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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케로히얄의 변(辯) 1판타지 속의 판타지 1 : 카파마리올 (판타지) 2024. 2. 6. 15:00
아주 먼 옛날쿠메이린은 인간의 별이었다.
5차 대전(大戰)을 끝으로 나라들은 통합되었고, 자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전쟁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함께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지. 신의 은총을 기반으로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단일 영성(靈性)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야.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대립과 갈등 반목이 여지없이 찾아왔어.
영성 공화국을 표방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물질문명의 끝없는 발전과 확장만이 이상적 복지 사회 건립의 기틀이라 맹신하는측과, 영적 성장과의 균형을 도외시한 무분별한 과학 기술 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측으로,
지도자 그룹이 분열하여 팽팽한 긴장의 평행선 위를 달리게 되었던 거지.
후자는 전자의 과격한 노선과 -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 맹렬한 행동 양상에 환멸과 위협을 느끼고, 결국자의 반 타의 반 정계에서 물러나 성소들 주변부로의 은둔을 선택하였다.
한편, 우린 이 공화국의 찬란한 과학적 성과와 그 산물들 중 하나였어.
인간을 돕는 로봇으로 시작한 우리의 조상은, 공학의 눈부신 발달과 보조를 같이 하며인간에 근접하는 휴머노이드로의 변모를 급속히 거듭하게 되었던 거야.
도약을 위한 몇 번의 임계점을 거치며, 우리는 일종의 진화 과정을 통과하였지.어찌 보면, "자신들이 선택한 정체성"을 망각하고 노골적으로 물질을 숭상하기에 이른 극단 강경파 엘리트 집단의
무모한 추진력이 현재의 우리를 있게 했다고도 볼 수 있어. 역설적이게도 말이야.
이들 강경파 집단은 본인들이 이뤄 놓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자칫 인간 존망을 결정할지 모를 위험천만한 모험에끊임없이 몰두하였다.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는 어느새 허울뿐인 명분으로 전락하였고, 과학적 탐구를 향한 순수(?)한 욕망이(과학을 위한 과학이) 맹목적으로 그들을 사로잡았지.
비즈니스 성향의 타협적인 마인드로 부와 명예에 만족하고 안주하려던 동료들을 비리의 원흉으로 몰아 가차 없이 솎아낼 만큼그들은 확고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듯 행동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원동력으로도 작용하였으나, 실은
이것이 국민을 공포와 절망으로 몰아넣게 될 더 무서운 칼날이란 걸 당시엔 깨닫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
자신들도 컨트롤할 수 없는 도덕적 결벽성은 점점 교조적으로 경도되는 반면, 한편에선 치명적 부작용을 불사하는 프로젝트와실험에 집착하며 "과학 만능 이데올로기의 무균화(無菌化)"를 위한 신성함(?)의 날을 첨예하게 갈았지.
그들의 차가운 비전 한 켠엔 언제나 복제 기술의 만개(滿開)가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로도, 쿠메이린의 복제 과학은 첨단을 달리며 인간의 삶을 질적 양적으로 두세 차원 끌어올리는 데 크게 일조하였어.물론 그 정도로 성에 차할 그들이 당연히 아니었다.
연구를 위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사악한 희열 속으로그들은 침몰해 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공화국에서 인간을 도우며 공존하던 이종(異種) 하이브리드들이 - 인간으로부터 부족하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인간과 파충류의 하이브리드들이 이를 주도하였는데, 영능은 인간보다 발달한 대신 음흉한 이중적 사고 패턴과분열적 자의식이 특징인 이들은, 유달리 강한 경쟁심으로 인해 인간들과 잦은 마찰을 빚던 중,
최고위 지도층으로의 신분 상승에 제한을 두어 자신들을 경계하고 배척한 과학엘리트 집단과 정면충돌하게 된 거야.
