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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상한 파라다이스지수 이야기/이상한 누나 2023. 6. 26. 17:44
새까맣게 먼지 쌓인 형광등은 미동(微動)에도 흔들거려 곧 떨어져 내릴 것 같고,일어서면 머리에 닿을 듯 낮은 천장은 누렇게 색 바랜 도배지 무늬를 지수의 코 앞에 들이밀어
숨 막히는 착란을 강요한다.
여자가 상반신을 일으켜, 천장의 꾀죄죄한 무늬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그에게 얼굴을 바싹 갖다 대었다.
거친 말만 수다스럽게 뱉어 내는 "유령 같이 생긴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지수는 고개를 얼른 옆으로 돌렸다.그러자 소박하게 생긴 화장대가 바로 눈앞에서 꾸벅 인사를 한다.
늘어서 있는 갖가지 화장품들을 이빨처럼 드러내고 싱긋 웃는 화장대의 숏다리 옆엔,주인을 닮아 부끄럼을 잃어버린 생리대 뭉치들이 당당하게 쌓여 있다.
아직도 내가 무서워?이거 순 겁쟁이 아냐?? 곱살하게 생겨가지고..
니가 부잣집 마마보이 티를 내니깐 저런 떨거지들이 엉겨 붙어 괴롭히는 거야, 알아?
저것들 정말 잔인한 새끼들이네?! 놀고 싶으면 돈만 뺏어서 지들끼리 올 것이지,순진해 터진 애기를 이렇게 타락시켜야 직성이 풀리남?
그래봤자 한 번 빨면 찍 싸 버릴 애송이들이..즈그들은 꽤나 발라당 까진 줄 아나 봐?
가소로운 것들, 어디 와서 도토리 키 재고 난리야 지금!?
'점쟁이가 따로 없군. 기가 막히게 알아맞히네..'
가만..어째 얘기가 자꾸 샛길로 빠지는 것 같다? 스토리가 이게 아닌데..
애기야.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제가 많이 아팠다고..
아, 맞아!이러다 내 방에서 송장 치우게 생겨 먹었으니 어쩐다냐. 그리 되면, 적어도 십 년은 재수 옴 붙는 거거든.
빽차를 부를까, 니 우라질 친구들 끌고 와 다시 등에다 업혀서 내쫓아 버릴까..
이 궁리 저 궁리 다 해 봤는데, 괜히 동네 시끄러워지면 우리만 손해고그래도 내 손님인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 바닥 이 년 차인 내가 프로 의식 좀 발휘했다 이거야.
어떻게요? 아줌마?
신나게 열변을 토하는데 입 꾹 다물고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내키진 않지만간간이 말문을 열어 응수해 주는 지수였다. 그러나
혹 떼려다 혹 한 개 더 붙인 격으로, 나이를 짐작하기가 무척 난해한 그녀에게 무심코 "아줌마"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걸걸한 허스키 보이스와 세파에 닳고 닳은 말투, 거친 행동 등으로 미루어
가장 자연스러운 호칭이라 여겼건만..
뭐?! 아줌마??너 시방 나한테 아줌마라고 했냐?!!
자신이 실수한 것을 직감으로 알아챈 그는 갑작스러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얼떨결에 여자의 손을 잡았다.
죄송해요, 누나. 제가 실수했어요.
얘가 잘 나가다 스팀 들어오게 하네.
18년 살면서 아줌마란 소린 너한테 처음 들어본다. 너, 이렇게 섹시한 아줌마 봤냐?
누나, 열여덟 살이에요?화장을 그렇게 해서, 저는 한 서른은 된 줄 알았어요.
알았다 알았어. 잘못 본 니 눈깔이 아니라 내 이 저주받은 화장발이 죄다, 죄야!
남동생 같아서 한 번만 봐주는 줄 알아?
고마워요, 누나.누나 남동생이 나랑 닮았나요?
날 보면 모르니?내가 이렇게 예쁜데, 아무렴 내 동생이 저 방에 있는 네 친구 같겠냐?
조금씩 화색이 돌아오는 지수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뭐냐? 그 웃음의 의미는..
저는 뭐 잘생겼나요?
그래도 쟤네들보단 백 배 낫지.
