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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엉뚱한 애착지수 이야기/이상한 누나 2023. 7. 13. 17:20
아얏!!아야야! 아파, 이 자식아!!!
화숙이, 가슴을 물고 늘어지는 지수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듯한 통증이 두피를 찌르는 순간, 그는 해일에 휩쓸려 육지로 밀려와 있었다.
파도에 쓸려 돌 투성이 황무지로 다시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엉큼한 녀석 보게? 얌전한 거시기가 뭐 어쩐다더니..아이고 젓탱이야!
지수의 입과 손에 시달려 시뻘게진 양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비벼대며, 그녀가 초라한 화장대 앞에 앉는다.
그다지 볼품없는 그것들을 거울로 열심히 살피면서, 흠집이라도 났나 싶어애지중지 마사지를 하는 등 유난을 떤다.
한편, 그 난리통에 제정신이 돌아온 지수는 자기가 한 짓이 창피하고 두려워구석에 서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만 있다.
'내가 왜 이런 짓을..이건 말도 안 돼!'
고개는 차마 들지도 못하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 있는 그를거울을 통해 힐끗 바라본 화숙은, 그 모습이 우스워 더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지수야.너, 내가 그렇게 좋으냐?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나도 니가 마음에 든다.짜식, 쬐끄만 게 화끈한 데도 있고 말이야..
앞으로 자주 놀러 와서 이 누나 좀 즐겁게 해 줘라, 응?
이러다가도 수틀리면 손톱 세우고 달려들기가 예사일 듯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할 것 같은그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지수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대답했다.
예, 그럴게요. 자주 놀러 올게요.
정말이지? 너 나랑 약속했다!? 후후..
화숙은 새끼손가락을 들이대면서 약속을 강요한다.
너 이렇게 해놓고 약속 어기면 내가 학교로 쳐들어갈 거야!?
예에??!!
왜, 거짓부렁 같니? 이 천하의 화숙이, 한다면 하는 년이야.
너 오늘부터 이 누나랑 사랑하는 사이니깐, 알아서 잘해! 알았지?! 나 화나게 하지 말고..
세상 물정 모르고 물러 터진 철부지를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을러서 선아리 부근에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하려는,괄괄한 그녀 나름의 장난기 섞인 반어적 으름장이었다. 아니,
"잘 사는 집 도련님이 가끔 찾아와 본인의 매상 좀 올려 주기를" 기대하는 파렴치한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나
어차피 그럴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단정하였기에
마음 놓고, 해선 안 될 농지거리를 그를 위한 처방으로 쓴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러한 고도(?)의 위협이 고지식한 지수에겐 본래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당장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까지는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긴 하였다. 그런데..
같은 반 양아치들의 괴롭힘 때문에 가뜩이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차에
그의 원체 소심한 강박관념도 평소의 일관성에서 이탈하여 "될 대로 돼라" 식의 이상한 작동 패턴을 쫓고 말았으니..
화숙의 말대로 따르지 않을 시, 일상의 전혀 평화롭지 않은 평화가 위협당하는 건 아무렇지 않으나
그녀가 잠깐 맛 보여 준 너무도 중독적인 참 희한한 평화(?)가 영영 달아나 버릴 것 같아서,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차원의 두려움"은 들뜬 강박관념을 핑계로
즐거운(?) 모험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태세를 점차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날 이후 계속해서..
어리고 순진한 지수의 이렇듯 엉뚱한 판단에 빌미를 제공한 그녀의 허술한 처방은 (경솔한 협박은)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 나, 나와라! 가자!!
철용이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불쑥 들어왔다.
징그럽고 소름 끼치기만 하던 그의 음성이 이처럼 반갑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미스 나?? 미스 나가 누구야? 난 미스 찬데..
절 부르는 거예요.
뭐? 니가 미스 나라고? 하하하하.그러고 보니 너랑 진짜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얘.
가만..너 정말 계집애 아니니? 아무래도 수상한데..?
직접 확인을 안 해봤으니 알 수가 있나, 낄낄낄..지금이라도 확인해 볼까나?!!
능글맞게 웃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리고 다가와 바지 위에 손을 대려는 화숙이야차녀처럼 보여, 그는 서둘러 방 문을 열었다.
근처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던 철용과 민호가 지수의 모습을 보고 짐짓 반가운 척한다.
