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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악몽 트랩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4. 2. 4. 15:37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27)
꿈에서 다른 드림바디 걱정하는 것이 가장 쓸데없는 짓이니라.
그들은 꿈주의 상념 피조물일 뿐이라 그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창조되거나, 다른 꿈계로부터 유입될 수 있단다.
이렇듯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도 자각하는 자만의 특권이며, 악몽을 실재라고 굳게 믿는 순간
온갖 공포와 비극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쓰나미처럼 밀어닥치게 된다.
쓰나미까지는 모르겠고, 당장 저놈의 무기가 밀어닥칠 것 같습니다. 문을 부수려는 의지가 충만해 있군요.
잘 보았다.
놈이 문을 파괴하면, "널 빠뜨릴 함정으로 준비한 꿈 파편"이 이리로 유입될 것이다.
문이 있던 자리에 파편꿈이 접합하는 형태로 트랩은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정신을 놓지 말고 의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네 앞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은 홀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는, 믿음을 일 초라도 잃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해야 함을 당연히 압니다만, 악몽인 걸 알면서도 공포를 제어하기가 쉽지만은 않네요.
당장에 저놈의 난동을 좀 보십시오.
아악, 놈이 무지막지하게 큰 정글도와 도끼를 한꺼번에 이리로 던졌습니다!
문이 기어이 박살 나고 무시무시한 흉기들이 곧장 저에게로 날아옵니다.
피하지 않아도 된다.
보아라, 네가 일일이 관찰하여 내게 알려 줄 정도로 장면이 천천히 진행되지 않느냐.
충분히 저걸 피할 만한 여유도 있거니와 굳이 피하지 않아도 넌 타격을 입지 않는다.
이것이
꿈을 자각하는 자가 저절로 갖추게 되는 능력 중 하나이며, 네가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네가 뿜는 포스 자체가 꿈의 공간을 너의 안전 위주로 왜곡하는 것이다.
어떠냐. 저것들이 홀로그램처럼 너를 통과하여 지나가지 않느냐.
정말 그렇긴 하네요.
그런데 저것이 홀로그램인지 제가 홀로그램화된 건지 헷갈립니다.
그게 꿈계의 상대성이니라.
어느 쪽으로 해석하던 다 맞을 수도 다 틀릴 수도 있나니. 어느 하나만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리는 게 아니란다.
앗! 여기는 또 어디야? 막사 안이 아닌데..
놈이 만들어 낸 파편꿈 트랩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로 빠져들게 되었다는 건 놈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란 얘기네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제이슨은
대중의 집단 무의식에 기생하는 집합적 사념을 갈아 흑마스터가 제조한 부정 에너지체로서,
자신과 관련된 수만 가지 순도 높은 악몽들을 생산해 낼 수 있단다.
모르긴 몰라도 너를 단단히 옭아매 놓기 위해 벼르고 만든 악몽계인 듯하니,
일단 각오는 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
한 가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흑 마스터가 너에게 집중하느라 내게는 신경을 덜 쓴 티가 난다는 점이다. 덕분에 내 운신은 자유로워졌구나.
아, 그렇군요.
제 옆에 서 있는 낯선 자가 마스터님처럼 말을 해서 어색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역시 마스터님이셨군요.
말씀을 하시기 전까진 혹시 자객인가 해서 엄청 긴장하고 경계를 했더랬습니다.
예전에 본 적 없는 행색이긴 하지만 왠지 전형적인 히말라야 수도사의 느낌이랄까요.
생김도 그쪽 지역 분 같으시고요. 어쨌든 다시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다행입니다.
그래, 이게 원래 내 모습이란다.
다만 나이가 달라져 있구나. 이십 대의 젊음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중년으로..
아무튼 이깟 함정쯤은, 너의 지금 역량으로도 충분히 혼자 빠져나올 정도인 것은 맞아.
그래도 명색이 네 미래 자아인데, 네가 꿈계로 들어온 걸 내가 안 이상
여기서만큼은 수호령 역할을 확실히 해야지 않겠나.
그래서, 명상몽계 한 곳을 다스리고 있는 내 드림바디를 이리로 급히 소환한 것이네.
원래는 - 놈들의 아지트 같은 - 이곳을 침투하기가 나로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제이슨이 너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그 틈으로 넘어왔느니라.
저야 무지하게 든든합니다만..
그쪽은 지금도 제이슨 때문에 난리가 났을 텐데 정신적 지주께서 자릴 비우셔서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모르는 소리..
내가 방금 명상몽계에서 왔다 하지 않았느냐.
그곳 악몽계의 드림바디에도 나의 분령은 계속 깃들어 있어
제이슨과 일전을 벌일 태세에는 변함이 없도다.
드림 마스터는
자신의 평행 꿈계들에 존재하는 각각의 드림바디를 언제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느니.
그렇담 다행이고요.
가만있자..
여긴 그 기분 나쁜 물속 세상은 아니로군요.
숨은 쉴 수 있다고 해도, 물 같은 것이 차올라 있음을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어
익숙해질 때까지는 무척 답답했었는데..
일단 여기는 보통의 공기 중인 듯한 게 의외이긴 하군요.
설마 놈이 제 편의를 봐줄 리는 없고,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핸디캡이 이곳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곧 튀어나오겠죠?
한순간도 방심을 해선 안 되는 이유이지.
마음이 진정되었거든 평정심을 가지고, 찬찬히 빙 둘러 사방을 살펴보거라.
어떠하냐.
아까 있었던 곳이나 이곳이나 크게 이질적인 구석은 없어 보이네요.
