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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여인들 1
    지수 이야기/스토커? 스토커! 2025. 1. 22. 17:33



     

     

     

     

     

     

     

     

     

     

     

     

     


    민희와 지수가 "필라델피아"를 나왔을 땐 밤 아홉 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초여름이건만, 장마 초입이라 그런지 밤공기가 - 어울리지 않게 - 제법 스산했다.

     

     


    여고생 티를 완전히 벗겨 내지 못한 그녀의 얼굴이 짙은 화장 속에서도, 친근한 소녀미(美)를 발산하고 있었다.

     

    지수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재주껏 가누며 민희의 아담한 어깨에 아무렇게나 팔을 둘러 체중을 실었다.

     

     

     

     


    에효 이 오빠도 참.. 온더락스 한 잔에 이게 뭐야? 거기 있던 다른 오빠들하고 너무 비교된다.

    그 한 잔 덕분에 그래도 꽤 과감해지셨네? 이렇게 스킨십할 오빠가 아닌데..? 나야 나쁘진 않지만.. 호홋.

     

     

     


    도련님, 괜찮으세요? 이만 차로 가시죠.

     

     

     

    아니야, 이대로 잠시 걸을래. 그래야 깰 것 같아.

     

    중간에 빠져나오기 잘했지 아저씨? 걔네들하고 그 정도 놀아 줬으면 충분하잖아?

     

     

     

    그럼요, 도련님은 할 만큼 하셨습니다.

     

     

     

     

     

    체구가 왜소한 편인 지수는 단신인 민희에게조차 편안하게 몸을 기댈 수 있었다.

    21세 청년의 체격이 170을 한참 밑돌고 몸무게도 오십 킬로를 겨우 넘는다면 결코 건장하다 할 순 없으리라..

     

     

     

     


    오빠, 다 좋은데 살은 좀 쪄야겠다. 뚱보가 되란 말은 아니고 적당히..

     

     


    내 주머니 속에 들어가고도 남을 네가 할 만한 조언은 아닌 것 같은데?

     

     


    에잇 너무해! 나 쬐끄맣다고 지금 놀리는 거야?

    남자랑 여자랑은 다르잖아요. 나도, 탄탄한 몸을 가진 듬직한 남자한테 기대고 싶은 여자라고요.

     

     

     

    그러면서 아저씨는 왜 흘끔 보니? 마음에 들면 소개해 줘?

     

     

     

    아잉 들켰네 히힛. 보디가드 아저씬 거인이잖아. 내 사이즈엔 오빠가 딱이지.

    어멋? 그러고 보니 오빠 방금 질투한 거였어? 귀엽다 오빠. 후후..

     

     

     

     

     

    민희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지수는 차차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선명함을 되찾은 정신이 습관처럼 그려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오빠는 좋겠다 부자라서..

     

     


    민희는 가난해?

     

     


    예? 아니 뭐.. 가난한 건 아니지만..

    나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어서 돈 많이 벌고 싶어서 가수 하려는 거예요.

     

     

     

    그렇구나. 너의 인생엔 그런 목표가 있구나.

     

     

     

    응. 그래서 오빠 같은 사람이 내 스폰서가 돼 주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상상해 봤어요. 상상은 자유니까 헤헤..

     

     

     

    혹시 모르지, 한 십 년 뒤면 가능할지도..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네 재능이 활짝 꽃피게 된다는 전제하에..

     

     

     

    오빤 사람 설레게 하는 데 재주가 있다니깐! 희망 고문이면 나 삐친다?

    근데 십 년 후에 내가 성공해서 잘 나간다면 이미 스폰서가 있단 얘긴데, 그땐 나 비싼 몸이라

    오빠가 하고 싶어도 못한답니다.

     

     

     

    무서운 녀석.. 야망이 대단하구나.

    무명일 때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나타나는 후원자가 너한테 원하는 건 뻔한데 그걸 감수하겠단 말이지?

     

    내게 그런 걸 원한다면 번지수가 틀렸으니 다른 델 알아보렴.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어우 고리타분해. 고지식한 애늙은이 같다 오빠.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게 욕을 할까?

     

     


    당근이죠! 설마 나한테..?

     

     


    음.. 아니 그만둘게. 네게 욕먹으면 최악일 것 같다. 나도 그만한 눈치는 있어.

     

     

     

     

     

    빗방울을 그럭저럭 머금고 있을 (먹구름의 기세는 많이 잃어버린) 파리한 구름의 무리를 헤치고

    창백한 달이 반쪽이 된 얼굴로 나와서 지상을 기웃거렸다.

     

     

     

     


    큭큭.. 내가 꼬맹이처럼 보여도 쉽게 봤다간 다들 큰코다친답니다.