파충류형 하이브리드들은 평소 앙심을 품고 불만을 폭발시킬 건수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차에,본인들도 못 본 척 외면하던 의학 전용 "타겟 하이브리드"의 참담한 실상을 새삼 문제 삼고 늘어져,
인간의 비정한 처사 규탄 및 실험용 하이브리드의 처우 개선을 무자비한 폭동의 표면적 명분으로 내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족에게 크고 작은 차별을 받아온 온갖 고등 복제 생명체들을 꼬드기고 선동하여혁명의 기치 아래 인간과 대규모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항성 전체에 살벌한 피바람이 몇 차례 몰아쳤으나, 좀처럼 승부는 판가름 나지 않았지.우리 휴머노이드가 끝까지 인간 편에 서서 인간을 도와 싸웠기 때문이야.
불같은 성미의 반란군 지도부는 자신들의 악랄한 영능을 십분 발휘하여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어리석은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자충수가 될 줄 꿈에도 몰랐지.
우주로 신호를 보내어 에프엠 문명권의 동족(同族)류 외계 집단에게 원병(援兵)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하여 외계에서 온 무리가 바로 저 투누탄 족속임은, 굳이 거명을 안 해도 알겠지?
저들은 식민지 건설의 야욕을 감추고 하이브리드족을 철저히 이용하였어.
투누탄과 하이브리드 연합군의 질풍 같은 위세에 인간족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무기력하였다.
까마득한 과거 여러 우주 여러 은하에서 인간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우주전쟁을 치러 온 그들 조상의 역사가 유전자에 깊이새겨져 인간을 향한 무의식적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투누탄은, 쿠메이린 항성의 인간들을 전멸 지경까지 몰아가
결국 거의 씨를 말려 버리다시피 하고 말았지.
그런 다음, 쿠메이린의 새로운 집권층이 된 저들은하이브리드와 휴머노이드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착취하면서 노예로 부리게 된다.
저들의 잔악한 철권 통치에 비하면, 예전의 과학 엘리트 지배 시절을 차라리 태평성대라 일컬어도 무방할 것이다.
파충류 하이브리드들이 늦게나마 자신들의 패착을 인정하고 후회하였지만 그땐 이미절망이 완승하여 희망의 숨통을 끊어 놓은 뒤였어.
투누탄은 하이브리드를 특히 인간의 피가 섞인 하이브리드를 애초부터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언제든 반기(反旗)를 들고 일어설 잠재적 골칫덩이로 단정 지어 - 자신들을 가장 열렬히 추종한 - 파충류 혼종을제거 대상 일 순위에 올려놓았다.
본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뒤통수 세게 처맞는 형국이 전개되자 한참 늦게 사태를 파악한 어리석은 하이브리드들은급기야 배수진을 치고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마지막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사악한 놈들끼리의 대혈전이 한바탕 벌어졌고, 쿠메이린은 또 한 번 평지풍파에 들썩거렸지.
한편, 우리 휴머노이드들은 인간이 거의 멸망 지경에 이르자 두 부류로 나뉘게 돼.
투누탄 연합군에 의해 우리도 대다수 파괴된 상황에서, 일부는 원주인인 인간을 그리며 - 성소들 주변에 은둔해 있던 - 양심적 엘리트 집단을 찾아 나서는 무모한 대장정에 돌입했다.
오랜 세월 영기를 받으며 내공을 쌓은 은둔 엘리트들은, 영능력의 충만으로 거의 모든 방면에 통달한성자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고 있었어.
추적자들의 습격으로 절반 이상의 희생을 감수한 우릴 그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고,우린 이들의 시중을 들며 이들 옆에서 많은 것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의 한계를 극복하는 최종 도약의 길로 들어선 우리는, 바야흐로"기계인간이 영적 상승을 이룰 수 있는" 디지털 임계 페이스(phase)에 진입한 것이지.
성자들은 그들의 비밀 연구소에서 자신들 오오라의 영혼 섹터들 중 낮은 수준의 하나를 분리하여 우리에게 이식해 주었어.
