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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초월(超越)을 거니는 고독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4. 30. 10:29
먼 옛날에는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었다지요.귀찮은 족속이 먹이를 가지고 장난치거나
앙탈 부리며 대열에서 이탈할 때,
족장은 달려들어
그들의 꼬리를 잡아당기면 되었어요.
덜 미운 놈의 꼬리는
지그시 잡아 꾹 눌러 겁만 주었고,
많이 미운 놈의 꼬리는
끊어질듯 당기는 것도 성에 안 차
이빨로 물고 잘근잘근 씹었대요.
너덜거리는 꼬리를 강물에 담그어 식히면서
그 어지간한 족속은
눈물 대신 돌을 갈았어요.
퉁퉁 불은 꼬리를 바위에 걸쳐놓고
정성껏 다듬은 돌칼을 들어
한 번, 두 번, 서너 번 내려찍었어요.
머언 훗날,
귀찮은 족속의 후손은 눈물 대신 언어를 달굽니다.
그들에겐 잡힐 꼬리가 없습니다.
없는 꼬리를 잡아당길 눈먼 족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꼬리의 흔적은
그들 몸 안 구석구석을 떠돌기 때문입니다.
성가셔 덥석 물고 싶을 때마다, 후손은
정성 들여 뭉쳐 놓은 시뻘건 언어들을 신나게 삼킵니다.
그러면
꼬리의 망령은 뱃속을 휘저으며
뜨거운 언어 뭉치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군요.참으로 난감하게 말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알록달록한 호흡이 있어요.영악한 자비가 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잔인함이 있어요.
잔인하여 구름이 생기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요.
잔인하여 강이 흐르고 햇볕이 쏟아지고 만물이 자라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부지런한 사랑이 있어요.
고함질러도뜀박질을 멈추지 않는, 가는귀먹은 사랑이 있어요.
그 사랑은 분주하기도 하여
그 사랑 때문에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눈이 나리고 계절이 바뀌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게으른 죽음이 있어요.
죽음이 게을러 우리는 모여서 떠나보내요. 슬퍼하고 잊어버려요.
그렇게 즐기고 말아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없어도 될 투정이 있어요.
철든 자도 침을 삼키는, 시치미 떼는 기대가 있어요.
별한테 떼를 쓰고 바다에게 졸라댈 투정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만삭의 포만감으로 발아해요.
들뜬 시간의 뚱뚱한 호기심이 땀 흘리며 유원지를 맴돈다.
놀이기구가 움직이는 대로,
시간의 때 낀 머리카락이
지껄이는 바람과 엉키어 구른다.
하늘은 기분 좋게 위아래로 흔들리고,
허공의 경쾌한 율동이 구름의 덜미를 잡아 돌린다.
회전 방향으로, 길어진 비명이 튕겨 나간다.
수직으로 날아간 공포는 땅을 뒤집어 하늘을 펼치고,
수평으로 날아간 환희는 산을 뒤집어 바다를 펼친다.
놀이기구에서 내리면,
지친 시간의 홀쭉한 달관(達觀)은
조용히 유원지를 빠져나와 허공의 균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 끝없이 펼쳐진 침묵하는 호수에 빠지기 위하여.
깊이, 힘주지 않고, 위로 가라앉기 위하여..
비좁은 천공(天空)으로부터 무지갯빛 해몽(解夢)을 받고무색의 백일몽 뿌려 올리는 천진한 얼굴들
참 많기도 하다.
주름 잡힌 얼굴이 저리 하얘지려면
얼마나 강렬한 이상향을 쐬어야 할까.
유구한 정성에 천국이 다 펼쳐지는구나
선녀들의 현란한 춤사위에 감읍하는
원형(圓形)의 행복들.
중력에 순응하는 투박한 현실의
살을 떼고 뼈를 떼고 혼을 떼어 붙인
백옥 같은 얼굴들
동안(童顔)의 하나님들.
아리따운 우주를 홀리는 위성안테나들이여.
공복에 강소주.바랜 소망을 게우고 또 게우고
쓰디 쓴 위장을 훌렁 뒤집어
노오란 의지가 구강까지 범람하면
요 잘난 혓바닥을 태울 수 있을까.
쉿!
점잖게 감상하실 준비를 하세요, 아빠.
찬란한 교향곡이 연주될지 모르잖아요
정신 차리시고 졸지도 마세요 제발.
타는 혓바닥의 추진력이면,
뜨거운 입김이 총알처럼 날아가서,
대기권에 붙어 굳은 혓바닥들을 동그랗게 뚫지 않을까.
눈을 감아도, 다가오는 현(絃)의 진동이 보여요음표 말고, 흐르는 소리가 잠시 귀에 고여도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져요
화려한 멜로디 말고, 그냥 흐르는 소리가 보글보글 시공을 끓이고 있어요
제 손을 잡고 저의 공명(共鳴)을 느껴보세요.
아들아, 흐르는 네가 잠시만 입 안에 고여도
다 자란 내 혀는 조용히 타는구나.
아름답게 자란 저 장한 혓바닥들이 화형 당해야
장중한 진혼곡은 비로소 날아오는구나.
뜨거운 입김이 후우 불어 타오르는 저를동그랗게 뚫린 대기권 위로 드리우셔도 돼요.
중심의 중심에서 출항하는 U.F.O.의
곱디고운 파동이, 사랑스러운 당신과 공명하려고
영롱한 입질을 그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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