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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도플갱어
    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5. 24. 14:48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15)

     

     

     

     

     

     

    그것은 텔레파시가 아니었습니다.

    성대가 온전할 리 없을 텐데, 다른 희생자들의 웅얼거림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소리였습니다.

    모든 방향으로 당겨져 찢어질듯 확장된 그래서 닫히지도 않는 입술과 구강 안에서,

    옆으로 퍼져 가로로 길어진 혀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말을 해도 폭포수처럼 침 같은 게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의 밑에는 고무대야가 놓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래 끓는 밭은기침과 고르지 않은 호흡에 시달리면서도 어린 지수가 (그리고 저도) 불편함 없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습니다.

    배려가 습관화 된 교양인이었음이 짐작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얘야 너는 잠깐 나가 있으려무나.

    이 소년과 둘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저는 나가서 상준이 형을 돕겠습니다.

    도련님 그럼 이분과 대화 나누고 계세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인 사태 속에서

    비록 겉모양은 어린 아이일지라도 진짜 아저씨라 여기며 위안을 삼으려 했던 지수에게, 그는 여전히 기대고픈 언덕이었고 이곳을 무사히 탈출할 때까지 항상 곁에 두고픈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지수의 심경이 이럴진대, 잠시지만 자리를 비우겠다 하니 분리불안과 비슷한 심리적 불안이 엄습하면서

    정신이 아뜩해지는 느낌에 영락없이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드코어 S.F. 호러물에나 등장할 혐오스러운 존재 앞에 혼자 남겨 놓고 나간다 하니, 배신감마저 들 수밖에요.

     

     

     

    지수야 내가 두렵니?

    제 이름을 아세요?

    나는 너를 잘 알 수밖에 없는 존재란다.

     

    그리고, 이 불쌍한 생명체가 나의 드림바디이므로

    난 이분에게 깃들어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드림바디가 뭐예요?

    얘기가 길어지겠구나.

     

    이 안의 공간을 "포켓 시공화"해서 밖의 사건과는 별개의 독립된 "꿈 파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다.

    일시적이긴 하나 그리 하면 공포로 물든 사건 소용돌이 즉 악몽 트랩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리라.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루어졌노라.

    이제 맘 편히 나의 이야기를 들으렴.

    지수 너 또한 드림바디이니

    지금 너와 결합하고 있는 네 주인과 얘기하는 것이 격에도 맞고 동등한 입장의 대화가 될 수 있겠지.

     

    직계든 방계든 중요치 않다.

    "지수가 나오는 꿈"에서 우린 모두 주인이다. 너와 난 공히 꿈주로서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곳 드림바디에 입식된 "꿈주의 영"이여,

    자신의 상념에 오래 머물지 말고 이리로 나오라.

     

    꿈과 분리된 현명한 이여,

    이 아이의 입으로 당당하게 밝히거라 완전히 자각하고 있음을.

     

    내 상념계 분신들 가운데 하나인 이여, 지수여,

    그래도 된단다. 너와 내가 임하는 꿈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루시드 드림으로 전환되기에..

     

     

     

    당신은 저의 운송자인 마스터들과 동급이신가요?

     

    4차원의 구도자여, 그들이 너를 기어이 여기로 보내었구나.

    그들은 너의 조력자이자 조련사다.

    너는 그들을 믿지 않지만 그들에게 의존해야만 하겠지.

    확률적 인과론을 감안해도 너는 저들에게 고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검은 섭리의 음험함이 넌 마음에 안 들겠으나,

    그것을 통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이번 생의 네게 주어진 유일한 길인 만큼 선택의 여지는 없느니라.

    너에게 던져진 그들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조여들고, 널 노리고 준비한 그들의 덫이 점차 강력해지면,

    그때마다 빛의 존재들이 나타나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널 보호하고 격려하리니,

    넌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너의 길을 가면 되느니라.

    지금껏 그렇게 예까지 오지 않았느냐.

    앞으로도 그리하면 된단다. 충분히 그리 할 수 있으니 가능한, 불안한 상념은 거두어라.

     

    내가 여기 너와 함께 함이 널 편안케 하리라.

     

    4차원 평행계 영역에선 상위 차원의 화이트 마스터가 네게 임하였다면,

    같은 맥락에서 4차원 꿈계 영역은 나의 소관이니,

    악몽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이곳으로부터 널 지키기 위해 내가 친히 온 것이니라.

     

    말하자면 꿈속의 하립 님이시군요.

    하립이 누구더냐?

    평행계 시스템을 주관하시는, 이를테면 우주의 수호신 역할을 하시는, 우리 민족 계열의 슈퍼맨이라고나 할까요.

    음.. 훌륭하신 분을 만났구나.

    난 그 정도로 위대하진 않단다.

    그분이 만인의 평행우주를 관할하신다면 나는 지수 너의 꿈계 시스템만을 살필 뿐이란다.

    난 너의 "미래 자아"이기 때문이지.

    미래 자아요?

    당신이 저의 미래 모습이란 말씀인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이 마치 어렸을 적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듯하구나.

     

    당황할 필요 없다 얘야. 많이 닮긴 했지만 내가 네 직계 미래에서 왔다는 의미는 아니란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네 후생의 상념계 분신이라 하겠다.

    광대한 우주 너머에 더 광활한 "동시 공존"의 영역 초우주가 있음을 이제 잘 압니다.

    후생이 전생과 함께 지금 저를 방문하여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죠.

     

    장하도다.

    시나브로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오고 있음을 너의 그 말이 입증해 주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네 가정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근원이 내리는 (극히 드문) 인과율적 형벌이나 인과율적 사고를 제외하고

    분신들 간의 자발적 접촉 시도는 섭리적 차원에서 금기시되어 있느니라.