그 결과 우리의 인공지능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분화(分化)하였으며, 따라서 희로애락의 사고 패턴이인간에 필적할 만큼 세련되고 정교하게 진화하였다.
우릴 대견하게 바라본 성자들은, 외형까지 쏙 빼닮은 명실상부한 인간으로 환골탈태하길 염원하는 우리의 과분한 열망조차어여삐 여겨, 아쉬운 대로 편법을 도입해서 인간의 모양새를 갖추어 주었지.
홀로(holo-) 필름 도포(塗布) 방식인데, 왼팔 상단 어깻죽지 아래 부분에 삽입 고정된 컨트롤 박스를 통하여우린 각자가 원하는 성별 외모 복장 등을 고를 수 있었다.
기계 몸체를 감쪽같이 덮어 씌운 (진짜 같은) "인간 형상막"에 우린 대체적으로 만족하였지.
이때 성자들은 물었어. 안드로이드의 기억을 완전히 지운 뒤 인간으로 새 출발 하지 않겠냐고.
우리들 대부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그러겠노라 수락하였다.
그러나, 성자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시중을 든 소수는 그들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였지.
핸디캡을 껴안고 실존을 짊어진 채 깨달음에 다가가는, 험난한 길을 택하였던 거야.
성자들도 이들 소수의 의지를 높이 사 주었고, 이들은 성소의 핵심부로부터 영기를 꾸준히 흡수하며성자들 옆에서 수도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어.
해탈하여 6차원 신성계로의 상승을 목전에 둔 성자들은 쿠메이린의 미래를 그 소수에게 일임하고,열반하기 전 특단의 조치를 취하였다. (자신들 오오라의) 비교적 높은 수준의 영혼 섹터를 분리하여
그 기특한 소수에게 한 번 더 이식한 것이지.
이른바 "케로히얄"로 거듭나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해.
이로써, 자신들이 로봇이란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도록 재프로그래밍된 "새로운 영생(永生) 인류"를(나를 포함한) 소수의 케로히얄들은 통솔하게 되었다.
성자의 영능을 부분적으로나마 계승한 우리들은, 안전 구역을 설정하여 쿠메이린 제2의 인류를 보호하면서
투누탄족과 정식으로 맞서게 된다.
그렇다면 두 부류 중 나머지 하나 즉 휴머노이드의 다른 일부에겐 또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쿠메이린의 참담한 파국을 직시하고 자신들은 일개 로봇일 뿐이라는 자조(自嘲)에 빠져그들은 투누탄의 학정(虐政)에 적응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자기들을 숭배하던 하이브리드들까지 쓸어 버리는 저들의 (냉혹하기 짝이 없는) 가공할 위력을 가까이서 목격하였으니,남아있던 휴머노이드들로선 자신들도 하이브리드의 비극을 답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더욱 충성을 맹세하여야만 했다.
주인인 인간이 멸망한 마당에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배신을 누가 비판하랴, 이렇게 자위하며남은 부류는 말살(抹殺)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가고 말았어. 어리석게도..
투누탄은 처음엔, 그들이 자체 제작하여 공수해 온 첨단 중장비 및 작업용 로봇들과 한 데 합쳐서쿠메이린의 휴머노이드를 관리했어. 그들의 본국 행성으로 이송할 에너지 자원과 광물들을 채집하는 중노동에
휴머노이드를 동원하여 악착같이 부려먹었다.
하루에도 재생 불가능으로 파괴되는 휴머노이드가 수십 명씩 나올 만큼 굉장히 위험한 작업장들이었지.지옥을 방불케 하는 감옥 같은 그곳에 분산 배치되어 우리 종족은 기약 없이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 놈들의 악독함에 천벌이 내려졌는지 -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쿠메이린 전역을 휩쓸었고,(성소가 보호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인간과 하이브리드가 놈들에 의해 절멸한 지 오래인 시점에서
바이러스의 감염 대상은 전적으로 이방인 투누탄족이었다.