야, 너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저 녀석.. 거기 있다 나오니까 혈색 좋아진 것 좀 보게?!
미스 나야, 그래, 남자 구실 해보니 기분 째지지? 다 내 덕분인 줄 알라고, 으헤헤헤.
쪽마루에 걸터앉아 조용히 신발을 챙겨 신는 그의 뒤에언제 따라 나왔는지 화숙이 버티고 서 있다.
야 이 자슥들아! 니들, 얘 괴롭히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그 말을 듣자마자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철용이 대꾸한다.
뭐예요, 뭐! 돈만 벌면 됐지 웬 참견이야, 재수 없게..
눈치 빠른 민호가 그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린다.
뭐가 어째?!! 저런 싸가지들을 봤나.열받는데, 우리 삼춘들 확 풀어 버려?
뭔 일 났어? 시끄러워서 빠구리를 못 틀겄네.
근처 방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기골이 장대한 (장년의) 사내 하나가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 앉아 버럭 소리를 지른다.
불빛이 반사하여 번득이는 민둥머리에 검은 안대를 두른 애꾸눈이성한 눈알 한 짝을 무섭게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데야, 그 잘난(?) 차철용이도
어마 뜨거라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일 아냐, 아저씨. 어서 하던 볼일이나 마저 보셔.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앞니가 유난히 튀어나온) 벌거숭이 아가씨가, 사내의 등에 착 달라붙어거뭇한 털이 듬성듬성한 가슴팍을 더듬으며 한 마디 거들었지만, 그의 다혈질을 무마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상 말세라니깐!! 좆 둘레에 털도 제대로 안 난 젖비린내들이 창녀촌이나 기웃거리고, 쯧쯧..
이눔 자식들! 한 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쎄빠닥을 도려내 버릴 껴!!
미닫이 문이 쾅하고 닫히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얼어붙어 있던 두 녀석이비로소 마음 놓고 숨을 내쉬며 앞다투어 지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뭘 꾸물거려. 벌써 열 시 넘었어, 빨리 가자!
하하하! 어떠냐, 울 삼춘 무섭지?
뼈다구라도 추려서 나가고 싶으면, 무릎 꿇어!꿇고 잘못했다 빌어, 말로 할 때..
너 말이야, 너!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화숙이 앞에 꿇어앉아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는 철용.
미스 나를 옆에 두고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마! 너, 우리 되련님 못살게 굴면 알지?
예, 예.. 잘 알겠습니다, 누나.
쟨 오늘부터 내 남편이니까,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불알을 확 까 버릴 거야, 알아쓰?
예, 알겠습니다!얀마, 뭐 해?! 인사 안 드리고..
옆에 어정쩡한 자세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민호도 그의 재촉에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꿇고 덩달아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누님. 저희는 너무 늦어서 이만..
아항, 얘가 니 똘마니니? 제법이구만, 똘마니까지 키우고..
그래 애기들아, 오늘 재미는 있었냐?
예에!!
여물지 않은 고추들이 많이 놀랐겠구나, 하하하!
헤헤..히히..
이년아! 미친 지랄 그만 떨고 야들 빨리 보내!! 짭새 떴단 말여!
"아가씨 진열대"로 이어지는 비좁은 출구를 막고 선, 사십 대 중반의 뚱뚱한 포주 아줌마가,
배꼽까지 늘어진 거유(巨乳)를 자랑하며 - 뛰어오느라 숨이 찼는지 - 두어 번 숨을 몰아쉰 다음화숙에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느그들은 날 따라와.
뒷문으로 내보내 줄 테니까,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돌아들 가라잉?
아줌마의 꽁무니를 따라 "비밀 통로"로 향하는, 세 명의 탐험가(?)들. 하나같이 긴장한 얼굴들이다.
두 악동들을 서둘러 쫓아가던 지수가 무슨 생각에선지 문득 뒤를 돌아본다.
화숙은 그때까지도 벌거벗은 상체를 내놓고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펴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지수야! 나 찾아올 때, 삼만 원 챙겨 오는 거 잊으면 안 돼!? 삼마너언!!
손가락 세 개를 펴서 잘 가라는 인사라도 하는 양 흔들어대며 삼만 원을 강조한다. 확인사살 차원에서혹시 그에게 남아 있을지 모를 정나미를 뚝 떨어뜨리려는 행동이었으나,
그 모습이 거북하면서도 귀여운 것 같아 지수는 오히려 명치끝이 찡하니 아려 오는 것이었다.