    함부로 대하면 사납게 짖는 수가 있으니 오빠도 조심하셔요. 특히 무시하거나 잘난 척, 금물! 알겠죠?

     

     

     

    그럴 것 같았어. 놀랍지도 않아.

    스폰서 운운하는 것도 네 속마음은 아니잖아. 그렇지?

     

     

     

    아닌데? 난 너무 현실적이라 탈인데요? 틈만 나면 부자의 삶을 꿈꾸는 순수한 여자랍니다.

     

     

     

    하하, 순수? 맞다. 이런 널 속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야말로 위선 떠는 속물일 테지 나처럼..

    넌 널 잘 아는구나. 너 순수한 거 맞아. 너무 순수해서 뻔뻔할 지경이야. 이래서 난 적당히 무식한 애가 좋다니까 하하하!

     

     

     

    칭찬이야 욕이야?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그래서 기분 좋아졌나 보네 오빠?

    그럼 됐어. 오빤 나 놀릴 자격 있어. 오빠 정도는 돼야 나를 비꼴 수 있지 아무렴!

     

    그런 의미에서 오빠는 스포츠카 뭐 키워? 나 드라이브 되게 좋아하는데..

     

     

     

    그딴 거 안 키워.

     

     


    어머! 예상밖이다. 오빠 같은 부류 사이에선 스포츠카가 기호품이라든데..

    안 믿겨요.

     

     


    나 아직 면허증도 없어.

     

     

     

    의대생이라 면허증 딸 시간 없다? 에이, 내가 오빠라면 아무리 의대생이라도 쉬엄쉬엄 즐기면서 살겠다.

    까짓것 일이 년 늦게 졸업하면 어때? 오빠 환경이면 악착같이 공부에 목맬 필요 없잖아? 오빠, 머리도 좋다면서요..

     

     

     

    날 끔찍이 사랑하시는 부모님께서 위험하다고 운전면허를 못 따게 해.
    대신에 내겐 아저씨가 있지.

     

     

     

    어머, 말 된다. 그러니까, 저 보디가드 아저씨가 오빠의 전용 기사님?

     

     

     

    기사 아저씬 따로 있어. 오늘처럼 루틴하지 않은 스케줄일 때만 아저씨가 직접 몰고..

     

     

     

    남이 운전해 주는 럭셔리 외제차도 안락하고 좋지만, 난 오빠가 모는 스포츠카 타고 싶어.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민희 너 정도면 나 아니더라도 태워 줄 남자 많잖아? 새삼스럽게..

     

     

     

    피, 꼭 말로 해야 알아? 에혀, 기대를 말아야지.

    하긴 이제 스물 갓 넘긴 오빠가 여자 마음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안 그래요? 도련님?

     

     

     

    후후, 얘가 아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스스럼없이 해맑구나. 그래, 이게 바로 우리 미니의 매력이지.

    너나 나나 (금방 가버리고 말) 어리고 순진한 이 시절을 우리의 방식으로 마음껏 즐기자꾸나.

     

     

     

     

     

    민희는 지수의 상체를 안다시피 하여, 자꾸만 비틀대는 그를 바로 세우려 애썼다.

     

     

     

     


    에고 힘들어! 똑바로 말만 잘하는 사람이 왜 이리 취한 척 비틀거려?

    내숭 떠는 샌님으로만 봤는데 이런 면도 있었네? 오빠 은근히 즐기는 거 아니야? 지금?

     

     

     

    너 앞으로 한 번만 더 샌님샌님거렸다간 가만 안 둔다?

     

     


    네 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참, 오빠!

     

     

     

    응?

     

     


    나.. 어때요?

     

     


    ...........??

     

     


    나, 마음에 드냐구요..


     

     

    얘가 갑자기 또 이러네? 무섭다 야..

     

     


    나, 솔직히.. 오빠 맘에 딱 들 만큼 이쁘진 않죠?

     

     

     

     


    지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제야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알량한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순간, 민희와는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한결의 미소 띤 갸름한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아까 같이 왔던 언니들 중에선 네가 제일 나았어.

     

     


    그래요? 아이 좋아!

    오빠가 이제 와서 립서비스 할 일은 없고.. 오빠 취향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호호..

     

    아무튼 그 말은, 내가 오빠 마음에 들었단 얘기죠?

     

     


    미니 네가 이렇게 어린애처럼 기뻐하니까 나도 좋네.

     

    한없이 발랄한 말괄량이 같지만 - 이처럼 날 끝까지 돌봐 주는 모습을 보면 - 한편으론 심성 고운 성숙한 여인이 느껴져.

     

     


    나라고 뭐 되바라지기만 한 줄 아세요?

