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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골목을 거니는 고독 : 낯섦, 애잔한 평화..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3. 28. 17:16
어느 시인의 한 구절 시구가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멀리 따돌린 것들은 모두
나를 앞질러 있었다는 것을....."
삶이 버거울 때면 간혹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산책이라기엔 좀 그렇지요..
처음에는, 사는 곳 주변아는 동네들을 바쁜 척 누비다가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 아무 데나 주저앉고 싶어질 즈음이면,
생전 가보지 않은 구역의미로 같은 골목들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땅거미를 뒤집어쓴 생경한 풍경이
아득한 너머까지늘어진 혓바닥처럼 대로(大路)를 깔아놓으면,
해진 다리는 한참을 망설입니다.골목들 안에서 계속 어슬렁거릴지
저 큰길 너머로 아주 사라져 버릴지..
얼기설기 얽힌 추레한 골목 어딘가에는살던 곳이 언제나 굳건히 기다리며
안심하기를 종용합니다.
낯섦에 유혹되어 아무리 헤매어도
서글픈 귀소본능은
깔끔한 익숙함으로 여지없이 복귀를 완료합니다.
그렇게,
생전 가볼 일 없는 일직선 대로도
내 용기 없는 동경(憧憬) 안에 갇히고 맙니다.
늘 그러하듯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삶이 버거울 때면 간혹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나만큼 버거운 삶들이 엎어져 느리게 꿈틀대는,
가여워 눈물이 팽그르르 솟는
구불거리는 불안함 속에,
게을러 불결한 정겨움이 누워 있습니다.
귀소(歸巢)가 혹여 결박당하면
이내 벌겋게 달아오를 조바심도,
그 정겨움에 그만 혹하여
미동(微動)보다 천천히 누워 흐릅니다.
경황없어 공복감도 마비된 공황(恐惶)이
더 불안하고 더 게으르고 더 불결한 평화를 찾아,
퇴색된 영혼들의 구수한 무지가 묻어 아기자기하게 넘실대는,
안식을 찾아
단내 나는 잰걸음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쑤시면 쑤실수록,
구름 위 퍼스트 클래스에서 고급 와인을 홀짝이며
"번화가가 뭉개진" 대지를 내려다보는,
하나님을 닮은 내가
잘 감긴 태엽을 일부러 풀어
나를 닮은 인형의 깜찍한 패닉을 느슨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중력에게 괄시받는 추상적 슬픔의 정수를
아주 살짝만 맛볼 수 있게
적당한 속도로..
산책이라기엔 좀 그렇지요.
처음에는, 사는 곳 주변
아는 동네들을 바쁜 척 누비다가,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 아무 데나 주저앉고 싶을 즈음이면,
생전 가보지 않은 구역의
미로 같은 골목들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고 자랐단 이유로 아주 자애롭게 나를 수감한 이 땅..
반듯하게 구획 쳐진 풍요로운 유식(有識)이
젠틀한 인공호흡을 멈추면
지금 당장 질식사 할 약해 빠진 주제가, 어째서
정원의 잡초같이 대로 소로에 더부살이하는
자생력 강한 골목들을 가여워하는 걸까요.
연민만큼이나 그리운 그곳들 속으로 스며들어야 편안한 나는,
반듯한 구획에 반항하는 지저분한 정감들 속에서
왜 슬퍼지는 걸까요.
맘에 든 골목에 누워 쌔근거리던 기쁨이 금세 주눅 들어 버리는 건
"나를 맘에 들어하는" 골목을 찾지 못해서일까요.
내가 난 이곳에서
내가 들어서는 골목은,
나와 함께하는 골목인지 나를 배척하는 골목인지..
나를 닮아 울먹이는지 나를 안 닮아 울먹이는지..
이곳에서는 정말 모르겠어요.
한 치의 위화감도 허용치 않는 낯섦이란 게 존재할까요.
한없이 친근한 낯섦 속이라야
순박한 고독은 비로소 울음을 그칠까요.
산 채로 천국을 거닐고 싶어
아드리안 해를 따라 어슬렁거려 보았습니다.
생경한 풍경이,
아득한 너머까지
"골목들을 거느린 대로(大路)"를 늘어진 혓바닥처럼 깔아놓으면,
해진 다리는 한참이나 망설인답니다.
아, 이 낯섦 친숙하다
이 낯섦, 눈물이 난다
일만 킬로미터 밖이어도
귀소의 스케줄은 동네 골목을 거닐 때보다 더 확실해서일까.
어찌하여 나답지 않게 이리 낙천적이지?
그래서 불안하냐면 꼭 그렇지도 않아.
게으름이 화사하게 퍼진, 골목들의 파라다이스..
청동 항아리처럼 오래된 "영혼들의 무지"도
결벽한 아폴로가 닦고 또 닦아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아차 싶은 "구름 위 내"가 다시 빡빡하게 태엽을 조여도
난 왜 이리 가볍지?
날듯 말듯 통통 튀어 오르는 슬로모션처럼
나를 벅차게 하는 이 어여쁜 자각몽들.
이국의 맹렬한 햇살이 따갑게 쪼아대도
그늘에 머문 해풍(海風)은 건조한 땀방울마저 허락지 않습니다.
아니 햇살부터가 끈적이지 않아요.
눅눅한 습기로 비 오듯 흐르던 불안도 없고
그것과 지저분하게 동화(同化)되던 조급한 천진함도 없습니다.
내가 곧잘 누운 곳에선,
금방 터질 재잘거림으로 상기된 적막이라
희소한 "한낮의 고요"는 날 충분히 설레게 하였지요.
그러나 이곳의 적막은
깔끔한 뜨거움에 의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네요.