말라깽이라 그렇지, 얼굴이 하얗고 이쁘장한 게 또래 여자애들깨나 따르게 생겼다, 얘..
그러면서, 어느새 그녀 쪽으로 돌아누워 그녀를 마주 보고 있던 지수의 말랑거리는 볼때기를찹쌀떡 주무르듯이 잡아당긴다.
아 아.. 아파요!
짜식..너 이름 뭐니?
지수요..
지수? 누가 니 이름 아니랄까 봐..
사내 녀석 이름이라면, 철민이라던가 동식이, 영국이.. 뭐 이쯤은 돼야잖냐?!
다 아는 사람들인가요?
그래 인마. 다 이 누나 애인들이다, 어쩔래.
누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쬐끄만 녀석이 내 이름은 알아 어따 쓰려고?
'피이.. 자기는 나보다 더 작으면서..'
그냥 알고 싶어요. 갈쳐 주세요, 네?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 다음, 여태까지의 말투와는 사뭇 다르게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여는 그녀.
난 화숙이야. 성은 네가 알아서 붙여.이제 됐냐?
화숙이 누난, 여기가 집이에요?여기서 살면 누나 동생이랑 식구들도 여기 있겠네요?
................
누나 하시는 일 대충은 짐작 돼요.아까 낮에, 철용이랑 민호가 만화 가게에서 이상한 영화 보여 줬거든요?
미국 여자랑 남자가 발가벗고 나와서 막 이상하고 징그러운 짓을 하던데..
누나도 그런 거 하시는 거 맞죠?ㅈ
저 대책 없는 자식들! 순진한 아이 가지가지로 망쳐 놓는구나.
얘, 그건 영화잖니. 감독이 시키는 대로 연기하는 가짜들이란 말이야.실제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없어. 호기심 많은 인간들이 그저 흉내를 낼 뿐이지.
근데, 내가 지금 얠 데리고 뭔 말을 지껄이는 거야?
창녀 주제에 성교육하고 앉았네?? 하하하!!
누나 하시는 일 나쁜 일이잖아요. 그거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뭐? 나쁜 일?? 누가 그따위 소릴 해?! 니네 선생이 그러디?
지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내듯 톡톡 건드리면서 화숙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 개소리하는 인간들 다 데려와. 내가 묵사발을 만들어 놓을 테니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짝짝 갈라질 정도로 목청을 높이며, 이만저만 열받은 게 아닌지누운 자세로 다리를 번쩍 들어 공중에 대고 마구 휘젓기까지 한다.
한방 세게 걷어차일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는 앞뒤 잴 것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화숙의 품에 파고들었다.
밀쳐낸다면 악착같이 달라붙어, 만의 하나 발생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리라마음을 다잡고 있는 지수에게 그녀가 예상 밖의 공격을 감행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꽉 껴안아 품 속에 꼭꼭 가두어 버린 것이다.
너, 내 말 똑바로 들어! 이건 먹고살기 위한 내 직업이야.하기야 몸 파는 짓을 떳떳하다 할 순 없겠지. 그렇지만, 우리 갈보들 외엔 어느 누구도
우릴 욕하고 손가락질할 자격 없다, 이거야.
너희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주둥일 놀리냔 말이야.내가 똥갈보 된다 할 땐 말리지도 않던 놈들이, 이제 와서 그 딴 소릴 지껄여?
좆 박고 싶어 근처를 어슬렁거릴 땐 언제고, 싸고 나서 여유로워지니깐 그 딴 소릴 처한다 이거지!?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 일을 저주하고, 나 자신한테도 미친년 뒈질 년 바가지로 욕을 퍼붓고 있으니깐,자격미달인 놈들은 그만 빠지라고!
미친 년 성질 긁지 말고 주둥이에 공구리나 치란 말이야!!
화숙이 팔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지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슴패기에 배어 있는 진한 향수 냄새가 콧구멍 속으로 침투해 와,가뜩이나 부족한 산소를 더욱 앗아가는 것 같았다.
누나, 잘못.. 했.. 어요. 이것 좀...
너한테 화내는 건 아니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릴 뱉어내는, 잘난 체하는 놈들이 싫은 거지..
그건 그냥 내 생각이었어요.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한테 직접 들은 얘긴 아닌데..
