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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그 섬 안에서
    지수 이야기/이상한 누나 2023. 9. 2. 23:32

     

     

     

     

     

     

     

     

     

     

     

     

     

     

     

     

    방범 아저씨의 세력권으로부터 일단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선 이상 그녀를 발견하였다고 해서 달리기를 멈출 순 없었다.


    화숙이 누나를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집념과 보고픔의 갈망이 그녀와 눈을 마주친 시점에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지수의 행동을 한층 침착하고 주도면밀하게 바꾸어 놓았다.

     


    다시 도로변까지 나온 그는, 아까 잠시 스치며 바라본 그녀의 자태를, 곧 있을 만남에의 기대로 기쁘게 펄럭이는

    "희망의 보자기"에 꼭꼭 싸서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품었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져 깨질까 봐 내딛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창가 둘레를 멀찌기 도는  원거리 코스를 선택하여 천천히 걸으면서도, 그녀의 품에 안기는 "즐거운 평화"를 상상하자니 상큼한 긴장감은 발바닥으로 몽실몽실 빠져나와 부력을 만들었고, 따라서 중력을 느끼지 않는 그의 몸이

    땅 위 3센티 공기를 밟으며 가볍게 움직이는 동작은 저절로 경쾌한 춤이 되었다.  

     


    선아리 시장 쪽으로 우회하여 들어오느라 잠깐 길을 잃고 갈팡질팡 헤매기도 하였지만, 임을 향한 더듬이가 (여인의 마음을 포착하는 안테나가) 곧 정상 가동되는 덕분에 그는 본능에 이끌리듯이 지난번 악동들의 발자취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따라붙을 수 있었다.

     


    주위는 어느새 상당히 어두워졌고, 상대적으로 환락의 거리는 휘황찬란해졌다.

     

     

     

     

     

     

     

    얘, 너 여기 왜 왔니?

     

     


    이리 와! 누나가 끝내 줄게.

     

     


    꼬마야, 엄마 찌찌 더 먹고 와야겠다.

     

     


    에이, 재수없어! 초장부터 웬 젖비린내?!

     

     


    애기야, 꼴리더라도 그냥 참고 가! 여긴 너 같은 땅꼬마 올 데가 아니란다, 호호호..

     

     

     

     


    쇼윈도를 차례로 지날 때마다 귓속을 아프게 파고드는 관능녀들의 벌거벗은 일침이 지수의 단순한 심리를 교란하여

    "눈치 보며 겨우 부푼 가슴"을 주눅 들게 하였다.


    원초적 일상에 지친 여인들의 흐느적거리는 유혹이 깔깔대며 그를 희롱하였지만, 욕정이 자라지 않는 기형아의

    소박한 순정은, 방범대원의 재급습 유무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지일관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머리를 들지 못하는 소심한 소년이, 뒤통수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장을 느끼며 어느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근처 진열장 옆 유리문이 호탕하게 열리더니 앙상한 몸매의 화숙이 득달같이 뛰어나와

    그의 팔목을 잡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컴컴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 지수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지수 너어!? 요런 앙큼한 녀석..

    신통하게 찾아왔구나. 흐흐..

     

     

     


    얇은 입술에 두껍게 발린 립스틱만큼이나 새빨간 초미니 스커트 아래, 새의 그것과 같은 꼬챙이 다리가

    짝다리를 짚은 채 건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몽똑한 손가락 사이에 그의 몰캉거리는 코를 끼우고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아야, 아프다고!

     

     


    저기 봐!

     

     

     


    회숙의 턱짓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얼떨결에 시선을 돌렸는데..


    마침 경찰관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는 중이었다. 어찌나 바짝 붙어서 가는지

    출입문의 흐릿한 유리에 - 누가 봐도 경찰인 - 윤곽이 또렷하게 찍히며 문밖의 희미한 배경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영화의 주요 장면처럼 스크린을 채우면서 일순 정지 화면이 되어 지수의 놀란 망막을 선명하게 점령하고는

    시신경을 타고 쾌속 침투하여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타이밍 죽이지? 이 누나 아니었음 너 십중팔구 저 오빠한테 잡혀갔을걸?

     

     


    휴우, 진짜 아슬아슬했다. 저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날 발견 못한 것도 천만다행이구요..

