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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엉뚱한 연정(戀情)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2. 4. 23:43
이때, 구세주(?)의 목소리가 달아나려는 정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차 철용! 사랑싸움은 보금자리에서나 하시지.
뭐야?!
노랗게 흘러 내리던 세상이 다시금 윤곽을 갖추어, 안경 너머의 반전된 현실을 보여 주었다.
뜻밖에도 건장한 뺀질이 이경택의 손이 철용의 두꺼운 팔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운동장에서 축구하다 들어온 그가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야, 이 무식한 놈아. 미스 나 때릴 때가 어딨다구..네 한방이면 오늘 초상 치러야 돼. 너 쇠고랑 차고 싶냐?
뭔 일인진 몰라도 그래, 천하의 차철용이 요런 피래미한테 주먹질했다고 하면,
저기 날아다니는 파리 새끼가 웃겠다.
넌 상관할 일 아냐! 이 손 못 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철용의 주먹은 어느새 반쯤 풀어져 있었다.
비록 덩치는 그보다 작았으나 운동으로 단련된 잔근육의 다부진 몸에다 만능 스포츠맨인 경택이를,함부로 대할 수 있는 녀석은 전교에서도 거의 없는 터라, 철용이 또한 그에게만은
주특기인 찝쩍거림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경택이 싸움질하는 모습을 교내에서는 거의 볼 수 없지만, 그가 주장을 맡아 다스리다시피 하고 있는 배구부엔 한가닥씩 하는 녀석들이 득실대었고, 학교 밖에서 그가 펼치는 (펼친다고 알려진) 피 튀기는 활약상이무성한 소문에 실려 입에서 입으로 교내에 쫙 퍼진 지도 오래였으므로,
그의 카리스마에 도전해 봤자 득실을 따지기가 애매할 것 같아서,
복잡한 것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철용으로선 - 배알이 꼴리는 일이긴 하나 - 경택의 영역을 넘보지 않고
그의 수수방관에 의존하여, 반에서의 "반쪽짜리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단순, 무식, 경박, 난폭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치는 철용이와 달리, 경택이는 - 공부는 그저 그러하나 - 잡학에 밝아머리에 든 것이 의외로 많았고, 진중할 때 진중할 줄 알며, "약한 자는 절대 괴롭히지 않음"을 철칙으로 삼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약한 애들이 당하는 장면은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만큼 적당한 정의감까지 지니고 있어,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꽤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조숙한 마음과 몸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여유로운 넉살로나이 많은 선생님들과도 친밀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그의 당당함을 아이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여자 앞에선 주변머리 없이 어눌하기만 한 칠득이 철용과는 다르게,여자를 밝히는 만큼 남자다운 패기와 세련된 매너로 실제로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캡이었던 경택은,
사귀는 (사귄다고 추정되는) 여자친구만 벌써 서너 명이 넘을 정도였다.
비록, 여자들 앞에서 잘난 척 으스대는 증세가 심한 편이었고 "여자 밝힘증"이 조금 과한 나머지성적 농담을 (예를 들어 치마 입은 여교사에게, "선생님, 다리 참 예쁘시네요"라던가.. 물론 이것은 가장 가벼운 사례임.) 일삼아 여선생들과 심하게 토닥거리는 상황극을 자주 연출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그의 명성(?)에 결코 흠집은 되지 않았으며,
대다수 보통의 얌전한 아이들에게 대리 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는 영웅의 면모로
부각되는 계기를 오히려 만들어 줄 따름이었다.
이에 반해, 비굴한 변태 차철용은 아이들에게 그저 환멸의 대상일 따름이었다.그의 위세에 눌려 직접 표현은 못하고들 있지만..
너, 미스나랑 노닥거리느라 축구하러 나오지 않은 거냐?
이번 주 토요일에 3반하고 시합하기로 했는데, 든든한 수비수인 네가 빠지면 말이 안 되잖아!
걔네들 실력이 만만치 않다던데..우리, 연습 좀 해야겠더라. 내일부턴 점심시간에 꼭 나와! 알았지?
경택의 전략(?)적인 칭찬 한마디에, 그만 입이 헤 벌려진 철용.
단순함의 첨단을 달리는 녀석답게 그 순간부터 지수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경택이의 자리로 건너가 축구 시합과 포지션에 관련된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앞자리에 올망졸망 앉아 있는 잔챙이 녀석들에겐 관심은커녕 아예 존재마저 무시하곤 하는 경택이므로일말의 호의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덕분에 지옥과 같은 곤경에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던 지수로선
그가 진심 고맙기만 하였다. 따라서 기회를 봐 감사의 표시를 하려 해도, 수업시간 외엔 교실에 좀처럼 붙어 있지 않는
그의 활달한 습성 탓에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뿐더러, 극도로 말수 적은 지수가 6반의 카리스마 경택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는 자체도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일이긴 했다.
