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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맨 인 블랙
    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19. 13:34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17)

     
     
     
     
     
     
     
     
     
     
     
     
     
     
     
     
     
     
     
     

    자아, 하나가 해결되니 또 하나가 문제네. 불안의 연속이야.

    저 안티 인디고가 기다리는 것들은 지수를 잡으러 오는 놈들이리라.

    지수도 그녀 앞까지 간신히 도착하였군.

    저 아저씨, 허락도 얻었겠다 아주 으스러져라 껴안고 여기저기 본격적으로 주물러 대는구나. 저 미친..

    입까지 맞추려 하네. 작전상 받아주지만 입술을 빼앗기는 건 죽기보다 싫은가 보다. 결사적으로 버티면서 지수에게 눈짓을 주고 있어.

    정신 나간 인간, 그냥 곱게 데리고 나가기엔 많이 아쉬운 모양이지? 즉석에서 약식으로라도 한바탕 하고 나갈 심산인가.

    저렇게 협조를 거부하면 윽박지를 만도 한데 급하긴 급했군. 협박할 시간도 모자라서 무데뽀로 달려드는 꼬락서니하곤..

    질려버린 여자가 입술 대신 목을 내어주네.

    타협 지점이 한참 맘에 안 들 텐데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가 봐. 먹잇감에 환장한 들짐승처럼 게걸스럽게 목을 핥아대는구나. 쩝쩝 소릴 내며 흥건히 침을 묻히는 걸로도 모자라, 가느다란 목이 벌게지도록 키스 마크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정연의 구조 신호를 눈치챌 필요도 없이 그의 시야는 적나라한 성추행 장면으로 차고 넘칩니다. 놀란 눈이 커지고 심장이 드세게 쿵쾅거립니다. 당혹감과 분노가 교차하는 순간에 두려움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우선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변태 추행범에게 일격을 가하고 이 추접한 현장으로부터 그녀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급선무.

    더러운 짓에 정신이 팔린 욕정의 노예를 노려보며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기 위해 주저함 없이 한 팔을 뻗는군요.

    오, 이곳의 분신은 우유부단한 나와는 사뭇 다릅니다. 멋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 정도이고 내가 다 뿌듯해질 지경입니다.

    ** 엇! 인상 깊은 장면을 되감아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직진하는 시간이 지배하는) 3차원 우주의 현실이 다른 우주에서 온 제게는 통하지 않음을 새삼 체감 아니 영감하는 순간입니다.

    평행 지구의 대기권 아래가 3차원 사건계의 양상을 띨지라도

    그리고 다른 시공의 존재가 그 사건계에 편입되어 있을지라도,

    그는 환상계라는 큰 틀 속의 일부일 뿐인 세상에서 - 현실을 띄우고 너울거리는 - 비현실을 속속들이 느끼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지요.

    시간의 일방적 흐름을 제어하고 시공을 한 덩이 조각들로 미분할 수 있는 그에게 평행한 현실이란, 끊임없는 재생과 편집이 가능한 영화나 다를 바 없습니다.

    멋진 슬로 모션을 찬찬히 음미하고자 하는데 때아닌 불청객들의 난입이 감상을 방해하는 걸로도 모자라 고상한 슬로비디오를 난잡한 2배속 재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극장 안을 또 한차례 북새통으로 만든 두 명의 주인공들은, 조연으로 전락한 지수의 손이 혼종 변태의 뒷덜미에 닿으려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그를 덮쳤습니다.

    조금 전 지수가 일으켰던 작은 소란에도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쏟아내던 관객들의 반응이 이번엔 판이합니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난폭한 등장에 다들 얼어붙은 모양입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마구 짓밟으며 진입하는 빌런 주인공들의 포스에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밟힌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조차 그들의 정체 앞에서 눈치를 봐가며 알아서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몽둥이를 들고 들어온 조폭의 으름장에 힘없는 대중이 기가 죽어버리는 뻔한 스토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무기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으며 (물론 겉으로 보았을 때 그렇단 얘깁니다) 깔끔한 검정 정장 차림에 단정한 머리 그리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균형 잡힌 체구의 적당한 몸집들임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듯하였습니다.