     

     


    그러게..

    여기 파출소 허수아비들이야 우리가 꽉 잡고 있으니 무서울 건 없지만, 너는 워낙 어린놈이라

    발견했다면 경찰 양심상 못 본 체할 수만은 없었을 테지.

     

     


    누나, 고마워요. 나 안 잡혀 가게 해 준 것도 고맙고 무엇보다 날 알아봐 줘서 고마워.

    누나가 보고 싶어 이렇게 달려온 건데..

     

     

     


    그의 눈은 어느새 고인 눈물로 그렁그렁하고 있었다.

     

     

     


    하이고, 그러셔? 감격스러워 돌아가시겠군..

     

     


    화숙아, 걘 누구니? 친동생은 아닐 테고..

    숨겨 둔 또 다른 서방님이라도 되냐?

     

     


    고 녀석, 예쁘게도 생겼다. 오목조목한 것이..

     

     

     


    진열장 안에서 장시간 인간 마네킹 노릇 하기가 따분했던지, 간만에 생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고

    낫살깨나 먹은 베테랑 창녀들이 이곳 출입구 쪽을 기웃거리며 한 마디씩 던진다.

     

     

     


    언니! 저 꼬마, 달수 씨가 보면, 라이벌 생겼다고 가만 안 있을걸? 후후..

     

     


    웬 라이벌?? 얘도 엄연한 내 손님이라고. 단골손님!

     

     

     

    기집애, 너 먼젓번에도 그 대학 교순가 강산가 하는 인간 단골이라며 공들이다가 은근슬쩍 반(半) 둥기 삼았잖아.

    그러다 달수한테 걸려서 대판 싸움 날 뻔한 거 우리가 겨우 뜯어말린 게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잊은 거야?

     

     

     

    맞아, 언니. 저 언닌 나이에 안 어울리게 은근 여왕벌 기질이 있어서

    자기 맘에 조금이라도 들면 일단 다 거느리고 보려 한다니깐.

     

     

     

    억순이같이 단골 많이 만들어 돈 벌 요량인 애들은 얘 말고도 쌨잖아. 우선 나부터도 그렇고..

    물론 그것도 나처럼 한 미모 하면서 색기가 좔좔 흐르는 애들이나 가능한 거지만.

    그런데 화숙이 넌.. 그래 너도 남자들 후리는 데 소질 있는 건 인정. 그런데 말이야, 나이가 이팔청춘이라 그런가

    돈도 돈이고 거기에다 덤으로 사랑까지 하려 드니까 말 다 했지 뭐.

     

     

     

    후훗, 사랑? 명선이 언니는 그러고도 나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거예요? 이 안에서 이따위로 이러는 것도 사랑인가요?

     

     

     

    그건 그래 명선아, 화숙이 쟤가 순정파면 지나가는 똥개가 웃겠다. 여기까지 제 발로 굴러들어 온 독한 애가

    아무러면 한가하게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겠수?

     

     

     

    그렇긴 한데.. 아직 어려 그런지 좀 반반하다 싶은 사내가 걸려들면 묘하게 끼를 부린단 말이야.

    그다지 이쁘지도 않은 게, 도화살이 타고난 건지 원..

     

     

     

    그래서 부러워 죽겠어?

     

     

     

    참나, 부러울 것도 없다. 스무 살도 안 된 게 벌써부터 그러니 이 언니가 걱정 돼서 하는 소리야.

    기둥서방 여럿 두는 게 자랑 아니다. 사내놈들한테 함부로 정 주다가 잃는 건 돈이요

    남는 건 뒤늦은 후회뿐이란다 이것아.

     

     

     

    어리다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님요? 이래 봬도 이 화숙이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년이라고요. 알면서..

    언니가 뭘 걱정하는진 알겠는데 그거 나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럴 거 감수하면서 이 지랄 하는 거라고요.

    그리 잘 아는 년이 왜 이러냐고? 언닌 이렇게 사는 게 안 심심해? 힘들어 죽겠지만 진짜 죽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이 삶이 따분하지 않아? 미치고 싶을 만큼 말이야.

    이렇게라도 해야, 공주놀이, 사랑놀이라도 해야 난 살 것 같던데? 어수룩한 남자 놈들 가지고 놀면서.