평소, 박력 있고 적당히 터프한 마초 기질과 이지적인 풍모 그리고 경박함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활달한 유머 감각이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경택에게, 막연한 친밀감을 느껴왔던 지수.
떨어져 있는 자리만큼이나 두 사람이 가까워질 건수는 극히 드물었기에,이미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고 있는 그에 대한 지수의 환상은 더욱 부풀어만 갔다.
복도나 화장실에서 그를 마주치거나 그가 곁을 스칠 때면 왠지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유사 동성애적 잠재 심리가 살포시 머리를 치켜들 무렵, 경택이 본의 아니게 기사도를 발휘하는
상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니, 이를 기화로 지수의 금지된 짝사랑은 (그저 짝사랑으로만 당연히 끝나 버림.)
현실에 내려와 발을 붙이게 된다.
그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 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 말을 걸어보겠다는 생각은 거의 포기하였고,고마움에 대한 성의 표시로 간단한 메모와 함께 간소한 선물을 준비하였으나,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자꾸만 의식되어
그의 책상 속에 넣어 둔다는 "긴급 작전"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하였다.
설령 선물이 무사히 그의 손에 들어간다 해도 그가 어떠한 태도로 나올지는 미지수여서, 지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물을 계기로 그와의 채널이 열리고 고마움을 말로써 자연스레 표현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소심한 지수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그의 놀림감이 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든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따위 행동은 경택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그였지만, 우유부단한 소심증은 결국
선물 전달을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일과는 별개로, 경택에 대한 일종의 순정(?)은사라지지 않고 그의 뇌리에 엉겨 붙어, 지속적으로 사춘기적 감성을 삐딱하게 자극하였다.
다른 애들이 미스나라고 놀리듯 부르면 몹시 불쾌하고 삶의 회의까지 들 정도지만, (특히, 민호와 철용, 기수 등이 부를 때면 진저리가 쳐짐.) 어쩌다 간혹 경택이 "미스 나!"하고 부르는 경우가 생기면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지수였다.
사실, 경택이가단순히 놀려대기 위해 그에게 고의로 다가가 쓸데없이 미스나를 연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집요하게 괴롭히는 비겁한 짓거리를 습관적으로 혐오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나, 우선은
젖비린내 가시지 않은 애송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서라고 보는 게 옳겠다.
학년 교사들 대부분이 지수를 미스나라고 부를 만큼 그는 학급 차원을 뛰어넘는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고,이렇듯 "미스 나"가 전교의 명물이자 스타(?)로 거듭나는 데엔 - 짐작할 수 있듯이 - 담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담임의 음험한(?) 의도는, 어른이라 그런진 몰라도 좀 더 지능적이었다.
학생들은 단순히 불쾌감을 유도하기 위해 빈정거림을 뇌관으로 "미스 나" 미사일을 무차별 발사한 데 반하여,"미스 나" 병원체에 어지간히 면역되어 웬만한 자극으로는 약발이 통하지 않는 지수를 효과적으로 희롱하기 위해
담임은, 그의 좀 더 근원적인 내면을 소리 없이 건드리는 "미스 나" 중성자탄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으니..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기는" 명랑한 학급 분위기를 고양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타발적 분위기 메이커로"미스 나"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자존감의 날이 무디어진 지수의 마취된 감수성이 깨어나기 전에
6반의 명실상부한 마스코트는 "미스 나"임을 세뇌시켜, 그의 무의식이 스스로 "귀여운 미스나"임을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들었는데, 이야말로
의식의 혼란과 심리적 괴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증폭시키는 (비정한 어른만이 구사할 줄 아는)
간교한 술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이런 고단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지수의 고뇌에 바람을 불어넣어"존재의 참을 수 없는 경박함" 위로 그것을 두둥실 떠다니게 하고 말았다.
이른바 "긍정적인 방식의 잔인함"을 뇌관으로 "미스 나" 핵폭탄 한 방이 화기애애하게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교무실에서의 잡담을 통해 담임의 사주(?)를 받은 천진한(?) 학과목 교사들이,
그들의 눈엔 착하고 똑똑한 모범생으로만 보이는 지수가 그저 귀엽고 이뻐서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미스 나"를 연호하기만 하면,
그들은 "중성자탄"의 뇌관 구실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 된다.
담임의 이 같은 가상한(?) 노력에 힘입어,지수를 깔보고 이유 없이 싫어하던 아이들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긍정적(?)인 쪽으로 변하였고,
인기 스타 "미스 나"를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놀려댈 줄 아는 여유가 그들에게도 점차 싹트기 시작하였다.
(단, 차철용, 권민호 2인방을 비롯한 몇몇은 제외!)