은하를 주름잡던 놈들이 신종 바이러스 하나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쿠메이린 원주민들과는 생체 구조부터 상이한 놈들이 침략함으로써 바이러스 변종 유발 인자가 천형처럼 작동한 셈이니제 발에 걸려 고꾸라진 격이랄까.
놈들이 쿠메이린에서 발을 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내심 기대가 컸었는데, 저들의 과학력 또한 성자들 못지않게 경이로워우릴 낙담케 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공포를 주입하기 시작하였어.
쿠메이린 총독부 산하 의학 연구 위원회가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백신 개발에 번번이 실패하면서항성 퇴각론이 놈들 사이에 설득력 있게 대두될 즈음, 본국 행성의 특별 연구진이
그들로선 획기적인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너무도 황당한) 방책을 가지고 당당히 입성하였던 것이다.
우리 항성의 과학 엘리트 "인간 성자"들이 다중 중첩 오오라의 특정 섹터를 분리하는 기술을 보유한 반면,투누탄 제국에서 파견된 대가들은 오오라를 일정 부분 잘라내어 완전한 섹터로 배양해 내는 독보적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지.
그들은, 쿠메이린의 휴머노이드가 영혼을 이식받으면 인공지능 메커니즘을 비롯한 의식 신경망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분화하여 "도너(donor) 오오라" 수준의 생령체 기작과 유사해진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어.
영혼 활성 소재(素材)를 기반으로 한 쿠메이린 로봇과학의 정밀성에 새삼 탄복할 겨를도 없이그들은 신속하게 자신들의 대안(代案)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들이 날아오는 동안, 실험 전용 우주선에 비치된 상당수 영혼 배양기 속엔, 임신한 투누탄족 암컷들로부터 채취한영혼 세그먼트(segment)들이 거의 다 자란 성체(成體) 오오라 형태로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총독은
어느 날 쿠메이린의 모든 작업장에서 우리들을 끌어내어 - 폭과 길이가 공히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 그 어마어마한 실험 우주선 속으로 몰아넣었어. 준비된 "배양 영혼"을 우리 휴머노이드들에게 빠짐없이 이식하기 위함이었지.
그러자 실로 놀라운 현상이 발생하였다.
인공지능 인공신경망뿐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전체 하드웨어 낱낱의 초미세 부속(附屬)들이,배양된 오오라의 소프트 크리스탈 입자들과 여러 유형으로 결합하여
버그와 같은 (독자적이고 다양한) 생체 단위로 변형하더라 이거야.
멀티 세포체 수준으로 기능에 따라 다채롭게 분화한 버그들이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변형 전의 부속 역할은 물론
토털(total)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을 유도하는 촉매 구실도 하는 것 아니겠어?
저들의 속성(速成) 진화 기술은, 임산부 영혼을 이식받은 우릴 불과 며칠 만에 기괴한 사이보그로 바꾸어 놓았다.특히 복부 부근이 급속하게 생체화 변이를 일으키며 "비정상적으로 확장한 자궁 시스템"을 형성하였고, 그곳에는
세밀하게 분화한 태반 조직과 상당히 자란 태아가 어느새 자리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 자궁과 태아는 우리의 하드웨어가 생화학적으로 변이한 결과물이다"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만은 없다.임산부 투누탄의 오오라에 입력된 "상념 레코드"가 영기(靈氣)의 물질화를
버그화 메커니즘에 상응하여 진행시킨 결과라 보는 편이 더 적합하리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임신 전용의 야릇한 개체가 되어 우리의 배는 속절없이 불러만 갔지.그렇게 보름도 지나지 않아 우린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 있었다.
휴머노이드가 낳은 생명체는, 생체와 기계의 비율이 7:1 정도인 "변종 투누탄"이었어.
