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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험한 연모(戀慕)지수 이야기/이상한 누나 2023. 8. 5. 11:34
두 녀석의 집 앞까지 중간 기착지를 꼼꼼하게 경유한 택시가, 마지막으로 지수의 대문 앞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5분.
돈 관리를 한 민호가 야무지게(?) 택시 요금을 삥땅한 관계로, 지수는 하는 수 없이 기사를 기다리게 해 놓고초인종을 눌렀다.
지수니?
네에..
잠시 후 육중한 성(城)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그의 어머니, 아버지, 큰형, 유모, 그리고 그의 전용 운전기사인김기사까지..) 우르르 몰려와 그를 에워싸며 법석을 떨었다.
너 인석! 지금껏 어디서 뭐 하다 온 거야?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얌전히 있어야지.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알아?!
바쁜 볼일 때문에, 친척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는 무렵이 되어서야 그들과 합류한 큰 형.
부모님 앞에서 오랜만에 맏이의 위엄을 과시해 볼 속셈인지, 결혼 이후 얼굴 보기 힘든(스무 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한참 아래 터울의) 막냇동생한테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형, 왔구나..
그래 여태까지 친구 집에 있다 온 거니? 이렇게 늦게 올 거면 전화라도 미리 줄 것이지 무심하기는..
뻣뻣한 큰형과는 달리 늦둥이 막내를 "불면 날아갈까" 그저 신줏단지 아끼듯 애지중지 여겨온, 그래서누나 형들에게 적용해 오던 엄격한 가정교육의 굴레를 귀여운 지수에게만은 도저히 적용할 수 없었던 부모는
기다리는 동안 가슴 졸인 일은 까맣게 잊고, 감히 화를 내거나 다그치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처럼
그가 무사히 돌아온 사실에 대해서만 한없이 감사해하며 그를 껴안기에 급급하였다.
대기업 회장 부부의 평범치 않은 일상을 핑계로 양육을 전적으로 유모에게만 떠맡기다시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별 탈 없이 착실(?)하게 아니 그 이상의 모범생(?)으로 자라 주는 지수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한 그들이니,
태어나 처음 부모 속을 조금 태웠다 해서 그에게 심한 역정을 낼 수는 양심상 없었으리라.
너 때문에 회장님하고 사모님께서 얼마나 염려하셨는지 아니?
혹시라도 잘못되었을까 봐 널 찾으려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단 말이야.
지수 일로 크게 나무람을 들은 유모가 그를 보자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언뜻 들으면, 진심으로 지수가 걱정되던 차에 반가움과 회한이 교차하여 울먹이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쓸데없는 소리.. 이렇게 왔으니 됐지.
지수야, 저 태시 네가 타고 왔니?
네..
김기사, 이거 기사 분께 전해 줘요. 거스름은 필요 없다 하고..
육순을 넘긴 지수의 아버지 나 회장이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몇만 원을 꺼내어 김기사에게 건넸다.
예, 회장님.
지금 같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구실 삼아 소중한 막내아들에게 너무도 오랜만의 스킨십을 시도해 보려는 심산인지어머니는 지수를 껴안고 뺨을 대려 한다.
어머니를 안아 본 기억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만에 하나입 안에서 (고작 종이컵으로 맥주 세 잔이 전부며 마신 지 네 시간 가까이나 흘렀건만..) 술냄새가 새어 나올까 봐
전전긍긍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그의 잔뜩 경직된 몸은
모처럼 다가오는 어머니의 애정 표현임에도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거북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아들의 행동에 -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 어머닌 꽤나 낙심하였으리라.
피곤하지? 저녁은 먹었고?
응..
눈높이에서 귀에 대고 속삭여 주는 이 정감 어린 목소리가 과연 어머니의 그것인지 지수는 긴가민가하였다.
이때, 눈치 없는 김기사가 걱정한답시고 안 해도 될 말을 꺼내어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을 불러일으켰으나다행히 가족들은 날카로운 큰형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말을 문제 삼지 않았다.
친구 집이 예서 머니? 택시를 다 타고 오게..
미터기 요금도 만만찮게 나왔던데.. 아저씨한테 연락하지 그랬냐.
자아 자, 애 피곤할 텐데 여기서 이러지들 말고 다들 들어가세.
큰애야, 넌 경찰서에 연락해서 신고 취하하도록 해라.
화숙이 누나,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밤이에요.
오늘 누난 무척 피곤해 보였어요.
언제나 밝은 누나가 날 보고도 웃지 않을 만큼 지치셨네요.
밤 11시가 넘어서야 기름투성이 싸구려 잡채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소화시킬 틈도 없이 손님을 받으셔야 했죠.
자주 다독거렸을 파우더가 받지 않을 만큼 피부도 지쳐 보였어요.내 얘기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눈을 뜨고 졸던 누나.
