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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이런 삶 1
    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12. 30. 02:03

     
     

     

     


     
     
     
     
     
     
     
     
     
     
     
     
     
     

    민아,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돼?



    그러세요.



    내 처지가 이 모양이라 사실 이런 말 하기 좀 쑥스러운데..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 말이다, 언제까지 할 생각이니?



    그건 왜요?



    민아와는 맞지 않는 일인 것 같아서..   
    물론 개인사정이야 있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게 어떨까 싶네.



    오빠.
    내가 다른 남자들 술 시중, 몸 시중드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죠?



    맞아, 첫째 이유는 그거고.. 또..
    착하고 어린 아가씨가 타락한 사회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지금, 보수적인 어르신네 흉내내고 있는 게 아냐. 널 정말 아끼니까 진심에서 우러나와 하는 얘기야.
    거기 나간 지 며칠 안 됐다 하니 지금 그만둬도 늦진 않을 것 같은데?

    날 위해서라도 이제 거길 나오지 않으련?



    그 말 들으니  오빠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게 실감나네요.
    알겠어요. 그렇잖아도 그곳에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어요.
    이제 천천히 갚아 나가도 주위에서 크게 닦달하진 않으니 돈 욕심에 무리하지 않고 보수가 적더라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거리를 찾아봐야겠어요.
    앞으로 한 남자를 떳떳하게 사랑하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죠? 뭐 꼭 상준 씨 같은 유부남 오빠가 아니더라도요, 후훗..



    떳떳한 사랑이 완성되려면, 너의 직업과 네 연애 상대가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 이건가?
    말 되는군. 씁쓸하지만 인정 안 할 수가 없네.



    실망이야! 그리 쉽게 인정하라고 한 얘긴 아닌데.. 오빠 사랑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어?



    아니 그게..



    하하, 내 정색 연기에 또 속네. 하여튼 귀여운 오빠라니까..



    너 정말..? 허허..



    진짜인지 연기인지 헷갈려 한다면 오빤 바보..
    연기였음 좋겠어? 진짜였음 좋겠어?



    오빠 그만 놀리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하시지!?



    옛썰!!

    당장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단기간 목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몸으로 부딪쳐 보니
    막연히 상상했던 거와는 너무나 다른 거 있죠.
    창녀와 다름없는 일인 줄은 짐작도 못 했었는데..
     


    자꾸 개인 신상을 캐는 것 같아 미안한데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민아 부모님은 여기 안 계시나?



    저희 집은 원래 원주에 있었어요.
    저만, 학교 때문에 여기 나와 있던 거고요.



    네가 돈을 벌어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안 좋은 게로구나. 집안의 빚을 네가 혼자 갚아야 한단 말이지?



    얘기하자면 복잡하지만..
    오빠한테만은 털어놓고 싶어요.

     
     
     
     
     
     
     
     
     
     
     
     
     
     
     
     
     
     
    민아가 고백한 내용들을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녀의 아버지는 원주에서 소규모 개인 사업을 경영하는 자영업자였다.
    민아는 그의 외동딸인데,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친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일 년 뒤에 아버지는 재혼을 하게 된다.

    흔히들 그러하듯, 민아도 계모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데 서툴고 미숙하였다.
    이는, 친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점과  한창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던 시절이었다는 것 그리고 계모 또한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로서 그녀를 살갑게 대하여 줌에 있어 꽤나 인색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계모가 들어온 후 민아에겐 배다른 남동생이 둘씩이나 생겼고, 이로써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그녀는,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소위 탈선이라 불리는 범주의 위태로운 생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원체 얌전하고 내성적이던 민아에게는, 다소 껄렁한 애들의 일상적인 생활도

    충분히 탈선적인 양상으로 비칠 수 있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큰맘 먹고 행한 탈선이란 것도 고작,

    학업에 대한 소홀이거나 조금 더 나아가 이성교제 정도에 국한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서 알게 된 대학생 오빠를 애틋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정서적 안정과

    마음의 위안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녀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그의 존재야말로

    아버지의 사랑을 새로 얻은 듯한 감동 그 자체였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던 그 대학생도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민아를 좋아하였으나,

    조금의 경계심도 없이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달라붙는 그녀 앞에서 그만, 춘정 발동기의 호르몬 왕성한 늑대 본능에

    굴복하고 만다.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독실한 신심의 살짝 흐트러진 틈을 마귀의 삿된 기운이 잽싸게 파고들어