엄청 큰 나무들 하며, 구릉과 평지가 적당히 섞인 지형 하며..
아, 반대편에 큰 차이가 있었군요. 저수지보다는 크고 강보단 작은 그러니까..
맞다 호수네요! 뒤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었다니..
크리스탈 호수라고 들어 보았느냐.
13일의 금요일 그 영화 속 배경에 등장하는 호수, 잘 알지요.
이크! 갑자기 싸해지고 소름이 돋습니다.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 것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영화의 장면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걸 본 지가 꽤 오래전이라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있던 곳"과 이곳을 겹쳐 놓을 수 있다 가정한다면, 저 호수 바닥에 막사가 있는 셈이 되지.
물론 이곳 호수에는 수면을 뚫고 나오는 나무들이 없지만 말이다.
검은 구름을 흉내 내던 기분 나쁜 것이 비 같은 걸 마구 토해 내더니만
그게 다, 크리스탈 호수를 급조하기 위함이었군요. 그리고
물 흉내를 심하게 내던 그것은 - 잘은 모르겠으나 - 제이슨을 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초자연적 장치 같은 거였고요.
근데 여긴 첨부터 호수가 조성되어 있으니,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잔잔하지만 색깔부터가 검푸른 것이 아까와는 다른 위압감으로 다가오는데, 이쯤에서
저 물도 진짜 물일까가 궁금해지네요.
그거야 들어가 보면 바로 알지 않겠느냐. 몸이 젖고 숨이 막히면 진짜일 테지.
그런데 그런 테스트나 하고 있을 만큼 지금이 한가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문제야.
네에..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게다가 이곳이 제이슨의 함정이라면, 곳곳에 제 혼을 뺄 기절초풍할 부비트랩들을 설치해 놓았을 텐데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저길 뛰어들겠습니까. 막말로
저렇게 물처럼 보여도 막상 들어갔다간 불처럼 뜨겁고 칼날처럼 아플지 누가 압니까.
많이 앞서간 듯은 하나, 그러한 마인드 나쁘지 않아.
뭐든 조심하고 봐야 할 곳이긴 하지 여기가.
하지만 너무 오버하지는 말아라.
너를 극도로 긴장케 하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는 것이
어쩌면 놈들의 전략일 수 있으니.
그리되면 너의 자각 포스가 분산되어, 이곳을 벗어나는 게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말이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하지 않느냐.
혼자 딜레마에 빠지지 말고, 혼돈이 오거든 지체 없이 나에게 물으라.
그런 뜻에서 너의 첫 번째 궁금증을 풀어 주겠노라.
저건 그냥 물이다. 다른 의미는 부여하지 않아도 돼.
그것보다,
이쪽에선 잘 안 보이지만 저 빽빽한 나무들 뒤로 우리의 막사들이 있구나.
우선은 저기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예? 여기에도 삼청교육대가 있다고요??
비슷한 환경인 건 알았지만 거기까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얘긴가요?
똑같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곳은 수많은 존재들의 무의식이 융합된 결과물이므로
우리가 직접 겪지 않는 한 예측 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만 계속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막사로 가보자꾸나.
마스터와 소년 지수는,
자이언트 나무들이 빽빽하고 그 아래 수풀이 제법 무성한
육지 쪽을 향하여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짐작했듯이, 가까이 갈수록,
빽빽해 보이던 착시 효과는 사라지고 - 그들이 지나온 땅처럼 - 십여 미터 이상의 널찍한 이격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거목들이 더욱 듬성해지는 지역이 나타났으며, 바로 그곳에
예의 기괴한 막사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지긋지긋한 저곳을 또 맞아야 하다니..
우리가 있던 그곳만 한 악몽계도 드물 테니, 굳이 새 판을 짤 필요도 없었겠지.
디테일만 주의해서 독하게 변주하면 이 자체로 충분히 효과적인 덫이 되리라, 놈들은 판단한 모양이다.
이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수야!
지수야, 어딨니?!
지수야! 나 무서워. 어딨는 거야!?
마스터님, 이 소리 들리세요? 저만 듣고 있는 거 아니죠?
치밀하게 마련된 독한 디테일을 벌써 선보이는 것인가..
영미예요. 영미 음성이 틀림없어요!
여길 어떻게..
어느새 "어린 드림바디의 역할"에 다시 충실해진 지수가, 소리 나는 방향을 찾고자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분주하게 사방을 훑기 시작하였습니다.
막사들 근방 우측의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영미였습니다.
백여 미터도 더 떨어진 거리였으나, 이미 뇌리에 깊이 박혀 버린 그녀를 도저히 혼동하려야 할 수 없는 지수였기에,
모든 걸 경계해야 하는 상황임을 숙지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 쪽으로 냅다 달려갔습니다.
예견된 사항이었다는 듯 마스터는 그를 굳이 만류하지 않고
그가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둔 채 멀찍이 서서 관망할 따름이었습니다.
영미 정말 너로구나! 이게 어찌 된 일이니?
몰골은 왜 또 이 모양이고..!
어디서 큰 봉변이라도 당하고 왔는지 교복은 거의 뜯겨 속옷이 드러나는 지경이었고,
헝클어진 단발과 얼굴은 물론 온몸에
진흙 비슷한 정체불명의 얼룩들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핏자국이나 "보이는 상처" 등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수 너야말로 왜 그랬어?
새마을한테 혼나다가 그렇게 다짜고짜 도망가는 게 어딨어?!
나만 혼자 남겨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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