가끔 번지는 입가의 미소마저 시무룩해 보였어요.
사실, 누나만은 못하지만 나도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철용이의 괴롭힘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거든요.
그래서
누나의 하얀 허벅지와 엉덩이를 힐끔거리기에도 내 눈알은 피곤해 앙탈 부렸고,
누나의 가슴을 빨아야 할 내 입술은 벌려질 기운조차 잃었나 봐요.
내일 다시 와도 되죠?
누난 누군가와 닮은 것 같아요.
세련과는 거리가 먼 평범의 극치.. 그래서 좋아요.
정상적이지 않은 내가 누군가를 꼭 닮고 싶다면 그건 누나일 거예요.누나 건강하세요, 부디!
누나의 웃는 모습 다시 보고 싶어요..
93. 10. 23
지수 드림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겪은 엽기적이고 몽환적인 사건 탓인지 그 후 며칠간 지수는 반쯤 혼이 빠진 상태로"화숙이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학교에 가나 집에 있으나, 텅 빈 듯 몽롱한 머릿속으로 그녀의 납작한 가슴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체의 푸르스름한 환영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어, 숨이 컥컥 막히도록 그를 안고 애무하였다.
평상시에도 입이 짧은 편인 지수는 끝내 식욕을 잃어버렸고, 사건이 있은 지 5일째 되던 날결국 몸살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며 앓아눕기에 이르렀다.
이틀 동안 결석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진 그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어머니가 친히 영양 죽을 떠먹여 주기까지 하는 (평소 경험하기 힘든) 호강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즐기고 행복감에 젖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처방약의 효능으로 간신히 고열이 물러간 빈자리에 중 2 학생에겐 어울리지 않는 막연한 허무가 눌러앉아혼란스럽게 설쳐대면서 조급한 깨달음(?)을 독려하였다. 이로 인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미열도, 지수로 하여금
자신이 몸져눕게 된 원인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하는, 촉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막연한 허무와 막연한 그리움이 한데 엉켜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것들은 정수리를 뚫고 뿜어져 올라와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화숙이 누나..
'그렇군! 날 병들게 한 건 화숙이 누나..
누나한테 가야지. 그래야 이 병이 나을 수 있어. 이깟 약이나 주사 따위론 어림도 없지.미안하지만, 엄마도 어쩔 순 없어요.
나에게 신기한 아픔을 준 누나한테 갈래.
아아.. 지금 이 아픔이 과연 병일까? 태어나 처음 맛보는 건강함이라면 어쩌지?
누나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아프고 싶다.
당장 누나에게로 뛰어가서, 나를 위해 서슴없이 내어 준 그 고마운 가슴을 마음껏 만질래.
푸근한 (나만의) 유방에 얼굴을 비비고 힘차게 젖을 빨아야지.
누나, 기다려. 지수는 약속을 지킬 거야. 오늘, 누나한테 꼭 갈 거야!'
그날 오후, 정신력으로 침대를 박차고 나온 지수는자신의 개인 금고와도 같은 책상 서랍에서 4만 원을 챙겨 그녀에게 갈 채비를 서둘렀다.
아직 열도 내리지 않았으면서, 저녁 다 돼가는데 어딜 가려고 그러니?
아무래도 오늘 결석한 게 좀 걸려서요. 친구 집에 가서 오늘 배운 내용들 대충 알아보고 올게요.
정히 그럴 거면, 친구한테 연락해서 오라 그러지 않구..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찬 바람 쐬면 안 돼요!
저 이제 거뜬해요. 걱정 마세요, 유모.엄마는 볼일 보러 나가셨죠?
사모님이 신신당부하시고 나가셨어. 네 옆에 꼭 붙어서 잘 돌봐 주라고 말이야.
엄마한텐 유모가 잘 말해 주세요.하루 종일 누워 있었더니 온몸이 결리고 찌뿌둥해서요. 이럴 땐 몸을 움직여 줘야 한다고요.
지난번 일 잊었니? 그날 사모님께 어찌나 혼났던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제발 부탁이니 이 유모 봐서라도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 집 안에서 조금씩 운동도 하고 그러면 되잖니?너 땜에 사모님도 일찍 들어오신다고 하셨어.
아냐! 나 너무 답답해!!나가서 당장 바람 쐬지 않으면 오히려 병이 도진다고요!
그런데, 아프다는 애가 왜 이리 고집을 부려?!
넌 어째, 이틀씩이나 결석을 하는데도 문병 오는 친구 하나 없니?!
전화해서 친구더러 이리로 오라 그래라.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응?
별다른 의도 없이 무심결에 내뱉어진 유모의 한마디가 그의 상처투성이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맞아! 나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야. 그러니까 직접 찾아 나서는 거라고요!