    관객들은 예전부터 이들의 명성(?)을 잘 알고 이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공포가 영화를 보고자 하는 열망마저 집어삼킨 듯 남녀노소 관객들은 두려움에 쩐 시선을 그들에게도 스크린에도 고정하지 못 한 채 집단 공황에 빠져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입니다. 외계 세력의 공포 정치가 얼마나 횡행하고 있는지를 알고도 남는 극적인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맨 인 블랙 한국 지부에서 나오기라도 한 걸까요. 그런 게 있다면 말입니다.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극히 짧은 사이에 혼비백산할 정도의 타격을 가하면서 지수를 제압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입술이 터지고 눈이 부어오르는군요. 고도의 훈련으로 다져진 다부진 요원들이 그와는 정반대인 무기력한 민간인 한 명을 테러범 다루듯 하고 있네요.

    협소한 공간이라 그들의 날렵함이 더 부각되는 상황입니다. 주변을 파악하지 못하게 거진 그로기 상태로 몰아간 다음 그를 끌고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이러한 소란을 틈 타 정연은 변태 괴한의 음흉한 손아귀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저들의 사나운 등장이 음란의 끈을 놓지 못하던 그의 집요함마저 흩트려놓았나 봅니다.

    저 얍삽한 아저씨, 힘없는 여자들을 거리낌 없이 추행하던 못 난 패기는 간 데 없고 스스로 찔리기는 하는지 자신을 즉결 처형할 수도 있는 권한자들의 출현에 깨갱 하며 꼬리를 내리는군요.

    저분 원래 저렇게 비굴한 사람이어서 상념계에까지 이렇듯 여파가 미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곳 상념계에서만 특별하게 저런 편향된 캐릭터로 고착화되어 있는 것인가. 그 어느 쪽이던 참,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이번에야 저들의 관심이 오직 지수에게 쏠려 있던 터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손 쳐도 과연 그의 불안한 안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는지..

    성폭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그의 위태로운 삶도 조만간 끝을 볼 텐데..

    안타깝지만 이곳에서의 그의 운명이 그러하다면 내가 뭘 어쩌겠는가. 누구의 운명에도 관여치 못하는 주제에 그 운명들을 지켜는 봐야 하는 나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신세인 것을.

    차가운 미소로 반 실신 지경의 지수를 바라보던 정연의 싸늘한 눈빛이, 사연을 적고 있는 이 밤 이 시각까지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우수 혼혈종인 안티 인디고의 냉철함이 묻어 나오더군요. 더러운 화장실을 빠져나오듯 우매한 군중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밀쳐내며, 지수를 끌고 간 방향과는 반대의 출입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임무를 완수한 것으로 만족하고 중간에 추행 당한 건 과정상의 해프닝으로 넘어가 준다면 그로선 행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심리적 대미지를 입은 그녀가 만일 독종 근성을 발휘하여 지도부가 관리하는 혼종 데이터를 이 잡듯 뒤진다면 저 아저씨 잡아내는 것쯤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요.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신고만 한다면 다른 비밀 요원들이 대신 조사하고 체포해 주겠지. 안티 인디고의 끗발이라면 그 정도는 껌일 테니까.

    내가 아저씨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정연이가 그냥 넘어가 주기만을 기도하는 것.

    맡은 임무가 많아 (프락치 짓 하느라) 정신없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 언뜻 - 굳이 안 해도 될 - 되게 소극적인 얘기로 여겨지시겠지만, 이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는 영의 형태 즉 빛 존재에 준하는 모습으로 임하고 있기에, 3차원 육신에 갇혀 있을 때와는 현격하게 다른 특징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기도의 파워입니다.

    정신 감응의 순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이 4차원 신적 존재들과의 교신 감도를 향상시켰고 이로 인해 기도의 즉시성이 담보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념 시공에서의 제 기도는 (응답의 주체는 다양할지언정) 높은 확률로 응답받는다 보시면 됩니다.

