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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장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5. 1. 12:24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14)
막사 내부 사정은 더욱 말이 아니었습니다.
외부에서 본 비참한 광경이 막사 안의 벽과 천장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합체된 "이상 생명체"들이 미약하게나마 여전히 꿈틀대었고,
머리 부위가 내부로 향하고 있는 형체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본래의 육성을 상실한 채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높낮이가 없는 일정하고 메마른 톤들이 흡사 사물 간의 마찰에 의해 생성되는 무미건조한 소리 같았으나
변형 전의 성격들을 반영한 듯 크거나 작은 내지는 빠르거나 느린
다양한 패턴으로 끊김 없이 이어지며 실내를 가득 메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에게는 당장 귀를 막고 싶게 만드는 (충분히 공포를 조장하는) 기분 나쁜 소음이었지만,
두 소년을 비롯한 이곳 동료들에게는 - 익숙해져 불편함을 모르는 - 화이트 노이즈에 불과한 듯 보였습니다.
이마저도
융합 양상의 치명도라던가 물화 진행 속도의 차이에 기인하여 상대적으로 기력이 좀 남아 있는 개체여야 가능한
감정 어필 현상이고, 생명의 진액이 고갈되어 감성 소멸 수순의 끝자락을 밟고 있는 개체에겐
이 보잘것없는 어필 방식마저 이미 물 건너간 사치일 따름입니다.
잠이 든 경우도 그러하지만,
물화가 완성되어 미동 없이 굳어 있는 사체, 또는
머리를 포함한 전신이 절반에 가까운 세로로 쪼개지듯 나뉘어 박혀 있는 등 (아마 순간 이동 완료 즉시 목숨을 잃었으리라..) 각양각색의 치명적 재조합이 낳은 희생물들 주변에선
역시나 괴괴한 침묵만이 맴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막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저들의 웅얼거림만은 아니었습니다.
시취가 나지 않아 한시름 놓은 줄 알았는데
불결한 몸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 같은 게 이내 지수의 코를 자극하였습니다.
줄곧 시선을 사로잡던 저들의 강렬한 형상에 가까스로 익숙해지자
생각지도 못한 후각적 대미지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엉성하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내무반(?) 안에 진동하는 그것은
평소 깔끔 떠는 지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대형 막사에 걸맞게 길게 놓여 나름 규모 있어 보이는 생활공간이었으나, 백 명을 수용하는 공간으로까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대적 협소함 때문에라도 - 위생을 신경 쓸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 이러한 냄새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긴 하였습니다.
이렇듯 돼지우리와도 같은 곳에
전국적으로 잡아들인 사람들을 몰아넣고, 정화 교육이란 명목으로 맘껏 후려 패면서
악랄한 정신 개조를 시도하려 한 모양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무리라면 당연히 할 법한 깡패 같은 짓이, 아니나 다를까
불과 이십여 년 전에 자행되어 불행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어이 장식하고 말았네요.
역사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피맺힌 원망과 한이 하늘을 찌를 텐데,
사념이 휘몰아치는 4차원 폭풍 영역에 - 꿈계와 상념계 버블을 막론하고 - 극한의 비극이 전개되는 이런 세상들이
마구 증식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겠지요.
괴물의 잇단 공격으로 정상적인 동료들도 수십 명이 죽어나갔다 하니, 살아남은 개인들의 운신이야
비좁던 생존 공간에서 조금 수월해졌겠지만, 비통함과 맞바꾼 그 알량한 이점을 마음 편히 즐길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내무반 곳곳에 찌든 고약한 인(人)내에는
가버린 주인들이 남긴 허무와
남아 있는 주인들의 끝 모를 침울함이 한데 버무려져 눅진하게 배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는 군인들 지시하에 각자 맡은 방어지로 모두 나가 배치된 뒤였고
막사 안팎을 지키는 예닐곱 명 중 세 명만이 막사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노쇠한 병약자 위주로 선별해서 막사 경계를 맡긴 상황 같고
이들 가운데 전상준이 소위 조장 격인 듯합니다.