     

     

     

    그렇다면야 뭐..

    하긴, 네 옆에 붙어 있으려는 놈들 보면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이지만 악하거나 약아빠진 구석은 없더라.

    운이 좋은 건지 사람 볼 줄 아는 건지 딱 네가 데리고 놀 정도로만 착하고 단순한 녀석들을 넌 잘도 골라내더라.

    곁에 두면, 화숙이 너의 그 닳고 닳은 깍쟁이 기질, 순수하고는 거리가 먼 매서움을 돋보이게 할

    그런 놈들인데, 넌 그게 좋은 모양이지? 아주 그냥, 위험하지 않는 심심풀이 땅콩들만 모아서

    시들해질 때까지 대놓고 앙탈이라도 부릴 작정이니?

     

     

     

    걔네들도 어차피 나 따먹으려고 오는 떡 손님들인데 이깟 말라깽이 창녀한테 뭔 놈의 순정이 있겠어?

    아무리 그 짓을 잘해 줘도 돈 떨어지고 떡정 떨어지면 결국 매정하게 돌아설 것들, 내가 좀 가지고 놀면 어때?

     

     

     

    누나, 난 그런 막된 어른들과 달라. 나한텐 그런 짓 안 해도 돼. 누나가 돈 더 가져오라 하면 더 많이 가져올 수도 있어.

    누나가 날 거칠게 가지고 놀아도 난 상관없는데..

    그게 누나가 놀아 주는 방식이라면, 그렇게라도 나하고 계속 놀아 주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와아, 얘 말하는 것 좀 봐!?

    쬐끄만 게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우리는 보이지도 않나 봐. 이 언니한테 확 빠져 버렸네 아주..

    얘, 너 나중에 뭐가 되려고 벌써부터 이리 잔망스럽게 노니?

     

     

     

    으이그, 그러셨어요 도련님?

    귀여운 놈이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네. 아이고 이뻐라..!

     

     

     

     

    지수의 기대와 달리 역시나 장난기 가득한 동작으로 그녀는, 쭈뼛쭈뼛 서 있는 그의 등 뒤에서 가볍게 포옹을 하며

    대견하다는 듯 엉덩이를 토닥거리기 시작하였다.

     

     

     

     

    야 이 헛똑똑이야, 네가 끌어모으는 놈들 중에 진짜로 조심해야 할 놈이 있을 수 있단 생각은 안 해 봤냐?

    이 언니가 여태 한 얘기는 개소리로 흘리고 다 잊어도 좋아. 이제부터 첨이자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충고 하나 해줄게.

    이런 데 찾아와서 할 짓 안 하고 저딴 식으로 음습하게 고백이나 하는 것들이 젤로 무서운 것들이야 이것아!

    자기 딴엔 순정인데 짓밟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야.

     

     

     

    하하, 언니! 지금 요 꼬맹이 두고 하는 말이야?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이 언니..?

     

     

     

    아니, 얘가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류의 인간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이지 내 말은..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어려도 너무 어린 저런 미성년자 자꾸 출입하게 하면 너한테 득 될 거 하나 없다!?

    돈만 받고 섹스는 안 해도 되니 웬 떡이냐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 게 아니라고, 이 태평한 것아.

     

    이왕 왔으니 오늘까지만 놀고 다음부턴 절대 오면 안 돼! 알겠니 꼬맹아?

     

     

     

    내 말도 안 듣는데 언니 말을 듣겠어? 얘 처음 왔을 때 협박하다시피 단단히 일렀는데도

    나 보고 싶다고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이 패기 좀 보라고!

    소심한 샌님인 줄로만 알았다가 한 방 세게 맞은 느낌이야. 짜식, 좀 멋졌다 큭큭..

     

     

     


    화숙아, 니 이러다 또 젖탱이한테 혼난데이. 어린애하고 고만 노닥거리고 빨랑 이리 올라온나!!

     

     


    희라 언니, 얘 어린애 아냐! 날 찾아온 손님이라니까!?

     

     


    저 비리비리한 안경잽이 꼬마가 손님은 무슨 놈에 손님이노!
    쟤 저러다 울겠다. 순진한 애 괜히 겁주지 말고 퍼뜩 내보내거래이!

