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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생명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3. 23. 04:49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생명의 서" 첫 연에서 청마는,
겉핥기 식 정돈에 집착하는 부실한 결벽증이
생의 표피에서 희로애락의 뾰루지를 다독일 뿐 그것들을 짜내려 진피를 헤집지는 못하는
소위 "천착하는 삶의 결여"를 초래하는 동안,
단정했던 내면은
길 잃은 듯한 불안과 초조가 야기하는 구토 증세를 시작으로
"지성이 끝내 붕괴 되는" 무력감을 절감하면서도
함께 무너지지 않고
시원으로부터 꿈틀대는 생명의 본류를 기어이 부여잡아
위기를 극복하고야 마는,
초인의 웅건한 의지를 또 한 번 되새김하고 있다.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1연의 아라비아 사막을 구체적이고 실감 나게 묘사한 연이다.
우유부단을 세련으로 위장한 어정쩡한 추상의 세계에서 완전히 탈피하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뚜렷한 명암과 명쾌한 논리가 작열하는 생경한 공간.
고통다운 고통이 활보하는, 고차원 본능의 이글대는 인상계.
이곳이야말로 초인이 신인(神人)다워지고 신이 초인처럼 고뇌하는 확률적 운명계요, 절대의 다차원계다.
천국과 지옥의 번식이 허용되지 않는 곳,
시간적 나열이 의미를 상실하는 무(無) 구분의 영역이자, 날 선 경직과 날카로운 분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둥글게 어울리는 "뜨거운 원형의 왕국"인 것이다.
코앞이면서 동시에 억만 광년 떨어진 이상향.
초인이고자 하는 갈망은
여기에서 새어 나오는 영원의 빛 한 조각 놓치지 않는다.
희미하나 강렬한 그것을 받으며 그리움의 주기는 진폭을 높여가고, 비례하여 초인의 현현은 농밀해진다.
평생 동안 아니 평생을 넘어 그네를 타야 하는,
끝없이 계속 생명의 진자 운동을 해야 하는 운명을
초인은 결코 형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투명한 의식으로 근원을 꿰뚫고 있는 그에게
겹가치의 계층화는 무의미한 후속 작업이며, 따라서,
그네가 하늘에 닿아도, 천국을 그리는 불필요한 동작 없이 바로 고개 돌려 애정의 시선을 땅에 꽂을 수 있다.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땅을 향해 돌진하여, 흠뻑 적신 태양을 대지 위에 남김없이 뿌려 준다.
이 얼마나 행복한 시지프스인가.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은 고달픈 "초인의 행로",
벗어난다고 벗어나는 게 아닌 숨 막히는 숙명을 일찍이 예감한 청마는
흥분과 두려움이 뒤범벅되어 차가운 겨울바다 앞에 섰다.
저 멀리 회색빛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꿈쩍도 않는 정적의 경계선을 지그시 보며 시인은 절규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시 "그리움"에서..)
다시 "생명의 서"로 돌아와 보면,
불같이 솟는 (본원적 생명 지향의) 열정을 가눌 수 없었던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당위와,
막연한 염원을 넘어선 단호한 의지를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초인은, 육화한 "생명에의 의지"이므로, 그의 인식 언저리에 더 이상 생명 운운하는 사상은 없다.
초인이 곧 원시의 본능이요 "시원(始原)적 생동"의 화신인 때문이다.
초인이란 존재는
역사의 유아기를 되풀이하는 인류가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종교적 신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신성한)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또한,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이길 원하나 인간에 머물지 않고 비상하는 "고통의 정수",
인간 가능성의 무한대 확장판이자 되돌아 인류의 프로토타입,
전지전능의 온화한 횡포를 짊어지고 끝없이 인내하는 "위대한 긍정"이다.
이러한 면에서 초인의 실존은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는" (청마의 1941년작 "바위"에서 인용)
바위와도 같다.
미당과 청마는 같은 생명파이지만, 청마가 언어에 의지를 담은 구어법을 중요시한 반면
미당은 언어의 미와 가락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당의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난 시들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화사"가 있다.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으며 악의 미를 추구한다"는 일반의 해석만 가지고 평가하기엔
더 큰 무언가를 품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수작이다.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배암"은 과연 악마의 화신이고 저주받을 혐오 덩어리인가.
