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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셀프 왕따
    이상한 연애편지 (상준 외전) 2022. 10. 22. 06:47

     

     

     

     

     

     

     

     

    경미야, 세월은 지금도 빛의 속도로 흐르는구나.

    엊그제 같은 기억들이 4년여란 시간의 긴 밧줄 저편에서 흐릿한 윤곽으로 매달려 있다.

     

    이제 너도 어엿한 숙녀의 모습이겠지. (그런데 난 아직 의젓한 남성은 아닌 것 같아.)

     

    이쯤에서 의문이 생기니?

    왜 한참 지난 뒤 이렇듯 뜬금없는 편지로 새삼스런 호소를 보내오는 건지.

    대체 이제 와 뭘 어쩌자는 건지..

     

    무어라 답하기 힘든 의문을 갖게 해서 미안해.

     

     

     


    졸업 후 대학이란 냉엄한 사회에 두려운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난 실망과 친해져야 했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사회의 구석구석은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치유의 범위 밖에 팽개쳐져 있음을

    깨닫는 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물론 그 치유 불가능한 구석구석은 학교와 가정도 포함하고 있다. 놀랄 일도 아니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보수주의자는, 사회란 응당 성스럽고 엄숙해야 잘 돌아가는 줄 알았어.

     

    교장, 교감, 학과장, 총장은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높으신 어른이었고,

    교사, 교수는, 학생을 위해 희생하시는 (한없이 감사해야 할) 선생님이셨어.

    하해와 같은 부모의 은혜는 또 어찌 다 값을꼬..

     

    온실의 무기력한 화초는 늘 이렇게 생각하도록 키워졌고,

    혹여 불경한 상상이라도 한다면 그 즉시 벼락이 떨어질 거란 공포에 늘 사로잡혀 살아왔어.

     

    근엄한 대통령은 번개를 치켜들고 호령하는 제우스와 동격이며,

    하늘의 축복을 받는 "우주 만물의 왕"으로, 세상 만인의 임금으로 추앙되어 마땅하다,

    믿었었지. (과장이 아니고 정말 그런 줄 알았어. 이 정도면 순진한 걸 넘어 바보 아니니?)

     

    도덕 교과서는 무조건 진리였고,

    검경과 군은 민중의 지팡이요 국토의 수호자로서 선과 용기의 상징이었다.

     

     

     


    가식과 허위, 거짓으로 가공된 영롱한 보석들.

    이것들을 가짜라고 당당히 밝히는 감정사, 진짜 보석을 만들 수 있는 세공사가 되기 위해서만

    대학에 오는 것은 아닌데..

     

    부조리의 포화를 피해 허겁지겁 들어온 피난처 안에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지겨운 내전은 계속되었다.

    직무를 유기하는 무능한 상아탑 안에서 감정사와 세공사를 자체 발탁하려고 혈안이 된

    날 선 정의들은, 민주의 죽창을 들고 허접한 쭉정이들을 가차 없이 솎아냈다.

     

    세련된 부르주아의 약은 처세를 예약한 예비 권력자들이,

    게으른 위선자, 융통성 없는 도피주의자는 만만한지 잘도 처단하더군

    기세등등한 염라처럼.

     

    그리하여 나는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당하였고, 비굴한 평화의 품에 안긴 왕따가 되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이상을 향해 분투하며 나아가느라 그들은 나 같은 놈한테 관심을 계속 둘 겨를이 없었다.

    고로, 나는 스스로 왕따인 양 행세하고 쥐 죽은 듯 그들을 피해 다닌 것이다.

    나를 기만하는 죄의식의 희롱을 감수한 채..)

     

    이력을 중히 여기는 히스테리컬한 정의에 굴종하기 싫어서,

    유치한 자존심은 푸근한 악마의 아가리 속에 안식처를 마련한 셈이었지..

     

    "그들의 민주는 횡포를 부리지 않았고, 나는 후안무치하지 않았다!"

    이러면 됐지?! 이런 식으로 타협하자고.

    왜, 나 또한 불의에 속한 자라 싫은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이여.

    그러나 미래엔 타협의 전문가가 될 이여..

     

     


       
    적당한 부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이비 보수.

     

    희망 없이 노력 없이 그럭저럭 살아지는 삶도 나쁘지 않은, 아니 참 좋기만 한, 인간.

    (상하좌우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자.

    권태를 지옥으로 간주하고 - 오지 않을 - 절망을 두려워하는 성실한 이들,

    구체적인 절망 혹은 추상적인 절망에 허덕이는 가련한 이들을 모욕하는 자.

    사고방식이나 감정 구조, 합리성, 상식 등에 있어 일반인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별종.)

     

    지금의 불안에 안주하여 죽을 때까지 "불안한 지금"을 살아갈 해탈자(?).

     

    코마와 오르가즘을 구분 못하는 탐미주의자.

     

    이런 수식어들로 나 자신 한껏 추하게 꾸미는 것은,

    결국 내 삶을 지배하게 될 만성 멜랑꼴리에 대한 면역력 확보를 위함이리라.

    가공된 공포에 투항한 무기력한 희생양이라도, 일생을 덮치게 될 트라우마의 난폭한 조롱쯤은 예견할 수 있으니까.

     

    기회주의적 방관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법.