    그녀를 육체적으로 농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민아의 순정을 최후까지 기만한 그였으니 (진짜 사랑이라고 믿은 점에서 어찌 보면 민아 못지않게 순진했던 그였다) 부모의 주선으로 소개받은 여자와 어쩔 수 없이 약혼식까지 올리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고 관계를 정리하기는커녕, 우유부단을 핑계로 민아에 대한 미련를 놓지 못하고 계속 만나는

    이율배반적 욕망에 탐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두 여자에게 다 상처를 주고 본인도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행보였지만 그럼에도, 그가

    사랑이라 확신하는 잘못된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한 데에는, 그보다 한술 더 뜬 감상적 사랑의 도피자로서

    헛된 사랑을 설파하는 그의 무책임한 감언이설에 중독되어 그를 현실에 빼앗기지 않으려 한

    민아의 집착도 분명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육체를 갈구하는 정욕 위주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민아의 몸에 마침내 싫증을 느낀 그 뻔뻔한 대학생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녀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그제야,

    미래의 일등(?) 신붓감으로는 그녀가 여러모로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세속적 인식에 도달하여,

    폭탄선언에 가까운 결단을 실토랍시고 늘어놓게 된다.
    그나마 때가 덜 묻은 대학생인지라 영악한 잔인함의 끝판을 달리지는 않았고, 나름대로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우유부단함을 무기 삼아, 고해성사하듯 민아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모두 털어놔 버리고 만 것이다.


    상대야 비참해지든 말든 본인 후련하자고 내깔기는 철없는 이기심의 후안무치한 발로였으며

    어린 그녀에겐 이것이 더 - 고통을 안겨주는 - 잔인한 짓이었다.




    버림받은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민아는, 끝내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실천에 옮겼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손목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에..)

    영화의 장면을 따라 한 "맹랑하지만 서툰" 시도여서 불행 중 다행으로 삶의 끈을 다시 잡게는 되었으나,

    딸의 고통을 만분지 일이라도 이해해 주고 그녀 편에서 위안이 돼 주기보단

    철없는 행동이라며 심하게 나무라기만 하는 아버지와, 끝내 병원으로 찾아와 주지 않은 "첫사랑의 남자"에게서,

    현실의 냉혹함과 인생의 쓴맛을 너무 일찍 뼈저리게 체험하고 만 민아였다.

     



    어린 나이에 이토록 무겁고 모진 일을 겪어야 했던 그녀는, 세상을 향하던 마음의 문을 닫고

    제 딴에는 지극히 냉소적으로 변하였으며, 사춘기를 미련 없이 떠나보냄과 아울러 그간의 잡다한 방황도 폐기처분한 후

    힘겨운 재수를 거쳐 당당하게 대학생이 되었다.

    자기 힘으로 최선을 다하여 이룬 작은 성과에  잠시나마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던 민아.
    그러나 이마저도 시기를 하는 건지 속 좁은 불행은 다시 찾아왔으니..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로 쓰러지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실패로 마무리되었고, 그에게서

    등록금과 생활비가 나오기는커녕 채권자들의 성화에 집까지 거덜 날 위기를 맞게 된다.

    그렇게 집안이 풍비박산으로 치닫던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석차 홍주를 다녀온 그녀에게

    불행을 굳히는 날벼락 같은 사건이 들이닥치고 말았다.

     

    집으로 들어오자 가족들은 간데없고, 가재들마다 - 드라마에나 등장하는 - 빨간색 압류 딱지가 떡하니 붙여져 있었으며,

    성난 채권자들만 집 안팎을 점령하고는 아버지에 대한 일장 성토에 여념이 없었다.



    외부 압력에 의해 사태가 억지로 수습될 무렵엔 아버지는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있었고,

    새엄마는 자기 새끼들만 챙겨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뒤였다.


    절망적 상황임은 분명하였으나 민아는 그 한복판에 휘말려 있다기보다 "주변에서 서성이는 관찰자가 되어

    카타르시스 비슷한 것을 느끼는" 묘한 감정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참담한 현실이었음에도 - 언제나 그녀에겐 어색한 존재였던 - 계모가 떠나가 버린 것이 우선 좋았고,

    하루아침에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걸로도 모자라 사랑이라 믿었던 여자에게까지 버림받은 아버지한테

    "동질감에서 기인한 소중한 연민"을 가지게 되어, 민아에게 있어선

    역설적 의미에서 "삶이 희망과 구원으로 충만한" 시기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꿋꿋이 살아야 할 명분과, 인생을 건사해야 할 당위성이, 그녀의 눈앞에 가시화하여 나타났다고나 할까.




    민아는 일단, 학교가 있는 홍주로 내려와 열 일 제쳐 두고 일자리부터 찾아 나섰다.