종교적인 악의 상징으로부터 미학을 추출하려는 자는
유별난 미의 도착자인가 혹은 반인륜적 반항아인가.
뱀이 아름답다 함은, 본능의 꿈틀거리는 욕망에서 원초적 순수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완전무결했던 선이
태동하는 역사를 타고 위선과 위악으로의 요동치는 분열상을 보일 때,
생명 역학은 중력의 간섭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생명을 포획한 시간 위에 "활달한 상대성의 고혹적 정염"이 착색되는 시점도 이 무렵이다.
재앙과 같은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 없던 건강한 이원화의 발현기.
에덴의 생명들은 종류와 상관없이, 편견 없는 아름다움의 다양한 결정체였으리
미물에서부터 고차원 존재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분열이 극대화되는 이원화 고착기에는
모든 개체에게 있어,
생명의 윤기를 인지하는 감각도 쇠퇴할 뿐더러
고순도 아우라로 대변되는 이 윤기 자체가 줄어들게 되니,
서글픈 우주적 변천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인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번질거리는 배암의 긴 몸뚱이 알록달록 꽃대님같은" 그것을 징그러워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뱀은 그렇게 위악의 희생양이 되어 인간에게 갖은 수모를 당해오고 있으니,
그것의 입장에선 어지간히 원통한 일 아니겠는가.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이 부분을 읽고 혹 구약 창세기를 연상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감히 유일신 야훼를 공격하는 불경한 악의 통한을 느끼며 지레 놀라 전율하거나 분개하진 마시라.
여기서 푸른 하늘은
청마의 "깃발"에 등장하는 푸른 해원과 유사한 이미지로 생명의 창대한 본원을 의미한다.
뱀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사악한 존재로 낙인찍은 인간에게 그간 해온 보복을 멈추어야
역사의 저주가 풀리고 서로 물어뜯는 상극의 혈투도 막을 내린다는 것을.
어리석음을 극복한 선각은
그 대가로 지독한 고독을 영원히 벗 삼아야 한다.
황홀한 이 형벌을 스스로 획득한 이무기는
장구한 세월을 잡아먹은 이 기쁨이 원통하여 아가리를 쩌억 벌린다
외로운 용들이 우글거리는 본향을 향해..
핏기 없이 차가운, 대리석의 횡포에 쫓겨,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아나며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뜨거운 냉혈의 정신이여, 자연의 생기여,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두려움과 혐오를 피해
자연과의 친화력이 유독 강한 민족의 땅 조선의 두메산골까지 쫓겨 온 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열심히 밭을 가는 우리 순네의 고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구나.
송이송이 구슬땀을 치마로 닦아내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순네의 뜨거운 입김 안에는 풋풋한 생명이 녹아 있다.
순간 뱀의 눈이 반짝인다. 원시의 생명을 묻혀 날름거리는 배암의 혓바닥이 붉게 타오른다.
영겁을 걸쳐 반복 재생되는 신화의 장면이다.
진화하는 생동을 생명에 공급하여 온 거룩한 태반,
원시 심해의 그 처연한 포용이
순박한 순네의 치마 속에서 포근하게 잠들어 있다.
"스며라, 배암! 어서 스며라, 배암!"
그리고 깨워라 준비된 상승을.
동질성 회복을 위해..
천진한 순네는 배암이 다가와도 놀라지 않는다.
활력 넘치는 사내가 등 뒤로 덮쳐도 소스라치기는커녕 우리 순네는 깔깔 웃으며 즐거워한다.
옆마을 친한 벗이 놀러 온 듯, 장에 다녀온 어미를 맞이하듯, 그녀는 친근하게 반길 따름이다.
생의 강렬한 욕망이
죽음 곁의 무지한 욕정을 조련할 줄 아는,
초탈한 생명들 간에
상생 조화의 영물들 간에
새삼 두려울 것 무에 있으리.
미당과 청마는 추구하고 염원하였다.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의 주기마다 최후이자 최초인 무수한 초인들이 등장함에,
본인들도 그들을 도와 혹은 그들이 되어,
"무한한 반복이며 동시에 진화인 사이클"들의 영원한 동력인 근원 생명으로
도약하고 합일하기를.
생의 "그네"를 타고
가장 높은 공중에 애수의 "깃발"로 달려
우주의 장중한 심연을 향해 펄럭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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