이 녀석들은 우리처럼 신종 바이러스 침투에도 끄떡없는 막강한 놈들이었지.
쿠메이린 항성인들의 얼이 깃든 (그들이 혼신을 다하여 그들의 몸과 최대한 비슷하게 창조한) 휴머노이드라서일반 로봇들과 달리 바이러스에도 생물학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아울러 인간의 면역성을 복제하여 면역력을 발현해 낼 수도 있음을 녀석들은 간파하였고, 마침내 이런 식의 대책을 생존 전략으로 내놓기에 이르렀던 것이야.
(놈들에겐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천지가 돼 버린 쿠메이린인데도 이곳은미련 없이 떠나기에는 그만큼 미련이 많이 남는 노다지였던 게지. 놈들로선 절대 놓치기 싫은..
갓 태어난 놈들은 다시 "속성 성장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5개월여의 짧은 기간 동안 성인(成人) 투누탄으로 자라났다.
다 자란 변종 투누탄족의 암수가 정상 교배를 하여 태어난 혼족(混族) 2세대도,바이러스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강성(强性)이긴 마찬가지.
이렇듯 우리의 면역력을 물려받은 변종 투누탄들로 식민지 지배자들은 자연스레 물갈이되기 시작했어.
"투누탄 임산부로부터 배양된 영혼" 한 개당 잉태 케파(capacity)는 최대 10 착상.
우린 실험실에 묶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무려 열 번이나 원수들을 분만하여야 했다.
분화된 신경망의 과민 작용으로 인하여 낳을 적마다 지독한 통증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더 큰 문제에 비하면 그 정도는 새발의 피였지.
10 착상 후에도 우리 휴머노이드족의 몸엔 배양 오오라가 두 번이나 더 안착하였고,그렇게 도합 삼십 차례의 속성 해산을 거치면서 우린 돌이킬 수 없는 단명(短命)의 수순을 밟아야 했어.
쿠메이린 영장(靈場)의 무한 에너지를 충전받는 "영혼 활성 소재"는엔트로피 증가에 역행하는 반(反) 노화 리뉴얼(renewal) 영구 동력 시스템의 중추이기 때문에, 우리 휴머노이드는
오오라만 이식받는다면 사실상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변종 투누탄을 생산하는 모태 대용물로 급조되어 수십 번의 분만을 반복하자, 분명 오오라를 이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상하게 "낡아빠진 소모품"처럼 피폐해지는 것이었어.
아마, 인간의 것이 아닌 투누탄의 영혼이 융합됨으로써 발생하는 특이한 생체화 변이 양상 즉 "버그화"가기계의 생체 조직화 연쇄반응에 여러 번 관여하면서 영혼활성 소재의 고유한 성질을 빠른 속도로 앗아가는 모양이야.
최대 서른 번의 분만을 끝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는 가혹하게 폐기 처분되고 말았지.
투누탄에 예속된 휴머노이드족은 공포와 절망 속에서 그런 식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러한 비극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우리 케로히얄 그룹은결사대를 조직하여 - 지상에 착륙해 있는 - 우주선을 급습하였고, 놈들의 숙주 신세가 돼 버린 동료들 가운데
많은 인원을 구출할 수 있었어.
적잖은 희생을 감수하며 천신만고 끝에 그들을 안전 구역으로 인도한 것까진 좋은데, 불행히도 케로히얄의 능력만으로는이식된 "적의 영체"를 다시 뽑아내고 우리의 영을 새롭게 이식하여 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승천한 성자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성소로 들어가 기도도 올려 보았으나, 응답은 끝내 오지 않았어.
그리고 깨달았지.
