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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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상한 사랑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14. 17:34
그해 시월, 상준은 홍주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연지의 집에 부랴부랴 신방(新房)을 꾸몄다. 그 즈음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느긋하게 연애를 즐기다가 양가의 진정한 축복 아래 결혼식을 올리려던 계획은 물 건너간 일이 되었고, 시련 속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여 서울로부터의 기약 없는 희소식을 포기하고 결단을 강행하게 된 것도 막나가는 사랑에 맛 들인 두 연인에겐 그저 상큼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존재가 "중요하다 여긴 다른 현실 문제들"을 자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만든, 영향도 컸다.) 연지의 부모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염려해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였으나, 막내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리고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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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3. 11:34
상준과 연지의 꿈같은 사랑도, 아픈 현실 앞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육 개월간의 인턴사원 기간을 마치고 이듬해 삼 월 정식 입사하게 된 상준이 연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부모님께 그녀를 소개하고,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연지의 부모님으로부터는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왔으나, 분홍빛 꿈에 부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상준 부모의 심각한 반대였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구태에 끔찍이 집착하고 있던 그들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듯한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배 아파 낳은 새끼를 이뻐하지 않을 수 없는 "어미들의 선천적 본능"이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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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못 말리는 애수(哀愁) : 고질병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23. 22:28
옆에 누워 잠이 든 연지를 상준은 연민의 눈길로 내려다본다. 새근거리는 숨결을 따라 너울처럼 일렁이는 싱그러운 갈색 머리는 베개 가득 풍성하였지만, 전기스탠드의 빨간색 꼬마전구가 희미한 불빛을 드리우고 있는 고운 어깨선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길.. 아니, 차라리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이었으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동네를 주유(周遊)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흐트러진 이불을 가지런히 여미어 주고, 머리맡에 팽개쳐진 구닥다리 워크맨을 당겨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새벽은 아름다워]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 밖에는 지금 흰 눈이 펑펑 내리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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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희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22. 12:38
이그, 홀아비 냄새. 어쩜 방안이 이다지 궁상스러울까. 새삼스럽기는.. 나 원래 좀 지저분한 놈인 거 몰랐어? 에휴 말을 말아야지. 전에 내가 치워 주고 나서, 한 번도 청소 안 했쥬? 안 그래도 내일쯤 하려고 마음먹었었어.. 상준이 주섬주섬 흐트러진 방바닥을 정돈하며 말을 잇는다. 오늘은 제발, 맘에 안 들더라도 팔 걷어붙이지 말고 이불속에 가만히 있어야 돼!? 나중에 상준 씨 와이프 될 사람이 걱정돼요. 청소만 하다가 늙어 죽을까 봐.. 그게 네가 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큰데? 넌 지금 스스로한테 악담을 하는 거라고. 알기나 해? 장담 마세요. 누구 맘대로!? 그.. 그런가? 이거 괜히 섭섭한데..? 또 금세 풀 죽는 거 봐, 귀여워.. 호호호. 어흠, 됐고! 집에 안 들르고 여기부터 온 거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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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적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9. 21:30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지방의 도시는 싼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인 양 쉬이 잠들려 하지 않는다. 큰길 건너, 셔터가 내려진 슈퍼마켓 앞에 구세군이 서 있다. 여군을 포함 모두 세 명인 그들은, 오늘의 모금을 마감하고 들어 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진정, 소원을 들어 주시려는군요..' 바지 주머니에서 닳고 닳은 오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손아귀에 갇혀 있는 볼썽사나운 그것과, 건너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제복(制服)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상준은 야릇한 감정에 빠져 버렸다. `금박 입힌 바구니보다는 투박한 철제 냄비가 역시 제게 잘 어울리죠? 고맙습니다..' 허겁지겁 그들을 뒤쫓았다. 여기 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오늘 제 주머니에 남아 있던 전(全) 재산입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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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접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7. 20:03
나야, 인마! 나와 함께 공장으로 내려온, 학교 동문이자 인턴 동기인 친구 인혁이의 목소리다. 녀석은 어느새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야, 문단속이나 좀 철저히 하고 들앉아 있어라. 인마, 어떤 얼빠진 도둑놈이 여길 들어오겠냐. 어쭈 이 놈 봐라?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래, 병나발 좀 불었다. 한데, 넌 여기 웬일이냐. 잔무가 밀려 있어 크리스마스 기분 잡친다고 투덜대더니.. 지금 퇴근하는 길이냐? 보나마나 너 요 모냥으로 청승 떨고 있을 게 눈에 밟혀서, 이 형님이 위로해 줄 겸 들려 봤다. 짜식 생색은.. 어쨌든 고맙다 이렇게 문안 인사까지 와 줘서. 놀고 있네. 야, 애인 출타중이라구 이렇게 처박혀만 있을 거냐? 나가자! 내 한 턱 낼 테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니가 한 턱을 다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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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착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3. 16:37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레코드 가게에서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캐럴을 조용히 따라 부르며, 상준은 잔뜩 웅크린 자세로 길을 걷고 있었다. 십이 월의 매서운 바람이 황량한 "겨울의 도시"를 포위하면, 그 속의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처럼 고개를 움츠리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도, 영하의 차가운 공기는 성탄절의 분위기로 술렁이는 도시를 차분히 가라앉혔고 사람들의 들뜬 마음에 닿아 서리를 내리게 하였다. 그렇더라도, 상점들마다 내걸린 각종 장식물과 깜빡이 등 (꼬마전구)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