한 아이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음성적 "집단 놀림"문화를 양성화하여 골치 아픈 부작용을 (말다툼, 싸움, 린치, 안 좋은 소문, 체벌, 징계 등등..) 최소화한 담임의 눈물겨운(?) 숨은 공로 덕에,교감 이상 고위급 어르신네들의 우려 및 그들의 나지수 과보호로 인한 잡음과 말썽의 소지는 사전에 불식될 수 있었다.
미스나 괴롭힘의 양상이 음지적인 비극성을 고수하거나 더 악화될 경우, (불쌍한 스파이 지수의 본의 아닌 고자질로 정보를 장악한) 높으신 양반들의 "알아서 기는 식" 호들갑은가해자 비난의 수위를 높여 교내에 한바탕 징계 파동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고, 그리되면
담임 또한 그들의 책임 추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리란 것 또한 불 보듯 뻔한 이치이기에,
두뇌회전에 특화된 그로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였으리라.
어쨌든, 담임의 치밀한 술수 덕택에 지수는"공식적인 미스나"로 거듭나는 영광(?)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렇게나 획기적인 분위기 반전의 물결을 타고, 철용이의 야비한 괴롭힘도"긍정적인 지원" 아래 한층 더 버전 업 될 채비를 갖추게 된다.
철용교(敎)의 제물로 전락한 지수에 대한 (가느다랗게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던) 동정 여론이
중성자탄의 위력에 눌려 그마저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교주 철용의 - 제물에게 가하는 - 의식(儀式) 내용이 가일층 간악 치졸해지고 변태성은 농밀해졌는데도,일단 틀이 잡혀 굳건히 뿌리를 내린 "담임의 양성화 전략"은
고통이 변주되는 무거운 잔혹극을 아이들 사이의 흔하디 흔한 "콩트 같은 해프닝"으로 변모시키고 말았다.
긍정의 마력은 대단하여, 관객들은마리오네트 미스나의 비통한 절규를 파랑새의 지저귀는 노랫소리로 들을 줄 아는 밝은(?) 심성을 지니게 되었고,
전처럼 철용이 "이르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위협하지도 않는데 굳이 담임께 일러바쳐
미스나 주연의 흥미만점 영화 "킹콩"을 (여기서 킹콩 역할은 당연히 차철용.) 즐길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려 들지 않았으니,
교사들의 동선(動線)을 절묘하게 피해 가며 의식을 집전하는 철용의 정신 나간 짓을 막을 자
이제는 정말이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정의의 사도 경택이는 활동 반경이 워낙 넓어좁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에 고주알미주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철용과의 관계를 오해한 다음부터 지수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점차 식어가고 있던 상만이 역시
담임이 주도하는 대세에 쉽게 함몰하여,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미스 나"의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를
멀뚱멀뚱 방관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더욱이,남 앞에 나서서 논리적으로 주장을 펴는 일엔 완전 숙맥인 지수가
적(敵)이나 다름없는 담임에게 달려가 자신이 처한 괴로운 상황을 피력하고
절망적인 왕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땅한 조치를 호소하는 일은,
지구가 공전 궤도를 이탈하는 것보다 일어날 확률이 희박하였다.
설사 그러한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미스 나 희롱을 위한 범연합"의 사령탑이자 정신적 지주인 담임이
자신의 존재 기반을 허물어뜨려 가며 "미스 나"에 대한 지수의 투쟁을 적극 지원할 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겠다.
그가 대체 무슨 해결책을 제시해 준단 말인가.
민호와 철용이를 퇴학이라도 시킬 것인가 아니면 지수를 전학 보내거나 다른 반으로 옮겨 줄 것인가.
담임에게 그러한 직권도 없겠지만, 술렁이는 기미만 보여도 교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현명한(?) 그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자충수를 둘 리 없지 않은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순진한 아이를 감언이설로 잘 달래어"좋은 게 좋은 것이다" 란 모토(?) 아래 진행되고 있는 "미스나 스타 만들기" 작업에 주인공이 적극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는 정도일 테지.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가 당하는 모욕이 가까운 사람에게 밝혀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지수의 성격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학부모 내지는 그 대리인이 불시에 학교로 들이닥치는 불상사를 미리미리 예방하는 한편,
동료 교사들의 측면 지원으로 자동 발사된 "미스 나" 세례가 지수의 혼을 적당히 빼놓으면,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 미스나의 화려함과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을 과장되게 역설하면서
군침 도는 당근 하나를 꺼낼 테지.
"귀여운 소녀 미스나는 앞으로 있을 모든 단체 기합에서 열외된다! 왜? 미스나는 연약한 여자니까!!"