     

     


    아휴, 답답해!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유? 수희야 네가 대신 얘기 좀 해 줘라.

    추석 연휴 때 내가 받은 손님이라니깐 그러네. 날 못 잊어서 다시 왔다잖아. 그치, 지수야?

     

     

     


    화숙은 양손으로 그의 두 볼을 살짝 꼬집은 후 가볍게 흔들어 본다.
    그러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흐뭇한 시선을 흉내 낸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지수는 얼른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니도 이 아이 못지않게 진심인가 보네. 그때가 언젠데 여즉 얼라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노.

     

     


    얘, 너 돈 가져왔으면 누나한테 보여 줄래? 언니들 앞에서 자랑 좀 해야겠다.

     

     

     


    지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배춧잎 세 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오마나, 웬일이니? 별일도 다 보겠네.

     

     


    화숙이 너 봉 잡았구나. 가만..

    이제 보니 얼굴도 작고 하얀 것이, 그야말로 부잣집 도련님이네. 어디서 이런 귀인을..?

     

     


    이제야, 감들이 잡히시나?

     

     

     

    이것들아 이년한테 바람 좀 그만 넣어! 내가 기껏 단도리 쳐 놓았는데 도로아미타불이잖아.

     

     


    도련님이 너랑 빨리 하고 싶나 보다. 자꾸만 구석으로 들어가네? 하하하.

     

     


    수줍음 많이 타는 편이라.

    더구나 거의 벗은 누나들이 연달아 다가와 말 걸고 관심을 가져 주니 부담이 되기도 하겠지.

     

     

     

    보호자 납시었네.

    돈도 받았겠다 어서 일 마치고 나와! 이렇게 늑장 부려서 어디 오늘 목표치 달성하겠어?

    쯧쯧, 여기가 즈그들 놀이터인 줄 아남..

     

     

     

     

    창녀들 농땡이 부리는 건 귀신같이 찾아내는, 포주 아줌마의 오른팔이자 이 구역 양아치들의 중간 보스 격인

    "명선 언니의 기둥서방" 창호가, 어디선가 번개같이 나타나서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 화숙의 심기를 긁어댔다.

    그러나 불 같은 성질의 그를 어느 누구도 말리지는 못하였고, 한 성깔 하는 그녀도 예외는 아니라서 -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이 생활을 지속하기 위하여 - 속으로 짜증이 끓어올라도 참고 굴종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누나도 우리 지수가 무척 보고 싶었단다. 어서 들어가자, 내가 저번처럼 꼬옥 안아 줄게. 흐흐..

     

     

     

     

     

     


    화숙의 발랄한 손길에 이끌린 지수는, 눈에 완전히 익어 친숙한 "그녀의 좁은 방" 안으로

    마침내 재입성하게 되었다. 만만치 않았던 난관(?)들을 모두 헤치고 들어온, 꿈에 그리던 보금자리였다.

     

     

     


    얘는.. 우리 사이에 새삼스럽게 낯은 가리고 그러니.

    천장 안 무너져. 이리 와 앉아!

     

     

     


    제법 훈기가 올라오는 낡은 전기담요 위에 털썩 앉아 벽에 등을 대고 비스듬한 자세로 한쪽 다리를 뻗은 그녀,

    화장대 밑에 손을 넣어  홀쭉해져 있는 담배갑을 끄집어냈다.


    익숙한 폼으로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스커트 주머니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이려다,

    허벅지를 당겨 모은 무릎에 턱을 올려놓고 문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지수를 향해 그것을 던졌다.

     

     

     

     

    이리 오라니까 거기서 바보같이 뭐 해?! 껄떡대면서 찾아올 땐 언제고..
    인마, 내숭 그만 떨고 누나 불이나 붙여 줘!

     

     

     


    발 앞에 뒹구는 라이터를 집어 들고, 그는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천천히 화숙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흰색 팬티 때문에 지수는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곤혹스러웠고, 아울러 아찔해진 정신을 추슬러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왜..? 못 볼 거라도 봤니? 후후..

     

     

     


    짓궂은 화숙은, 뻗었던 다리를 마저 오므려 무릎을 세우고 노골적인 포즈로 팬티의 탄력을 강화하였다.