그는 아저씨와 함께 지수를 데리고 들어왔다가, 가짜 호수의 미세한 변화가 주는 위기 고조의 신호를 - 두 차례의 경험상 체득한 - 감각으로 알아챈 후, 막사 주위를 지키고 있는 동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다시 나갔습니다.
아저씨는 "그분"이라 칭한 존재에게 지수를 데려가기 전,
침상에 걸터앉아 볼품없는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두 사람부터 소개해 주었습니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좀처럼 가라앉히기 어려운 그들의 절망적 심정이, 초조함이 묻어난 손동작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한 명은 겉모습만 놓고 볼 때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으로 여겨졌으나,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무리라 한들 설마 일흔 살에 가까운 할아버지까지 갖은 구실을 붙여 잡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중년의 아저씨가 끌려와 모진 고초를 겪은 걸로도 모자라 이렇게 상상 초월의 무시무시한 결정타까지 한방 맞았으니
그만 하루아침에 백발노인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는지요.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체구가 바람만 살짝 불어도 쓰러질듯한데
저런 상태로 어찌 무지막지한 초자연적 괴물을 상대하겠다는 건지 참 애처롭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더욱 충격적인 외양으로 말문을 막히게 하였습니다.
이십 대의 젊은 청년이기는 하였으나 왼 팔이 팔꿈치 위까지 절단된 불구였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사고였는지 아직까지도 누런 붕대가 절단 부위에 칭칭 감겨 있었고
벌겋게 피로 물든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속적이고 위생적인 처치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란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정도면 거의 치명상 수준인데 덧나지 않은 채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인 것 같습니다.
백칠십이 넘지 않는 작은 체구여도 다부져 보여서 성한 몸이었다면 제 몫은 넉넉히 할 친구였겠는데
그렇다 해도 팔 하나로는 자기 하나 건사하기가 녹록지 않을 터이니
막강한 적에 대항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 판국에 하나 남은 손으로 쇠꼬챙이를 들 수밖에 없는 이 위급한 상황이, 그에겐 그저 야속하기만 할 것 같네요.
저 팔은.. 어쩌다가..
놈의 일차 기습 때 불행히도 이렇게 되었답니다.
대비도 못하고 모두가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악몽 같은 순간이었죠.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때라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 이 형은 지금껏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당시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큰 타격을 입고 넋이 나가 주저앉아 있을 때라 서로를 챙길 여유가 없었죠.
군의관도 없고 병원 같은 번듯한 시설도 당연히 없었어요. 처음 이리로 떨어진 것들 중에 아쉬우나마
위생병 두 명과 - 간단한 응급처치 공간이 딸린 - 현재의 2 막사가 포함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엇이든 군인 우선이어서
부상이 심하든 말든 우린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어요.
우리 중에도 천만다행 위생병 출신 예비역 아저씨가 계셔서 군인 눈치를 봐가며 간신히 이 형을 살려낸 것이죠.
그때 조금만 늦었어도 도련님은 오늘 이 형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동료들의 도움과 배려 그리고 무사하길 바라는 염원이 큰 힘이 되었겠지만
우선 형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시 일어서기는 어려웠겠죠.
얘가 쑥스럽게 왜 이래.
나 지금 너무 무서워서 떨고 있는 거 안 보여?
형 강한 사람인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없어. 그날도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서 싸우다 이리된 거잖아.
형 행동을 보고 겨우 용기 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믿어 형을!
오늘도 우리 잘해 보자고. 우리 대장님을 위해서라도 이 막사는 꼭 지켜내야 돼. 그러니 힘내자 형!
맞아. 우리의 정신적 지주를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어 영광이야.
잠시 깜빡하고 있던 걸 일깨워 줘서 고마워.
허허, 그놈 참 어른스럽네. (아저씨 미안 헤헤.)
크나큰 위기에 봉착해도 침착하게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위화감 충만한 문어체식 대화야
한두 번 듣는 일이 아니라 - 왜 매번 그런 식인지 메커니즘도 알고 해서 - 이골이 났지만서도,
열두 살 아이의 입에서 막상 저런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니 새삼 또 한 번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 또한 신기하고요.