    따르는 척하며 엉뚱한 데다 한 발 걸치는 어설픈 반골을 스트롱맨 권력이 이쁘게 볼 리 없지.

    하도 맞아 멍투성이가 된 뒤통수를 긁적이며 토사구팽의 미덕(?) 속으로 서서히 함몰되어 갈 거란 게 불 보듯 뻔해.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잘못된 행위를 하여 죄를 짓기도 하지. 인간이므로 반성하여 갱생하기도 하고.

     

    비교적 순수한 어린 군상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의 행태에 인간 본연의 한계는 반영될 수밖에.

     

    어린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엄숙한 선"께 용서를 빌어야 했다.

    권세 업은 도덕은 구름 위에 앉아 지독히도 엄격하게 단죄와 용서를 저울질했지.

     

    그렇다면, 화려한 권능이 배설하는 엄청난 잘못은 과연 누가 용서해야 하는 건지..

    어르신의 권위와 체면에 덕지덕지 낀 허물은 젊음들에게 절대 고개를 굽히지 않을 기세인데.

    스스로 반성할 리 없는 옹고집들인데.

     

     

     


    감추기에 급급하고, 감출 수 없는 것은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는, 사악한 브레인들.

     

    죄가 죄이지 않게 두 겹 세 겹 포장하면 진리가 되지. 야비와 가증이 사이비를 키우는 방식이지.

     

    그들의 간교함은 너와 나의 순진함을 교묘하게 이용해왔어.

    충성을 강요받아 순종하는 순수는 진과 선이 퇴색된 채로 "미" 하나만을 보장받았다.

    이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여도 슬퍼지는 이유야. 그들의 하늘, 그들의 권세 하에서는..

     

     

     


    화창한 캠퍼스를 거닐수록 서글프고 허전해. 허탈이 어깨를 짓눌러.

     

    세상이 굴러가는 음험한 이치를 엿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영악한 엘리트들은 오히려 보게끔 만들지 전략적으로.

    낄낄대며 노예의 상실감과 방황을 즐겁게 구경해야 하니까.

     

    비리를 알고 아파하는 건 순수함의 특권이라며 청춘의 성장통을 추켜세워 주지만

    비리의 근원을 타파하도록 허용하진 않지.

    용납되지 않는 금기를 어기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목숨도 위협받는 공포 그리고 절망이, 부릅뜬 사천왕처럼 순교자를 기다릴 뿐이다.

     

     

     


    겁쟁이는 세상을 관통해선 안돼.

    역량 미달의 비겁자가 대책 없이 꿰뚫어 본 죄로,

    저들의 범주 안에서, 순수라 믿었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니까.

     

    그냥 세상의 표면을 기어 다니다 가는 게 차라리 나아. 그것은 마취된 인생이니까.

     

    저들의 인질이 되어 - 귀신 보는 사람처럼 - 흉측한 딜레마를 인지하는 건,

    살기 위해 마취 없이 수술대에 오르는 처절함. 극한의 고통.

     

    저들에게서 벗어나려고, 온전한 순수를 고수하려고 발버둥 칠수록, 아마존의 늪처럼

    저들은 나를 빨아들여 양분을 흡수하지.

     

     

     


    나의 허무와 두려움은 저들의 자양분.

    저들의 영구 동력 장치는, 각성한 노예들의 죄책감이 잉태되는 거대한 매트릭스.

     

    죄악이 낳은 죄책감은 다시 죄악의 씨앗으로 변이 성장하면서 매트릭스를 가동하고,

    그 무한 루프가 생산하는 혼탁한 에너지는, 각성한 노예를 각성한 상태로 타락케 해 다시 죄책감을 짜내지.

     

    그렇게 나는 타락하고 있어..

     

     

     


    경미야, 네가 나를 염세주의자 비관론자로 못 박아도 할 말이 없다.

     

    다만 강조하고픈 건 어둠 속에서도 항상 밝음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야.

    저들이 바라는 이상한 밝음이긴 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저들 세상의 찌그러진 긍정, 왜곡된 낙관이어도 좋아.

     

    동시에, 나를 부양하는 저들과 타협하지 않는, 저들의 속을 긁는, 저들의 상한 음식이 되기로 마음먹었어.

     

    저들은 음흉한 목적으로 내게 투자하지만 난 저들의 기대만큼 생산하지 않으리라,

    저들에게만은 뻔뻔한 이기주의자가 되리라 결심했어.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철저히 나 혼자만 순수하리라. 나만의 방식으로..

     

    예리한 정의와 뭉툭한 불의 양편 모두에게 어깃장 놓는 골칫덩이 순수가 되리라.

     

    결심하고 나니

    네가 생각나더라, 안 경미..

     

     

     


    철없는 순수가 뛰놀던 시절 너와 나누었던 침묵 속의 교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

     

    사랑이란 이름을 기어이 붙이고 싶었어.

     

    그러려면 우선 나의 절절한 심경을 최대한 솔직하게 고백해야겠지

    방법이 편지뿐이라 안타까워도.

     

     

     

     

    당시의 너나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진실의 향취를 강하게 풍기던 그 무엇.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강렬한 의욕으로 나는 지금 충만해 있어.

    가슴 뻐근한 이 설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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