     

     

     


    춥냐? 왜 이렇게 떨어 사내자식이..
    흔들지 말고 잘 좀 대봐. 누나 머리에 불붙겠다, 얘.

     

     

     


    남한테 담뱃불 붙여 준 적은 한 번도 없는 터라, 반 알몸인 여자와 같은 방에 있는 긴장감만으로도

    두터운 깁스를 한 양 경직된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의 작은 손을 감싸 쥐다시피 고정하여 간신히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한 그녀가

    깊이 빨아들인 연기를 푸우 하고 그의 얼굴에 뿜었다.

     

     

     


    담배 한 대 피우려다 늙어 죽겠다, 새꺄! 사내놈이 숫기 없기는..


    비쩍 마른 북어처럼 빼빼한 것 하며, 예쁘장한 것 하며.. 가만 보면 나랑 닮은 구석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니가 좋아지려고 하는데 말이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불알 밑 거뭇거뭇한 남자 애 하는 짓이 왜 이리 미적지근하냐?!  
    실망스럽다. 여기 막무가내로 찾아온 용기는 다 엿 바꿔 먹었니?

     

     


    미안해, 누나. 누나, 나 때문에 화났어?

     

     


    됐다, 됐어! 오늘은 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다. 하필 오늘 올 게 뭐냐?
    금요일 밤은 골빈 껄떡쇠들이 많이 어슬렁거리기 때문에 이 누나가 엄청 바쁘단다.
    너하고 놀아 줄 시간도 고작해야 십오 분이야.


    열심히 일해야지 누나도 먹고살 것 아니니? 이해해라?!

     

     


    .............

     

     


    짜식, 그 말 했다고 금방 시무룩해지는 것 봐. 삐쳤냐?


    자, 뜸 다 들였으면 누나 품으로 들어와.
    너도 분명 내 귀한 손님인데, 본전 생각나게 하진 않을 테니 염려 말고..
    짧지만 화끈하게 해 줄게.

     

     

     


    체형에 비해 볼록한 편인 화숙의 보송보송한 아랫배에 얼굴을 묻으며 지수가 도리질을 쳤다.

     

     

     


    아녜요! 그런 거 필요 없어! 누나 젖만 만지다 갈게요.

     

     


    하하하! 내 젖만 빨다 가시겠다?! 얘가 아주 재미 들였나 봐?
    너 어렸을 때 엄마 젖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자랐지!?

     

     

     


    아픈 곳을 찌르며 단번에 핵심으로 파고드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우스갯소리가 말문을 막아 버렸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내 말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네. 하여간 물건이라니깐.. 
    부족한 것 없는 집안 자식이 어떻게 나보다도 애정결핍이냐. 넌 아직 애기다, 애기!

     

     

     


    한 손으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숙은 나머지 한 손으로 능숙하게

    어린 계집아이의 윗도리보다 작아 보이는 하늘하늘한 나시와 브래지어를 벗었다.

     

     

     


    나야 나쁠 건 없지. 그래, 실컷 만지고 빨아라.
    이왕에 진짜 엄마 젖처럼 컸으면 좋았을 걸.. 누나 가슴 볼품없지?

     

     


    아니야, 괜찮아요. 이대로도..

     

     

     


    지수는 그녀의 빈약한 가슴을, 가뭄에 단비 만난 사람마냥 화색이 되어 마음껏 조몰락댔다.

     

     

     


    으윽, 참 괜찮기도 하겠다.
    너처럼 주물럭대다간 찌찌가 팅팅 부어 저절로 엄마 젖이 되고도 남겠어. 히히..


    야, 다 좋은데 지난번처럼 아프게만 했단 봐? 죽을 줄 알아?! 으.. 음..

