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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송자들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9. 16:41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2)
저는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현재 심신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서 그럴 거라는 단순 예측 이상으로 악몽을 여러 번 자주 꾸는 것 같아요. 불면증이 심해진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악몽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룻밤 새 겪는 악몽의 횟수 길이 강도 등도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악몽이 잦다는 건 어쨌든 그만큼 잠을 잔다는 뜻 아니냐 하시겠지만 시달리다가 금방 깨기 때문에 안 잔만 못한 상황의 연속입니다. 이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불면증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건 마치 잠 못 이루는 나에게 무언가가 억지로 악몽을 꾸이려고 잠깐씩 잠을 주입하는 형국이랄까요.
누님을 접하면서 그나마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 하루 한 번은 괴롭힌다는 점에선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 기억에 없지만 망각이 축복일 정도로 온갖 말도 안 되는 해괴 망칙한 내용의 꿈들입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뇌리에 선명히 박히는 것들이 간혹 끼어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 잊고 싶은 것들이지요. 다른 자잘한 악몽들은 이것들을 기억 속에 안착시키기 위한 시운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어떠한 부류의 인간인지 그리고 어떻게 무슨 이유로 태어난 것인지를 집요하게 주지시키려는 시도로써 악몽이 기획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인간이 아닌 미지의 어떤 것들이 의도적으로 저를 노리는 것 같았어요.
한데 그것들의 목적이 저를 해함에 있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정신이 피폐해질 지경이긴 합니다만 교묘하게 수위를 조절하여 완전히 미치는 데까진 이르지 않게 하는군요. 누님의 방송이 제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그것들이 노리는 악몽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들은 별다른 방어적 조처를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았고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망상하며 과장된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제 마음은 되도 않는 음모론을 지었다 부쉈다 할만치 여유롭지 않습니다.
저 역시 과민함을 경계하며 꿈은 꿈일 뿐이다 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곤 했어요. 우선 저부터 살아야 하니까요. 이러한 저의 태도를 비웃기라도 하려는듯 그것들은 악몽들 속에서 점점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악몽이 만들어 놓은 괴기하고 비합리적인 스토리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더니, 점점 꿈의 산물들과는 비교되는 강렬한 위화감으로 제 앞에 서려 하더군요. 급기야 더 나아가 악몽과 현실을 모호하게 뭉개고 짜증 나는 가위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 가위의 중심에 서서 노골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며 본인들이 단순한 꿈속 환영이 아님을 시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그들 등장의 가장 완성된 패턴을 자랑이라도 하려는지 점령군처럼 당당하게 제 현실 안으로 입성하더군요.
저와의 조우를 무척이나 원했다는 분위기가 팍팍 풍겨오는데 아닌 척 근엄한 척하는 그들이 무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워 보였습니다.
티브이에서 자주 봄직한 모습이 길게 설명할 것 없이 누가 봐도 딱 외계인이더군요. 그러나 이 또한 트릭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꿈 조작의 달인인 그들인데 이 정도 기만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서 공통된 두려움의 대상을 골라 정교한 홀로그램으로 형상화했을지도 모르는 거고. 아니면 자신들의 임무를 대신해 줄 생체형 로봇이 보내어진 거라던가..
이 미터도 넘어 보이는 홀쭉한 키다리들 세 명이 하나같이 검은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침대 앞에 서 있는데 고전영화 노스페라투의 대머리 드라큘라처럼 무시무시해 보이긴 하더군요. 그러나 저를 막 어찌하려는 위압적 모션은 취하지 않고 오히려 놀란 저를 안심시키려는 듯 한동안 가만히 서서 내려보기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그날도 여지없이 악몽을 꾸고 있다가 화면이 강제 종료되듯이 스르르 눈이 떠졌던 것 같습니다. 그간 악몽에 시달려 알 수 없는 공포로 떨어야 했던 터라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전등은 악착같이 켜놓았는데, 그들이 나타났을 땐 방 안 불이 꺼져 있었어요. 저 포스 쩌는 깡마른 거구가 살포시 스위치를 내리기라도 한 걸까요? 그 모습을 잠시 상상하니 심각한 와중에도 피식하고 입꼬리가 올라가지더군요.
근데 좀 신기했던 건 저도 막 눈을 뜬 직후라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전인데 그들 머리 위만 희미한 조명이 내려온 것처럼 후광이 감싸고 있어서 그들을 식별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단 겁니다. 말하고 보니 이것도 우습네요. 그들의 등장 자체가 말문이 막히는 거대한 신기함인데 그 속에서 깨알 같은 신기함을 또 발견하고 정신이 팔릴 수 있었다는 게 말이죠.
외계인인지 귀신인지 정체가 불투명한 것들이지만 중요한 건 저들이 영화라는 상념을 흉기로 저를 강제하게 되는 범인이라는 점.
이를 입증하는 장광설이 침묵을 깨고 이들에게서 쏟아지게 되는데 불안한 적막이 걷혀 긴장이 해소되는 순기능은 잠시뿐이고 꽤나 큰 볼륨으로 머릿속을 휘저어 놓는 일명 텔레파시란 것이 저를 다시 불안하게 하더군요.