지난번 악명 높은 "누드 페스티벌"로 곤욕을 치른 바 있는 그로선 담임의 은근한 약조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고,6반의 명물 "미스 나" 탄생을 위하여 은연중에 협조하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현실 앞에
결국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6반의 마스코트를 아낄(?) 만큼 여유로워진 대다수 급우들과는 달리, 민호는 그의 계집애처럼 구는 꼴 자체가 역겹기만 하였다. 그러니, 그 역겨운 모습으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수가 곱게 보일 리 있겠는가.
더군다나, 매번 단체 기합 때마다 또는 체육 시간에 힘든 운동을 할 때마다빠짐없이 열외의 안락함까지 꼬박꼬박 향유하는 그가 (소외의 차원을 높여 인성을 박탈하고 인형으로 고착시키려는 고단수 계략임을 죽었다 깨도 눈치채지 못할 민호로선) 너무 얄미워,
시기심의 화신 권민호의 잠시 주춤했던 악랄한 활약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담임의 눈치를 재주껏 살피며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한편,공들여 기획한 "미스 나 열풍"을 경쾌한 분위기로 유지하는 데 있어 유일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골칫덩이들(차철용 권민호)을 철저하게 방관한 채, 그들의 악행을 고스란히 몸으로 때우는 지수에게
두 악역의 부각 방지를 전적으로 떠맡긴 무책임한 담임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산인지,
"미스 나 중성자탄의 음모"를 적절히 배후 조정하면서도
꼭두각시들과 악역들 (다른 교사들, 반 아이들 및 "지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작은 악당들)이 그의 진을 빼놓는 동안
본인은 더 잘해주는 척하며, 그로부터 (그의 집안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 떡고물은
그것대로 그냥 흘리지 않고 악착같이 챙겼다.
전략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하되 전술에만 약간의 변화를 주어두 마리 토끼 (지수에 대한 정교한 응징과 지수를 통한 세속적 욕구 충족)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후안무치한 수완이 발휘되고 있는 광경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지수가 그것을 일상적인 별명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쨌거나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주변의 정겨운(?) 희롱에적어도 겉으로는 괴로운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화기애매"한 기류가 6반을 중심으로 완전히 형성된 다음에야,
경택의 입에서도 자연스러운 호칭으로서의 "미스 나"가 자주 튀어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담임을 제외한 교사들이 악의 없이 그를 부르는 것과 같은 뉘앙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경택이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그의 입에서 미스나가 튀어나오는 빈도수만큼이나 드문 일이지만..) 오직,지수에게 용건이 있을 때나 아니면,
덕망중학교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여선생님 (고로 경택이 제일 좋아하는 스물다섯 살의 날씬한 음악 선생님)께
괜스레 "애교 섞인 장난"을 걸기 위해서 그가 고안한 방편을
실행으로 옮기는 때에 한하였다. 거의 대부분 후자의 경우이지만..
지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한 번도 자기를 헐뜯거나 놀리지 않는 그의 신사적인 태도가눈물 나도록 고마웠으나, 용기가 부족하여 그에게 내색하지 못하였고, 이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차에, 경위야 어떻든 그가 가끔씩 미스나라고 불러줄 때면그저 반가워, 기다렸다는 듯 호감 어린 눈망울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평소엔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항상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다니는 것이 습관이던 지수임에도,경택이 가뭄에 콩 나듯 불러 줄 때면
오래 쳐다봐 주길 염원하는 절절한 심정을 눈길에 담아 그의 강렬한 눈빛을 유혹(?)하는,
안쓰러운 대담성까지 보여 주었다.
처음엔 음악 선생님께 질투마저 느낀 그였으나,그녀를 놀릴 때 말고는 경택이 자기를 아니 미스나를 머릿속에 떠올릴 일이 없다는
슬픈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부터는, 음악 시간조차 기다려지는 애틋함만 남게 되었다.
하여튼, 불쌍한 미스나는외부 환경과 자신의 내면이 안팎으로 고문을 가하는 만신창이 정체성을 끝내 추스르지 못하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귀여운 바비 인형이 되어 갔다.
그게 차라리 편하였으니까..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승 기류를 타게 된 "미스 나 놀리기 열풍"은, 일종의 부작용으로 "미스 나 신드롬"을 낳게 된다.
이는,외모나 하는 짓이 지수 못지않게 여자애 같은 일명 "나지수 아류"들이
미스나 때문에 (이전엔 몰랐던)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고, 미스나의 불똥이 자기들에게도 튈까 봐 전전긍긍하며,
본인들을 대신하여 집중포화의 표적이 되어 있는 희생양 지수의 "핵우산" 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일반(?) 학생들보다 더 오버해서 미스나를 놀리고 멸시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래저래 적들만 늘어난 셈이니, 고달프고 기구한 그의 신세 더 말해 무엇하랴..!'지수 이야기 > 이상한 사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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