     

     

     


    저번의 실수를 의식하였는지 한 단계 진보한(?) 솜씨로 능란하게 빨아대는 그의 입놀림에, 화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느다란 신음을 입 밖으로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의 건포도를 입에 문 채 평온함에 젖어, 일상에 배어든 불안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시간을

    (흐르는 것도 멈춘 것도 아닌 괴상한 시간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천사의 노래를 실제 듣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보통 대화 나눌 때의 다듬지 않은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영 딴판으로, 이게 같은 여자의 목에서 나오는 건가 심히 의심스러우리만치 가느다랗고 청아한 노랫소리가, 지수의 머리를 살포시 적시더니 점차 온몸으로 확산하듯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영혼을 건드리는 슬픔 그 자체가 되어, 차가운 방바닥을 녹이고

    나아가, 웃풍이 가득한 그의 내면 한 귀퉁이 휑하게 뚫린 심연 속으로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누나, 노래 참 잘하네? 누나가 꽤나 즐겨 부르던 노래인가 봐. 이 동요 나도 어렸을 때 불렀던 기억이 나..

    그런데 그거 "아빠하고 나하고.." 아니었어? 왜 "아빠"가 들어갈 부분에 모두 "엄마"를 넣어서 부르는 거야?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니? 난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으니까 그렇게 부른 거지.

     

    내게 어린 동생이 있다고 너한테 말했었나? 걘 너보다도 어려. 지금 국민학생이걸랑.

    술에 잔뜩 취한 아빠가 엄마를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는 날이면, 그래서 아빠도 엄마도 집을 나가

    어질러진 컴컴한 집 안에 네 살짜리 남동생과 국민학생 누나만 남겨진 날이면, 누난 엄마를 찾으며 우는

    어린 동생을 달래기 위해 항상 이 노래를 불러 주고는 했다.

     

    내 품에 파고들며 징그럽게 어리광을 피우는 널 보니까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나서 누나도 청승 좀 부려 봤다.

     

    이렇게 "좁아터져도 끝없이 막막하기만 한" 공간 안에서 잠깐이지만 너와 함께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으니,

    우리에겐 일상이었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공포, 이딴 암울했던 기억의 잔재는 기름 찌꺼기처럼 쪽 빠져나가고

    어린 순수가 박제된 (하도 메말라 바스러지기 직전의) 어느 한 장면이 너무도 아름답게 떠올라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입이 근질거리더라.

     

     

     

    그 무서운 아빠하고는 누나가 같이 안 살았으면 좋겠는데..

     

     

     

    당연하지. 이젠 내가 어엿한 가장이란다. 내가 이처럼 열심히 번 돈으로 우리 세 식구 행복하게 살고 있지.

    단칸방에 살아도 마음만은 너보다 더 부자일걸? 물론 지금은 내 상황이 이러니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하고 아주 가끔 다녀가는 수밖에 없지만..

     

     

     

    다행이네. 근데 엄마나 동생은 누나가 여기서 일하는 거 모르지? 알면 안 될 것 같은데..

     

     

     

    뭘 자꾸 물어보냐 쪽팔리게..

    식구들은 나 공장에서 일하는 걸로 알아. 내가 아무리 뻔뻔한 년이래도 이 지랄 하는 걸 집에 이실직고할 순 없잖아?

    그런데 이게 또 아주 거짓부렁은 아니거든. 나 빵 공장에서도 한 일 년 있어 봤다고.

    네 나이에 난 이미 학교를 관두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으니까 그게 가능했지.

     

     

     

    그 얘긴 중학교 때부터 가출을 했단 뜻이죠?

     

     

     

    왜.. 모범생 도련님한텐 충격적인 스토리로 들리니? 한데 미안하지만 그 모범생 꼬리표 이젠 뗄 때가 된 것 같구나.

    창녀촌이나 드나드는 엉큼하고 되바라진 녀석에게 모범생 타이틀은 좀 아니잖아?

     

     

     

    네, 떼 주세요! 모범생이란 말 나 역시 정말 듣기 싫다고요. 숨이 콱콱 막혀요..

     

     

     

     

    쯧쯧, 안 봐도 알겠다. 어른들이 널 어떻게 대하는지..

     

    네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내 얘기 조금만 더 하자면, 그래 네 말대로 처음엔 가출로 시작했어.

    아빠가 나한테도 손찌검을 시작한 지 이 년쯤 되던 어느 날이었을 거야. 사춘기로 가뜩이나 예민해 있었고

    참다 참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폭발 직전이었으니까.

     

    타락한 무리와 어울려 아무렇게나 살아가다가 당연한 결말로 화류계의 밑바닥까지 흘러들게 되었지.