    최대한 빨리 빚을 갚으라는 독촉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향하고 있기도 했거니와, 누구처럼 상황을 회피하고 도망치기는

    싫어서였다.

    원래의 성격대로라면 망연자실하여 모든 걸 포기하거나 감당하기 벅차 어디론가 숨어 버리기 십상이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초라해진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불타오르는 민아였다.

     

    긴박한 위기의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체험을 그녀 또한 하게 된 것인데

    긍정적 의미로서의 태세 전환의 마음가짐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는 어리디 어린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쉽게 구해지고 빠른 시일 내에 비교적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소위 고수익 아르바이트란 것이 뻔하여, 민아 역시

    알음알음으로 들은 정보를 따라 물장사 계통의 서비스 직종을 집중적으로 알아보았고 그 결과

    홍주에서 멀지 않은 도시의 작은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빼어난 미모가 아니라서 오히려 잘 된 케이스랄까..



    가세가 슬슬 기울어 가던 시점에 아버지로부터 간신히 받아 낸 한 학기 등록금이 그녀가 지닌 전부였으나

    그것 덕분에 입학 취소를 면하였고, 그것 덕분에 - 은밀한 알바를 병행하면서 - 겨우 낙제를 모면하는 수준이나마

    1학기를 이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휴학 후 본격적으로

    처절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일 년의 휴학 기간 동안 본인의 피땀 어린 노력과 인내와 희생을 갈아 넣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부채를 조기에 상환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바치겠단 각오였기에

    그까짓 몸뚱이쯤 함부로 굴린들 대수겠는가 하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리라.

    남들 보기에 보잘것없는 지방 전문대이긴 해도 여길 졸업해야 안정된 직업을 얻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지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야만 몰락한 집안을 장기적으로 일으킬 수 있으리란 걸

    모를 리 없는 민아였으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더운밥 찬밥을 가릴 입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 년여의 길다면 긴 시간을 독한 마음으로 버티면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고만고만한 난관들을 극복해 가며)

    오로지 돈을 모으는 데에만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런 류의 생활에 적응하고 말고는 - 적성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임을

    손수 증명해 가면서 말이다.

     

    누가 보고 "얌전한 고양이가 어떻다는 둥" 떠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마치 화류계에 뼈를 묻을 여자처럼 아주 열심히 적극성을 띠며 자신의 육신을 그 속에 내던지다시피 하였다.



    다만 마지막 자존심인 양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으므로)

    속칭 현장에서 영업을 뛰는 동안은 영혼을 따로 분리하여, 일차원적 감정과 기본적 생존 욕구에만 충실한 채

    흡사 좀비와도 같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 식으로라도 민아는 자신의 때묻지 않은 (아직은 때묻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은) 영혼을 지키고 싶었고

    순진한 내면을 있는 힘껏 간직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식적 노력이 그다지 소용없는 일이란 걸 그녀의 무의식이 일찌감치 인정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틈만 나면 목을 조르는" 징그러운 환경에 맞서 그렇듯 고군분투한 대가로

    민아는 육 개월이 지났을 즈음 어느 정도 신용을 회복하였고 숨통이 트일 만큼의 상환도 기어이 이뤄내게 된다.

    물론 완전한 청산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어 까마득하지만 말이다.



    첫 업소는 운 좋게도 비교적 마일드한 분위기였고, 이 얼떨떨하기만 한 생초보 아가씨에게

    웬만해선 다들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신경 써 주는 듯하여 나름대로 견딜 만하였다. 그러나

    막 휴학을 하고 마담의 추천을 받아 페이가 더 센 곳으로 옮긴 이후부터

    "괴로움이 증폭될 수 있는 고비"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영역에서 기생하는 군상이란 게 대동소이 그렇고 그런 딱 그 수준에 지나지 않음을 어차피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새삼 배신감으로 치를 떨거나 인간에 대한 환멸을 절감하거나 하진 않았다.

    인간에 대한 특히 속물들에 대한 믿음은 버린 지 오래였기도 하고..

    단지,

    이른바 닳고 닳은 동료 선배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호되게 혹은 암암리에 당하고도 속앓이만 하고 마는

    만성 무기력증이 의도치 않게 그녀를 지배하는 것 같아 민아는 약간 짜증 날 뿐이었다.



    "초짜 딱지를 떼고 명실상부 경력직이 되면 으레 겪어내야 하는" 통과 의례라기에도 낯간지러운 작태에

    고스란히 직면하면서 그녀는

    세상이 만만치 않고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내면 깊숙이 젖어드는) 진한 슬픔과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적당히 떨어져 관찰하듯.

    웬만치 이골이 난 절망보다 훨씬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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