 시간들이었지.

     

    더구나, 내겐 그와 같은 소중한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체험이 있어.

     

    너와 처음 눈을 마주치고 너를 의식하며 너를 그리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지금부터 오 년 쯤 전의 일일까..

    (너도 나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의 회귀를 시도해보렴.)

     

    고교 1학년.

     

    그때의 나는 중학생의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한 사춘기 절정의 소년이었지

    주변의 지나가는 여학생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굴만 붉히곤 할 정도로.

     

    아아 그런데..

    널 처음 보던 날.

    아련하게 잠겨드는 기억 속에서 유독 생생히 떠오르는 그날.

     

     

     


    머리를 갈래로 길게 땋아 가지런히 양어깨에 내린 넌

    (확실친 않지만 무르익은 봄을 한껏 느끼게 하는 노란색이던가..

    어깨 부분 봉긋한 밝은 색 블라우스를 안에 받쳐 입었었지 아마.)

    멜빵으로 연결된 짧은 청 원피스 아래 새처럼 가느다란 다릴 드러내어 사뿐사뿐 뛰어다니고 있었어.

     

    발목까지 오는 흰 레이스 커버와 귀엽던 샌들.

    동화 속의 앨리스 같았던 소녀.

     

    주근깨 살짝 앉은 동그란 얼굴로

    보일듯 말듯 수줍은 미소 남기고 저만치 앞서가던, 그날 너의 모습은

    내 마음 한 켠에 깊이 새겨져 평생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스틸컷.

     

     

     


    난 그때 왜 그리 못났었던지..

    네 앞에 당당히 서서 널 향한 호감을 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바보스러울만치 부끄럼 타던 사춘기 소년이라 죽어도 그리 할 순 없었던 거야.

     

     

     


    그날 이후 난 너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였고 대신 숨어서 널 몰래 보곤 했어.

    그럴 때마다 내가 받은 인상은 티 없이 맑은 소녀의 순진한 명랑함.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난 서서히 착각으로 빠져들었지.

    너 또한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거란..

     

     

     


    곰곰이 헤아려봤어. 왜 이런 착각에 점점 사로잡히는 걸까.

     

    머리가 나쁜 난 한참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

    가끔 눈길을 마주할 때마다 네가 던진 엷은 웃음기.

     

    역시 착각이 맞는 걸까. 누구에게나 가벼운 미소로 대하는 그녀의 습관적 태도였을까.

     

    그렇더라도 난 부정하고 싶었어.

    그녀도 분명 내게 관심이 있다는,

    그녀 마음에도 어느덧 내가 자리하고 있을 거란 착각만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었으니까.

     

     

     


    너무 소심했던 나머지 난 어리석게도 괴상한 아이러니에 함몰되어갔어. 

    너도 날 좋아할지 모른다는 암시에 깊이 빠지자 엉뚱하게도 네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거야.

     

    등하굣길 거리에서, 통학버스 안에서, 교정에서, 복도에서 너와 부딪힐 때마다

    난 두근거리는 마음과는 반대로 애써 시선을 거두어 고개를 돌리고는 밀랍인형처럼 굳어져버렸어.

    마치 싫은 사람 대하듯 연기하는 못난 행동이었어.

     

    만의 하나 너도 내게 좋은 느낌을 갖고 조금씩 관심을 주는 시기였다면,

    이렇듯 갑작스러운 이상한 태도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얼마나 서운하였을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진심으로 호감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냉정해지는 심리랄까..

    아니 이 말 취소.

    새침한 국민학생 계집아이도 아니고, 이러는 나 자신 합리화하기엔 참으로 구차한 핑계네 그지?

     

    활달한 다른 남학생과 비교되는 숙맥 같은 행동에 네가 혀를 찼어도 난 할 말 없어.

     

    달리 변호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어 그냥 네가 무서웠다는 졸렬한 진실을 실토하는 수 밖엔.

     

     

     

     

    이제와 돌이켜보니,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널 그냥 막연히 그리워하고 있는 나,

    너 또한 날 좋아하리란 (꿈도 야무진)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나는 감히 믿고 싶어 그 시절 이러했던 나의 심정을 지금의 넌 이해할 거라고.

    소녀를 겪어온 너이기에 소년의 풋설렘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사춘기를 함께 지나온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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