반듯한 구획이 공양하는 꼿꼿한 할아범.
정복자들이 받들어 모시는, 범접 못할 느긋함.
침묵하는 서릿발에 "잔인한 아이"도 지레 겁먹는지라
저항 않고 늙어갈 수 있는 천년둥이.
"미동보다 천천히 눕고픈" 나를 닮은, 낯선 골목들.
해풍에 닳아 모가 다 없어진, 미동도 하지 않는 세월들.
얼기설기 얽힌 진득함들.
그 사이를 기쁘게 누워
흐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고독이 겁 많고 소심하면,
확 트인 시골길, 고즈넉한 오솔길 마다하고 인기척 없는 골목을 고집하지.
인기척은 없어도
양옆으로 사람 내음 그득 품고 있을 테니.
그러니
안심하고 위화감을 즐기며 누워 볼 수 있었을 테고..
골목은 방문자의 외로움을 헷갈려해도
골목에 숨은 사람들은 나의 피, 나의 희로애락.
그러기에 골목은,
슬퍼서 누울 수 있는 곳이고,
고이지 않고 흘러서 슬픈 곳이고..
순박한 고독이 아늑해할
이역만리의 닮은꼴.
누런 고독이 분수를 망각하고 기쁨의 추상(抽象)을 잠시나마 맛보는 골목.
여기선 왜 누울 수조차 없을까요 낯섦이 따뜻하여 졸음은 오는데..
까뮈의 햇볕에 역시
이방인은 당황하여 서 있어야 제격인가요
이방의 골목은 아주 포근하게 이방인을 밀어내야 미덕인가요
이곳의 호젓한 골목들도
양옆에 사람들을 가득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고소한 치즈 냄새 그윽한 골목은
명징하게 날 인정하지만,
그들만의 피, 그들만의 희로애락은
오리엔탈 론리니스쯤 안중에도 없나 봅니다.
그래서 어색하고
그래서 누워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낙천적이고 가벼워진 내가 지금 슬프다는 것.
누울 수 없어서 슬픈 게 아닌 슬픔,
잊을만하면 다가오는 여전한 슬픔이라는 것.
고독은, 근원을 찾아도 슬퍼야 할 운명인가요.
고향에 돌아온 율리시즈는 슬퍼야 할 이유라도 있었지만..
슬픔을 물리치고 행복을 쟁취하는 서사의 세계 안에서
너무나 황홀한 천국을 홀로 거니는 건
위험천만한 일일까요.
행복도 어쩌지 못하는 슬픔에 빠지고야 마는
저주일까요.
구름 위의 내가 보내는 연민이 햇볕처럼 오롯이 내리쬐는,
유배지의 서글픔일까요.
쾌청한 날씨에도 눈물짓는 미스테리,
즐거운 게 죄스러운 아리송함이
제 세상 만난 듯 활보하는,
청승이라니.
귀소가 보장된 한시적 헤맴이 선사하는 서글픔은
감질만 날 뿐..
지중해 특유의 화창함이 흠뻑 부어져 가난도 낭만적인,
차창 밖 풍경에 수감되고 싶어.
결박을 풀고,
주황의 지붕들 아래 도사린 내 아름다운 천형(天刑) 속으로 다이빙하고 싶어.
외조부의 손을 잡고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던,
지금은 소박하게 잠이 든 시대.
탈탈거리는 삼륜차 따라 저 큰길 너머로 사라지고 싶었던
네 살배기의 화창한 슬픔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옥빛 철썩임이 지척에서 어루만지는 "나른한 퇴행의 골목" 안에서,
지칠 때까지 뛰놀고 싶어.
구름 위의 내가 소유한 이 애잔한 인형,
남들 의식하지 않는 이 철없는 슬픔을
어찌하면 좋을꼬.
여기 사는 이들은 따돌리고 밀어내겠지만
비참하게 구걸하며 누더기로 살다 가도 왠지 좋을 것 같아.
혹시 알아?
낯선 천국을 씩씩하게 배회하는 슬픔에게
손 내미는 늙은 고독이 있을지.
천국처럼 보여 바다 건너 우리의 지옥을 기꺼이 거닐던
왕년의 서글픔이
지난날의 험난한 판타지를 회상하며
동병상련의 젊은 외로움을 보듬어줄는지..
가난한 이국의 골목은,
신명 난 쓸쓸함이 한참을 배회해도
미로 끝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스위트홈이 굳건히 자리하지 않아
좋습니다.
낯섦에 유혹되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매고 다녀도,
익숙한 귀소본능이 복귀를 종용할 수 없어
마음에 듭니다.
내 안에 누워있던 초라한 골목 하나가 큰맘 먹고 일어나,
용기 없는 동경 안에 갇혀만 있던 아득한 큰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그리하여
이방(異邦)의 구불구불한 골목들과 융합합니다.
저들과 나는 철저히 소외된 채
저들 골목의 고독과 내 골목의 고독이 부둥켜안습니다.
골목이 골목을 알아보면
들뜬 낯섦이 지복(至福)에 취하여 자꾸만 실언을 합니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여기가 천국이라고..
그러면, 천국이란 것의 은총이
기다렸다는 듯 "소외된 나"를 적시고,
날개 달린 외로움을 등에 붙여 줍니다
한 쌍의 슬픔과 망각이 양쪽에서 동시에 펄럭이는 날개입니다.
나로서는 일생에 한 번 겪기도 힘든 체험이지요.
덕분에, 그 순간
"내가 슬픔인 이유"를 알아 버렸습니다.
알아도 바로 잊히고 마는, 그 심오한 저주를요.
물론 기억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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