    아저씨를 갱생해주십사 하는 근본적인 기도는 운명의 복잡성에 가로막혀 기운을 잃을지라도, 당장의 큰일을 회피할 요량으로 기도를 할 때 즉시 전력으로 도와줄 존재들은 항시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저는 여기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이 가련한 아저씨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겠다는 겁니다. 우선은 목숨을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게 이곳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습니다.

    한편 저들은 지수를 끌고 가는 와중에도 좌석을 타 넘으면서 사람들의 머리며 어깨 허벅지 무릎 등을 난폭하게 짚고 밟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적지 않은 수가 부상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였지만 그냥 감내하고 말더군요. 그런데도 영화관 직원이나 경찰 등이 나서서 분위기를 가라앉힌다거나 관객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일절 없었습니다. 관객들도 거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는커녕 저들이 할 일 끝내고 나가준 것만으로 안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꽤 다쳐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 듯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오고 개중에는 어린아이도 끼어 있는지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장 내에 울려 퍼졌지만 (울음의 도미노 효과일까. 그 우는소리에 반응하는 다른 아이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음바다를 이루며 극장 전체에 진동하네요.) 일 층은 워낙 인파가 밀집해 있는 형국이라 치료차 나갈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았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서로서로 도와서 길을 터주면 될 것을, 사악한 필름의 마력에 홀린 관객들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지 이기심의 극치를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흔들려도 꼼짝 않고 영화나 쳐볼 중생들입니다.

    하물며 다친 사람들조차 아픈 데를 부여잡고 스크린으로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머리를 화면으로 돌려놓았는지 시끄럽던 울음도 잦아든지 오래입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는 광경입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수퍼맨인 건지 이들과 함께 퍼질러 앉아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동하네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착지해 있는 분신은 이미 극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풍선처럼 부푼 제 영혼의 확장성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곳의 지수는 아마도 비밀 요원들의 아지트로 하염없이 끌려가고 있는 중일 텐데 저는 아직 극장에 남아 이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또한 해탈이 진행되고 있다는 징표이겠으나 궁극의 근원과 합일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에 한계가 있는 법.

    위험에 처한 분신이 저를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그의 무의식이 저를 인지하고 저를 보호하려 합니다. 그가 위기에 빠지면 그것은 저의 위기이기도 하니까요.

    만약 그가 목숨이라도 잃게 되는 날에는 제 영혼이 동시성 교란의 덫에 걸려 웜홀과 도킹할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운송자 마스터들이 저를 그리될 지경까지 방치하지는 않겠지만요. (혹시 또 모르죠 본디부터 속이 아주 검은 자들이니..)

    이러한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저는 최대한 아우라를 응축하여 분신의 차크라에 단단히 결합하고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저를 걱정하는 격인데, 이는 분신이 특별히 착하고 희생적이어서가 아니라 - 그의 잠재의식에서 타이머처럼 동작하는 - 평행우주 시스템의 영적 안전장치 때문입니다.

    무수한 분신들 하나하나는 이런 식의 다양한 장치들과 연결되어 "위대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상념계의 모든 분신들에게는 이렇듯 개체의 차원을 넘는 공통된 영적 유전인자들이 의식의 진화를 대비하여 마련되어 있는 것이지요.

    평소에는 휴지기에 있다가, 열반의 경지에 오른다거나 아니면 다른 우주의 자아가 직접 방문 또는 영의 형태로 워크 인할 때 비상 장치들이 활성화되는데,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지금 작동하는 모양입니다.

    팽창된 영혼이 심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란 걸,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급소에 날카롭게 퍼지는 물리적 통증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엄습하는 긴장감이 안달하며 조여온다고 해야 하나. 아우라에 두루두루 번져서 우리하게 전해져오는, 심리적 고통 비슷한 무엇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극장을 뒤로하고 일반적인 풍광을 비켜서, 상념 자국들이 만든 그로테스크한 문양 속으로,

    분신을 찾아 질러서 가는 심연 속으로, 저는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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