지수의 경우도, 암만 "도련님" 호칭에 익숙해져 있기로서니
불과 몇 분 전에 만난 이 아이를 아저씨라고 기정사실화해 버리는 것 같군요. 역시 꿈속이라 가능한 현상이겠지요?
드림바디들은, 꿈의 허술한 디테일에 딴지를 걸기에는 한참 역부족인 듯합니다.
아주 충실한 자세로 역할극에만 푹 빠져 있네요.
이질감에 눈뜨고 꿈을 꿈으로 자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까요.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이 전개될수록 드림바디들의 태생적 한계만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곧 대면하게 될 - 이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 대장이란 양반은 그래도 좀 차원이 다를 것 같은 예감이 오니까,
꿈 감옥에 갇힌 이 답답함을 과연 풀어 줄지 일단 기대는 해 보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군대 막사답게 주택의 다용도실과 비슷한 개인정비 공간이 출입구 가까이 통로 끝 우측에 있었고
아저씨는 지수를 그리 안내합니다.
이 안에 계십니다.
그분이 개방된 위치가 아닌 여기 자리 잡으시게 된 것도 돌이켜 보면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군인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불필요한 시선에서 어느 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는 장소 아니겠습니까요.
하기야 그들이 눈여겨본다 한들 대장님의 진가를 알겠냐마는..
그들 눈엔 어차피 다 폐기 처분 대상으로만 보일 테니 말입니다.
차원 간 이동과 두 차례 대학살의 여파로 성한 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건물 내외부였지만
이 작은 공간은 예상과 달리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문과 마주하는 정면의 합판 벽면을 커다란 검은 천이 절반 이상 가린 채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뒤에 무언가가 있음을 증명하는 굴곡진 입체감이 불룩하게 부각되어 지수를 재차 긴장케 하였습니다.
그가 받는 압박감을 인지했는지 아저씨는 더 지체하지 않고 얼른 천을 들추었습니다.
참상을 미리 봐두어 심리적 면역력이 꽤 생겼으리라, 스스로 안심한 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략 짐작이 되어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여간해선 친숙해지기 힘든 비주얼에, 지수의 반응 역시
저들을 처음 목격했을 때와 동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십 대 중후반의 사내 얼굴이
일반적인 면적보다 대여섯 배는 넓게 퍼져 액자처럼 합판에 붙어 있었는데
마치 반죽을 둥글게 늘여 놓은 듯 납작하게 펴진 모양이었습니다.
신기한 건
피부뿐 아니라 눈코 입도 사방으로 함께 당겨져 각각 늘어날 대로 늘어난 것은 물론
서로가 멀찍이 흩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무슨 조선시대 대형 도깨비 탈 같은 게 벽에 걸려, 따로 노는 큼직한 눈알들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기겁하여 자빠질 노릇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흉물스럽게 변형된 얼굴 하나로도 요렇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
괴상한 몸체로 눈길이 옮겨 가는 데만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성인 몸집 대신 기괴하게 축소되고 비틀어진 뭉글뭉글한 살덩이에,
가늘고 길어 곤충류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팔다리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형상이랄까요.
이나마도
얼굴 아래 정위치 한 것이 아니라 -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목이 옆으로 구불구불 휘어져 멈춘 - 측면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언뜻 봤을 때
괴물화한 신체를 내부 칸막이인 베니어판이 가로 방향 종단면으로 절단하듯 통과해 버린 양상이었으나
그것은 착시였습니다.
합판이 절단할 리는 당연히 없고, 텔레포트 과정에서 발생한 양자 재조합 상의 복잡다단한 에러로 인해
생체 변이와 무기물 융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결과겠지요.
천으로 덮어도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점이 있어서 발각의 위험은 약간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억지로 찾아낸 상기 유리한 점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절망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 모습을 보고 비관적이지 않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이 정도면, 밖에 펼쳐진 사례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동 즉시 목숨을 잃어야 오히려 정상인 것을..
어찌 이렇듯 신묘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요!
아니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이런 상태를 유지하게 하다니
얼마나 잔인한 조화 속이란 말입니까!
이때였습니다.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운 저 처참한 존재로부터
비교적 또렷한 육성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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