    그렇게 자포자기의 삶을 전전하다가 풍비박산 난 우리 집 소식을 멀리서 접하게 되었어.

    남편의 폭행으로 불구가 되어 - 생활을 영위하기는커녕 - 거동 자체가 힘들어진 엄마가

    동생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으니 이를 알게 된 나로서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냐고.

     

    아빠는 가정을 버리고 나간 지가 벌써 오래였고, 비정하다 하겠지만 그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가

    오히려 내 운신의 폭을 넓혀 주었어. 두려움의 대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가족을 거두기 시작했다. 당시엔 볼썽사나운 화류계 생활을 제일 먼저 접었고 그런 다음

    사람답게 살고자 이것저것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었지. 결국 공장까지 들어가서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남들이야 끔찍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겐 여기만큼 편한 데가 없더라 말이지. 무엇보다 우선, 나 하기에 따라

    다른 곳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액수를 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유혹이었고.

     

    사실 이 분야가 들어오긴 쉬워도 나갈 때는 걸리는 게 많아서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구조가 아니걸랑.

    그래서 나도 이 일 그만둔다 했을 때 이미 거미줄에 칭칭 감긴 상태라 빠져나오는 건 둘째 치고 하마터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는데, 여기 포주 아줌마가 나를 예쁘게 봐줘서 정말 많이

    도와주시는 바람에 간신히 나올 수 있었던 거야. 그때의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던 차에

    아줌마가 이곳 선아리에 자릴 잡으셨다 하여 공장을 퇴사하고 바로 연락을 드렸던 거다.

     

     

     

     

    누나의 하나뿐인 인생인데 누나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맞죠.

    이 일이 적성에 맞으시나 봐요?

     

     

     

    그렇다고 내가 씹질에 환장한 년이란 얘기는 아니니까 괜히 오해하지는 마라.

    나도 여자란다. 평생 이런 데서 썩고 싶겠니? 한 4, 5년 목돈 바짝 당겨서 좋은 사람하고 결혼도 하고 해야지.

     

    그나저나 네가 정말 편하긴 한가 보다. 기둥서방한테도 하지 않은 내 비밀스러운 얘기를 다 털어놓다니

    입이 아플 지경이야. 너 보니까 내 동생 생각도 나고 해서..

    오늘은 이 누나가 많이 주책없었지? 약한 모습도 보이고..

    네가 이해해라 동생아. 원래 손님이 아가씨 얘기도 들어주고 그러는 거란다.

     

     

     

    네, 알아요 누나..

    앞으로도 언제든 얘기 들어줄 사람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 그러려고 삐삐도 개통했는걸요?

     

     

     

    자식, 말이라도 고맙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아까 너도 누나들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네가 여길 자주 오면 너뿐 아니라 나를 포함 여기 사람들 모두 위험해져.

    그러니까 너와 나의 인연은, 아쉽지만 오늘까지만이다.

     

     

     

    .......................

     

     

     

     

     

     


    '화숙이 누나..

    누난 나의 피지섬이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이 푸근한 가슴은, 산호와 조개가 보일 만큼 투명한 바닷물 같아.
    누나의 순수한 정이 그대로 들여다보여. 그래서 맑고 깨끗한 바닷물 같아.

     


    이 말랑거리는 아랫배는, 빛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힌 비취색 융단 같은 수면이야.
    태양 광선의 정열적인 율동이 부서져 내리는 잔잔한 너울이야. 


    아!

    누나의 뱃속에서 가끔씩 울리는 이 "꼬르륵" 소리까지 편안한 자장가로 들려.
    돛대를 스치어 날아가는 하얀 바다새의 노래 같아.

     

    소박한 찰랑거림에 몸을 띄우고, 흐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느낌이야. 부드러운 이 촉감..

     


    누나의 작고 낮은 젖무덤 사이에 얼굴을 묻으니, 따뜻한 바닷물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누나의 젖꼭지는, 피지섬이 다스리는 푸르른 무인도.
    이 무인도에 영원히 갇혀 즐겁게 방황하는 로빈슨 크루소이고 싶다.

     

     

    누난  한 마리 귀여운 열대어. 
    그리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어여쁜 인어 아가씨이기도 해.

     

     

    아아..

    나의 사랑, 나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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