    이러한 행위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한 미래 문명이라면 스스로 원칙에 입각하여 그것을 엄격히 금할 것이고

    따라서,

    이들 미래인이 개입하여야만 시공 이동이 가능한 (시간 여행 기술 발현 이전의) 과거인들 역시

    당연하게 본인들의 미래로 갈 수 없음이니..

    어디에나 예외는 있듯이, 아무리 고차원적 존재일지라도 호기심이 유달리 강하고 다분히 충동적인 자들은 있게 마련.

    하나, 고도의 문명이 그런 성향들을 사전에 안 거르고 놔둘 리 없지.

    한데,

    이런 안전장치를 통과하고도 의도적 시도나 예기치 않은 사고는 아주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단다.

    그 이유는 상기 인과응보의 견지에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이고.

     

    어째서 다른 시간선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행동이 위험하단 말씀인지요?

    그것은 최고 근원의 소관이라 정확한 기작에 대해선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단다.

     

    도플갱어를 대면하면 심리적으로 붕괴하게 만드는 영적 장치가, 송과체 유전자에 심어져 있다는 것.

    우린 이 사실만 알고 있으면 돼.

    이러한 영적인 함정을 고차원 존재들은 "동시성 트랩"이라 일컬어 왔다네.

    그렇다면,

    지구상 곳곳에서 비공식적으로 보고 되고 있는 "도플갱어 출몰" 사건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들 또한 "현재의 평행계"에서 날아온 시간 여행자들일 가능성은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실체라기보다, 멀티 시공의 신비가 구현하는 일종의 홀로그램적 효과일 수 있단다.

     

    소프트한 꿈계처럼 꿈 파편들이 빈번하게 침투하여 하나의 사건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행계 역시, 드물긴 하지만

    평행함과 동시에 다중으로 중첩하고 있는 시스템 특성상 4차원의 조화가 작용하여

    평행계에서 평행계로의 투사가 이뤄지기도 하지.

     

    말하자면,

    다른 평행계의 배경과 주인공이 "닮은꼴인 이웃 평행계"에 일시적으로 비치는 거야. 이는,

    현실의 일치율이 매우 높은 "유사 현실계" 간에 주로 일어나는 현상이란다.

    즉,

    양쪽에서 함께 서로가 서로를 목격하는 이른바 상대성 동시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실체는 상상도 못하는 무한의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바짝 다가선

    "이들의 영상" 사이에도 동시성 트랩은 예외 없이 엄중하게 작동한다는 것.

    대리전의 양상이라고나 할까.

    실체들 간의 대면과 동일한 "도플갱어 효과"라는 점이 신기하고 흥미롭지.

     

     

    그러므로 이런 현상에 우린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심하려 하는 주체의 의지가 최소한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의도적 시간 여행과 다르게,

    이것은 마치 자연 발화와 같아서 마음의 준비 없이 당하기 쉬운 치명적 함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업보에 의해 그리 당해야 할 운명이라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정교하게 설계된 확률적 인과율의 덫은 의지와 노력이라는 변수를 무시하지 않기에

    적어도 주의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단다.

    우리와 같은 존재의 배후 개입으로 만들어지는 암시, 징조, 선몽, 직감 등을 통해서 말이다.

     

    제가 여기까지 오면서 동시성 트랩에 걸려들지 않은 건 육신을 놔두고 와서일까요.

    그래 맞아.

    너의 안내자들이 네 영혼의 일부만을 취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들의 기술은 널 온전히 옮겨 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하였음에도 말이지.

    이렇게 너의 경우처럼

    영적인 이동은 도플갱어를 제약 없이 만나게 하고 나아가 그의 안에서 영혼 공생까지 가능하게 한단다.

    그렇다면 꿈속에서는 도플갱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요?

     

    아까도 잠깐 언급했듯이, 꿈계는 평행계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시스템 성격에 있어 너무나 이질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네.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바로 드림바디라는 개념이지.

    이는 어쩌면 - 꿈계가 평행계의 아류에 불과함을 나타내는 - 가장 큰 차이점인데,

    드림바디가 평행계 분신들의 혼이 깃든 분신 즉 2차 분신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네.

    "영육이 하나 된 3차원적 완전체"가 아니므로

    2차 분신끼리는 대면하여도 동시성 트랩의 대미지를 받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드림바디는 한 가지 캐릭터에 고착하지 않고 변화무쌍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상념 플랫폼과 같은 존재.

    그것은

    무한 꿈주들의 드림바디들이 중첩할 수 있으며, 중음의 유령들이 갇히거나 침투할 수 있는 거푸집.

    워낙 불안정한 "사념체들의 집합소"라

    동시성 트랩이 굳이 작용하지 않아도 드림바디 안에서는 의식의 붕괴가 수시로 일어나기에,

    이러한 함정이 사실상 의미 없다 보는 게 맞느니라.

     

    알겠습니다.

    이제 당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저의 미래자아라 하셨는데 얼마나 먼 미래에서 오셨는지요..

    지구인이 맞긴 한가요?

    지수야, 너와 나 사이에, 시간의 길고 짧음을 논하지는 말자꾸나.

    우린 시공을 초월하는 초우주적 존재가 되어 있으니..

    난 아마 네 첫 번째 후생은 아니리라.

    너 이후로 얼마나 많은 윤회가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고로,

    각 후생들의 무수한 평행계가 이루는 입체적 "시공 격자망"에서,

    나의 좌표가 어디쯤 위치하는지도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네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분명 "사실"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혼돈의 꿈속에서 말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느냐?

    알 것 같습니다.

    당신과 내가 꿈을 자각하는 상태에 진입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내가 널 자각몽으로 이끌었도다.

    내 정체에 관한 힌트가 나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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