그렇게 된 게 다 세상이 널 세뇌한 결과라고.그건 그렇고, 이건 뭐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꽤 앙큼하네?
누나가 좋아??
'자기가 껴안고 있으면서, 뭔 소릴 하는 건지..'
누나도 그러니까, 이런 일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란 얘기죠?누나! 나랑 여기서 도망치자 지금, 응??
하하. 너랑 도망치면..너, 나 책임질 수 있어? 누나랑 결혼이라도 할래?
...............
아가리 묵념은..네 말이 얼마나 개소린지 즉석에서 깨닫고 있는 중이냐?
됐고!
널 이렇게 안고 있으니 마치 엄마가 된 기분이다. 너두 아기가 된 것 같지 않니?
'정말 그렇네. 포근한 이 느낌..
엄마한테도, 유모한테도, 이렇게 안겨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그런 것도 같아요.
조금만 살살 안아 주시면 더 좋겠는데..
그래?숨 막혔구나. 진작 말을 하지이..!
@#$%;;......
얘, 아까 너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말해 줄까?
아스피린 두 알을 잘게 씹어, 물 한 모금 머금고 네 입에다 조금씩 흘려 넣어 주었어.
엄마가 아픈 아가에게 하듯이, 꼭 껴안고 뽀뽀하면서 입으로 약을 먹여 주었는데..
넌 까맣게 모르고 있구나.
'우째 그런 악몽을 꾸었는지, 이젠 확실히(!) 이해가 가는군.으으.. 구역질 나.'
아기야, 배고프면 엄마 찌찌 먹어도 돼요.
화숙이 빨간 브래지어를 내리자, 건포도 두 알만 달랑 박혀 있는 빈약한 가슴이갑자기 그의 시야에서 일렁거렸다.
배 안 고파요..
어서 먹으래두?!엄마가 널 살렸는데 넌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못된 아기로구나.
머뭇거리는 지수의 머리를 끌어당겨 기어이 젖을 물리고야 마는 그녀,
그제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 놀이"의 뿌듯함(?)에 일방적인 만족감을 표시한다.
옳지, 내 귀여운 아기. 찌찌 잘도 먹네.
'정말 이상한 누나야.정신이 살짝 나간 거 아닐까?'
이 분위기를 섣불리 깼다간 또 무슨 사달이 나지 않을까 싶어, 지수는 입술로만 "건포도"를 가볍게 물고잠시 사태를 관망하였다.
좁은 방 안에는 흔한 탁상시계 하나 안 보여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고,집에서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불안하여 당장이라도 뛰쳐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으나,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처지라 볼일(?) 다 본 악동들이 가자고 불러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일부러 지수를 데려 온 녀석들이니, 뒤가 켕겨서라도 그를 팽개쳐 두고 자기들끼리 가 버리지는 못하리라.)
걱정만 앞선 상념의 충동질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비운 적당한 포기 상태에 놓이자,미묘한 심리적 감흥이 의식의 굳은살을 뚫고 새싹처럼 솟아올랐다.
여자의 벗은 가슴에 얼굴을 대고 선명한 심장 박동음을 들을 수 있는 체험은, 기억이 닿아 있는 시점으로부터 현재까지를 통틀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고요하면서 장엄한 "우주의 선율"을 영혼으로 듣고 태초의 생동감을 가슴으로 빠는 동안, 지수는꿈에도 그리던 (안식과 평화가 누워서 기다리는) 파라다이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포악한 세상이 강탈한 영역을 얼떨결에 되찾은 그는
자신을 괴롭혀 온 사나운 시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그곳에서, "나만의 쉼터"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처절한 몸짓인 양 화숙의 가슴을 힘차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14년간 목말라왔던 갈증을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생뚱맞은 욕구가, 그녀의 자라다 만 젖무덤을 못 살게 굴었다.
비록 화숙의 유방은 납작하였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갓난아기 시절로, 엄마 젖을 빨고 싶어 밤마다 울어야 했던 그 어둠의 시절로 돌아간 지수는
과거의 한(恨)을 풀어보겠다는 "무의식이 토해낸 엉뚱한 의지"를 혀끝에 실어,어린 처녀의 메마른 유방에서 젖을 끌어올리려는 무모한 시도를 집요하게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그의 "피지섬"에는 해일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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