이토록 기분 나쁜 경험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들의 음침한 웅얼거림이 우리말로 증폭되어 제멋대로 뇌를 쑤시는데 이에 적응하느라 한참을 애먹을 정도였으니까요. 텔레파시를 보내는 상대의 영적 수준이 받는 쪽의 심리적 편안함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암만 생각해도 이들의 수준은 그다지 높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특화된 중요한 존재들이며 저를 오래전부터 관찰해오다 때가 되어 내려온 거라 합니다. 인간들에게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우주의 비밀로 저를 인도하여 의식의 확장을 도모하는, 제 맞춤형 안내자라는 겁니다.
부담은 질색인 제가 찬성하지 않을 걸 그들은 알면서도 밀어붙이려는 심산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뭐나 된다고 그런 허황한 소리로 미혹하려는 거냐 외계인이면 외계인답게 그냥 납치해서 생체 실험을 하던지 맘대로 해라 난 지금 죽어도 벌이라 여기고 달게 받을 무서울 것 없는 놈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가락은 있어 이런 식으로 같잖은 호기를 부려봤지만 예상했듯 저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앙탈이었습니다.
손짓까지 동원하며 저는 나름 열변을 토하였으나 그건 제 생각일 뿐이고 남이 그 모습을 봤다면 가위가 덜 풀린 사람이 어버버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문외한인 제가 텔레파시를 주도적으로 활용했을 린 없고 저들이 모종의 조치를 취하여 제 생각이나 의견을 강제로 뽑아내는 거친 정신감응을 행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주제에 자신들은 그따위 수준 떨어지는 졸렬한 외계인 무리가 아니라 주장하며 본인들을 믿으라고 강요하더군요.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저런 모양새로 나타났으면서 말이지요.
너희들이 타고 왔을 모선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면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려고 이리 안달인 것이냐 했더니 말조심하고 자신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네요. 추후 이 이상의 무례한 언사는 용납 않고 제재를 가하겠다는 으름장과 함께 말입니다. 신경이 곤두설 상황은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이런 적반하장이라니요. 위협도 서슴지 않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걸로 보아 더더욱 수준을 알겠더군요. 그러나 뭐 어쩌겠어요. 힘없는 제가 깨갱 하는 수밖에요.
권위가 몸에 밴 대단한 나리들이 제 번민을 제압하고 드디어 본론으로 진입하는 한 마디를 꺼냈습니다. 육신은 침상을 벗어날 필요 없고 영혼만 데려간다는 겁니다. 헉 이게 무슨 황당한 얘깁니까. 저를 죽이겠단 본색을 세련되게 드러내고 있는 건가요?
죽음도 불사한다던 패기는 어디 갔냐 비꼬며 그들이 이어간 얘긴즉슨 생명체의 영혼은 고등할 수록 여러 겹으로 구성되고 인간인 저 또한 그러한데, 의식 확장에 필수적인 (고차원과 연동하는) 부분들만 이동하고 나머지는 육신과 함께 여기 머무니, 복귀가 가능한지 여부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습니다. 걱정은 접어두고 본인들을 무조건 따르라는 말이었지요.
이런 감언이설이 통할만치 제가 순진하진 않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태세 전환은 필수였습니다. 방향을 정해놓고 짐승 몰듯 다그치는 그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건 질문뿐이었습니다. 꼭 답변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알겠어요 맘대로 하시고 잘 돌려만 놔주세요. 이건 일종의 신비 체험이겠죠? 저를 영적인 세상으로 데려가려는 모양이네요 그렇죠? 떨리지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껏 저를 숨 막히게 옭아맨 것들 중 권태도 큰 몫을 하였는데 이놈은 당분간 잠잠해질 듯하니 좋네요. 자아 그럼 제가 갈 곳은 어디인가요? 우선 힌트라도 주셔야 막연한 불안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는지요..
4차원의 영역이지. 꿈이란 이 영역에 둘러쳐진 울타리에 불과해. 꿈 역시도 무시 못 할 세상을 품고는 있지만 그것은 우주의 실체로 연결되는 관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
4차원은 네가 상상하는 모든 게 그리고 네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든 게 펼쳐져 있는 세상들이 끝없이 도열하고 분열하고 융합하고 구성되고 명멸하는 구역이지.
세계들이 생물처럼 살아 꿈틀대며 서로 치열하게 분투하는 곳,
태초 이전부터 무한의 말씀들로부터 창조되는 무한의 시공간들이 거품처럼 엉겨 붙어 서로를 파고드는 곳,
신들의 약육강식이 허용되고 미화되는 살벌한 성역이지.
유연한 섭리가 최고조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온갖 마성들을 포용하는 소도.
상념이 세상을 낳고 세상이 상념을 낳는 가역반응이 우주들의 상념 평형을 가열차게 유지하는 공역.
무의식의 집단 저장고이자 영감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그곳으로 가자 지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