오늘 안으로 들어올 테니까 접때처럼 괜히 난리들 피우지 마세요.
알았다 알았어. 내가 니 왕고집을 어찌 꺾겠냐.
갈 때 가더라도 그 친구 전화번호는 적어 주고 가렴.
나도 전화 번호 잘 몰라요. 대신에 저녁 일곱 시쯤 꼭 전화할게요.
아니, 그때까지 안 들어오겠단 거냐? 사모님 와 계실 시간인데..?
그러니 전화한다는 거잖아.
나도 이제 다 컸으니 제발이지 어린애 취급 좀 그만 하란 말이야!
지수 너 말 한번 잘했다.
나도 너랑 동감이니, 만만한 나한테만 큰소리치지 말고 사모님 앞에서 직접 그렇게 얘기하려무나.네 덕에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지내보자. 이 유모 소원이야!
알았어요, 꼭 그럴 테니깐 걱정 마세요.
아예 메모를 남겨 놓고 갈게, 엄마 오면 보여 줘. 그럼 됐지?
그래도 난 마음이 안 놓여.
부디 시간 맞춰 전화하는 거나 잊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일찍 들어오렴..
지수는 거짓 행선지를 메모지에 적어 유모에게 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빈둥거리는 게 미안해선지 아니면 밥값을 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려는 것인지부득부득 친구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역시나 눈치 없이 매달리는 김기사를, 그는 겨우 따돌리는 데 성공하였다.
큰길에서 익숙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그의 평화가 기다리는 "도시 안의 피지섬"을 향하여 목마른 기대감을 출발시켰다.
다짜고짜 "선아리 베가스요"라고 말했을 때 기사 아저씨의 얼굴엔 떨떠름해하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으나돈 한 푼이 아쉬워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네 서민의 일원인) 그였기에, 멀리 가는 손님의 비위를 거스르기가 싫어
업무상의 무표정을 재빨리 되찾고는, 자신의 아들뻘인 지수가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핸들을 움직였다.
설마하니 요 꼬맹이가 그곳에 용무가 있어 가는 건 아니겠지. 가려는 목적지와 가까이 있고 또 워낙 유명(?)한 곳이라단순히 기사의 편의를 위해 알려 준 행선지일 테지. 뭐 이렇게 멋대로 짐작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한편
괜히 물어봤다가 "어린 손님이 순순히 자백(?)하였을 경우" 감당해야 하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우선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겠단 의도에서, 추궁할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기사 본연의 투철한 직업 정신만 발휘, 그저 정면만 바라보며 페달 밟는 종아리에 힘을 가할 뿐이었다.
완연한 가을의 해가 지고 기세 좋게 어둠이 물들어 가는 저녁 6시.
택시는, 선아리 베가스가 끈적이는 피곤을 뒤집어쓰고 아직 낮잠을 자는 구역 입구 도로변에지수를 나몰라라 떨어뜨려 놓고 휭하니 달아나 버렸다.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핑크빛 홍등가가 시궁창 냄새 나는 쾌락의 밤을 서서히 준비하면서저주받은 일상을 반복하기 시작할 무렵, 그 나른한 저주가 조종하는 인형인 듯
그는 말짱한 정신으론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미로를 잘도 찾아들고 있었다.
"여자 진열장"과 함께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등들이유혹하는 여인들의 섹시한 윙크인 양 깜박이면서 하나 둘 켜지고 있는 가운데,
지수의 콩닥거리는 심장은 전신의 떨림을 마구잡이로 변주하기 시작하였다.
전후좌우를 살피느라 정신없던 그는, 방범대원 복장을 한 중년의 아저씨가 맞은편 코너에서 갑자기 튀어나와그에게로 황급히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방심한 채 있다가 뒷덜미를 덜컥 잡히고 말았다.
(혹시 진열장에 나와 있지는 않을까 하여 쇼윈도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화숙이 누나 찾는 데에만 급급하느라
잠시 경계심의 고삐를 늦추고 만 것이다.)
야! 이놈 보소? 쥐똥만 한 녀석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썩 꺼지지 않으면 잡아 가둘 거야!
어마뜨거라 오던 길을 되돌아 황망히 달아나는 도중에 무심코 옆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마침 진열장 안으로 들어오던 앳된 얼굴과 눈이 마주쳤고, 짙은 화장에 가려져 있어도그녀가 화숙이 누나임을 알아차리는 데엔 시간이 전혀 필요치 않았다.
지수를 알아본 그녀가, 아주 뜻밖이라 생각했는지 작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연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숙의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어서 그녀의 입가로 장난기 다분한 웃음기가 빠르게 번지는 중이었다.
'아, 저 귀여운 모습이 그리워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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