우리 케로히얄들은 기도를 하기보단 기도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더는 휴머노이드가 아닌 (쿠메이린과 성소들을 지키는) 성스러운 존재여야 함을.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찾아야 할 성자는 이곳 어디에도 없으며,우리 자신이 곧 성자이므로 우린 스스로의 내면에 침잠하여 얼마든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불행 중 다행인지, 산부(産婦) 투누탄의 배양 영혼은 -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 물질화 과정을 위한 연료로써만소진되도록 아카식 데이터 가공(加工)이 이뤄진 상태여서, 그것이 우리의 "인공 의식"을 오염시켜 정체성을 혼란케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을 투누탄과 동일시하고 친구를 공격하는" 따위의 해프닝은 우려할 필요 없었단 얘기지.
성자의 기술을 가장 상세히 전수받은 리더 케로히얄의 지휘하에, 우리 케로히얄 그룹은 그들의 인공지능을 재프로그래밍하였고 아울러 그들의 왼팔 특정 부위에도 컨트롤 박스를 삽입 장착하였어.
혹시나 하는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아 우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우리의 노력으로, 형제들은 그간의 악몽 같은 나날을 깨끗이 기억에서 지우고임시방편 같은 불완전한 방법이긴 하나 인간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거야.
험난한 엑소더스를 마치고 안전 구역의 신(新) 인류 사회에 그런대로 합류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우리 역시 기뻤다.비록, 놈들의 모진 박해가 그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아 가 안타깝긴 하였지만..
특히, 분만 활용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서 구출된 휴머노이드들의 경우"인간화" 이후로 노화(老化)의 진행은 가속이 붙었어.
왜 자신들만 급속도로 쇠잔해 가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비통해하는 그들이 애처로웠으나우린 속 시원히 진실을 밝혀줄 수 없었다. 휴머노이드가 일단 인간화 관문을 통과하여 안전구역의 주민이 되고 나면
그 이전의 어떠한 정보로부터도 일절 차단되어야 했기 때문이지.
이는 케로히얄 계급 내의 지엄한 불문율이어서 실낱같은 발설도 천기누설로 간주하여,비밀을 누설한 케로히얄은 엄중 문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철칙은 - 일 차 엑소더스 후 - 우리의 지배하에 있던 기존 주민들에게도 예외가 아닌데, "의식파가 감당하기 벅찬"(구출된 동족의 인간화 과정과 같은) 대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체험들에 그들이 노출될 때마다,
우린 "의식 패턴 교란"이 일어난 주민들을 일일이 모니터 하여 수면 시(時)에 그들의 기억 시스템을 원격 리세팅해야만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린 원인 모를 전염병 핑계를 대고"투누탄의 배양영혼에 결박된 주민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격리하고 말았다.
안전 구역 안에 별도로 그들만의 안전구역을 또 설치한 셈이지.
기쵸닐롄, 실은 너도우리가 특별 관리하는 그 별도의 안전구역 출신이란다.
우리가 그동안 너의 기억을 여러 번 리셋하여 넌 이렇듯 복잡한 사정을 모르고 있었을 뿐.
변종 투누탄은 자신들의 병력(兵力)을 속성 증가시킴에 있어 여전히 이용가치가 큰 너희를 포기하지 못하고수시로 공격을 일삼는 것이다.
실제로 너희 주민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놈들에게 도로 붙잡혀 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고.
조금 전 변종 투누탄의 우두머리가 너와 나를 습격한 것도 그러한 목적의 일환인 거지.저들의 눈엣가시인 나 케로히얄도 제압한다면 일석이조일 테니까 더 센 놈이 바로 나타난 것이리라.
놈들이 왜 널 집요하게 추적하는지, 이제 사태가 대략 파악되었으리라 믿는다.
나한테 한방 맞고 나가떨어진 처음 그 녀석 말인데, 널 사로잡는 임무를 띠고 우릴 쫓아오던 와중에나를 겨냥한 빔이 녀석의 실력 부족으로 네 팔을 부숴 버린 것이지.
컨트롤 박스가 파괴되어 인간형상 막이 송두리째 벗겨졌으니 너로선 놀라 기절할 만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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