미스 나! 너 아까 그년한테 뭔 헛소릴 지껄인 거야?!
너 인마! 우리한테 물먹여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어휴 이걸 그냥..
............
시장통 부근에서 택시를 잡아 탄 세 명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는데, 민호와 철용이 지수를 가운데 끼워 놓고양쪽으로 압박하며 그를 번갈아 윽박질렀다.
황당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긴장으로 잠시 마비되었던 음주 후유증마저 머리와 뱃속을 동시에 쪼아대는 바람에지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야야, 지나간 얘기 할 필요 뭐 있어. 괘씸하긴 하지만 이번만 봐주자고.
어쨌거나 미스 나 덕분에 우리 둘 다 오늘 구름 위를 날았잖냐.
민호 넌 어땠어..? 별 좀 땄냐?
글쎄..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 어찌나 빨아대던지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말이야..
표독하기로 소문난 민호조차, 그렇게 말하고는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붉혔다.
꼰대 기사 아저씨가 듣고 귀에 피 나도록 잔소리를 퍼부을까 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이었지만, 지수의 뒤통수로 오가는 음담들은 윙윙거리는 날파리처럼 그의 귓속을 파고들기에 충분하였다.
설마, 싸지는 않았겠지?
어떻게 알았어?
딸 칠 때랑은 백팔십 도 다른 거 있지. 참아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멍청한 자식, 그걸 못 참냐? 삼만 원 그냥 허공에 날려 버렸네..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뭐? 자꾸 해?? 너 재벌 아들이냐?
우리의 영원한 물주 미스 나가 있잖냐.
미친놈, 넘볼 걸 넘봐! 이 미스 나가 내 "미스 나"지 니 "미스 나"냐?
혼자 갈 것을, 하도 졸라대서 따라오게 해 줬더니만..?
노획물을 재확인하는 장수의 심정이라도 든 걸까.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다가 뜬금없이얌전히 앉아있던 지수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잡아당기는 철용이었다.
숨이 막힌다. 겨우 되찾은 낯빛이 도로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우리 미스 나가 어땠나 몰라.
미스 나야! 첫날밤은 잘 치렀겠지?
말하면 뭐 하겠냐. 원래 이런 순 내숭쟁이가 밝히기는 또 얼마나 밝힌다고..
아까 그 미친년한테 오죽이나 잘해줬으면, 그년이 제 남편 삼는다 그랬을까..
암,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얼마나 공들여 가르쳐 놓았는데..미스 나! 오늘은 니가 하도 해롱거려서 더 묻지 않겠다만, 내일 학교에선 확실하고 자세하게 경험담을 풀어놔야 한다!?
내일도 이딴 식으로 이빨 차렷하고 있으면 이빨 몽땅 부서지는 수가 있으니까, 알아서 기어!?
철.. 용아, 난.. 안.. 했어. 정말이야!
어유! 요 싸가지 왕내숭, 확!우리더러 그 말을 믿으라구?
민호가 손바닥을 펴서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두개골 속에서 뇌가 신나게 트위스트를 춘다.
너 이 새끼, 만일 오늘 있었던 일 다른 사람한테 꼰질렀다간 죽을 줄 알아!
너희 엄마나 아빠 그리고 담탱이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갔다.. 그럼 그날이 네 제삿날이 되는 거야, 명심해!!
민호의 가시 돋친 엄포에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옳지, 그래야 우리 착한 미스 나지.
철용이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수의 머리를 과장된 제스처로 쓰다듬는다.
혹시나 말이다.. 이렇게 단단히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그런 불행한 사태가 만약 벌어지게 된다면 우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민호야?
뭐,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
우리 둘이 힘을 합쳐 이 녀석을 포대에 넣어 가지고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 다리 위에서 떨어뜨린다거나, 아니면..
어,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자식, 하여간 그런 쪽으론 대가리가 잘도 돌아가.
'나보다 더 소심한 녀석들 같으니..그러게 그리 켕길 짓을 왜 해!
너희들이 굳이 협박하지 않아도, 이렇게 황당하고 창피한 일을 내가 누구에게 이르겠냐.
난 너희 놈들이 도리어 자랑삼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까 걱정된다.이 한심한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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