    나 역시, 오빠의 순진한 점이 싫지 않다고요. 대부분의 부잣집 도련님들답지 않게 때가 덜 묻었다고나 할까..

     

     


    그건, 때를 묻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야. 너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난 온실의 화초일 뿐이라고.

     

     

     


    어머, 온실의 화초가 어때서요? 보기 좋잖아요? 듣기만 해도 따스해지는 느낌인데요 왜..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돋아나 이것저것 더러운 건 골라서 묻히는 볼품없는 잡풀보단,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가

    난 백배 천배 더 좋은 걸요. 당연히 부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내가 좀 천방지축이라 그런진 몰라도,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괜찮은 것 같아요.

    특히 오빠는, 뭔가가 있는 사람 같거든요. 돈 말고요. 고독의 향기가 스며 나온다랄까..
    금테안경 너머 우수에 젖은 듯한 눈매 하며..


    이 가슴속엔,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정열의 불씨"를 꼭꼭 숨겨 놓았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집게손가락의 길고 뾰족한 손톱으로 그의 가슴 부위를 콕콕 찔러보는 것이 아닌가.

     

     

     

     


    크크, 어울리지 않는 문자 쓰느라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는구나. 음, 아부가 특출나. 아니, 직업 정신이라 해야 하나..

     

     

     

    나참, 기껏 칭찬해 드렸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그게 뭐예요? 이래 보여도 나 고등교육 받은 여자라고요 흥!

     

     

     

    고등학교 나왔다 이 말이지?

     

     

     

    고등학교나 고등교육이나 그게 그거 아님?

     

     

     

    엄연히 다르지.

    그건 그렇다 치고 고등학교 때 국어는 잘했나 보네?

     

     

     

    국어뿐이겠어요? 참나..

    너무 무시한다 정말!? 의대생이면 다예요?

     

     

     

    농담이 심했다면 미안.

    그런데 빈정대며 놀리는 건 미니가 먼저 하지 않았나?

     

     

     

    이 아저씨가 점점..? 놀리긴 누가 놀려요?!

     

     

     

    아니면 동정인가?

     

     


    웬 동정? 오빠한테도 동정받을 구석이 있나요? 나 같은 무수리는 그저 부럽기만 한, 도련님인데요..?

     

    자, 자, 지수 씨.

    우리들 목소리가 가라앉는 걸 보니까 완전히 컨디션을 찾은 것 같네요.

    거리에서 이러지 말고 우리, 가라오케나 갈까요? 내가 그래도 명색이 반은 가수인데 내 노래 듣고 싶지 않아요? 오빠?

     

     

     

     

    저기.. 아저씨, 이 근처에 가라오케 있어?

     

     

     

    글쎄요.. 멀리 나갈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걸어서 찾아다니기엔 번거로울 듯합니다.

    날씨도 후텁지근한데 그만 차에 오르시죠. 

     

     

     

     

     

     

     

     

     

     

     

     

     

     

     

     

     

    마 비서님, 그간 안녕하셨죠?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정연 아가씨께서 이 시각에 어인 일로..?

     

     

     

    핸드폰이 꺼져 있는지 지수가 통 전활 받지 않네요? 어머니께 연락드릴까 하다가 바쁘실 것 같아서요..

     

     

     

    아 예.. 그러셨구나. 도련님은 현재 자제분들 모임에 참석 중이십니다. 아가씨도 아시죠? 정기적으로 모이는..

     

     

     

    그래요? 저야 정확한 날짜는 모르니까요..

    재미난 시간들 보내고 있나 보네요 핸드폰까지 꺼 놓아야 할 만큼..

     

     

     

    무슨 급한 일이라도..? 전달 사항 있으시면 제가 당장 전해 드리겠습니다.

     

     

     

    아, 별일은 아니고요.. 약속 날짜를 변경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제가 시간이 되니까 오늘 지수 만나서 얘기해도 되는데..

    모임 끝날 때쯤 연락 주시겠어요 마비서님? 귀가하기 전에 차 안에서 잠깐 보면 되죠 뭐..

     

     

     

     

     

     

     

     

     

     

     

     

     

     

     

     

     

    예? 정연이가요?

     

    음.. 차라리 잘 됐네. 걔랑 내키지 않는 데이트 의무적으로 하는 것도 이제 싫증 나려던 참인데..

    오늘 만나서 못을 좀 박아 둬야겠어요. 여기 주소 알려 주시고요, 천천히 오라고 하세요.

     

     

     

    함께 있는 걸 보게 되면 도련님이 좀 곤란해지실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얘는 보내면 되지 뭐..

     

    민희 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오빠 애인 오는 거야? 개인 플레이 하자고 해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좀 서운하네? 살짝 기대도 했었는데..

     

     

     

    어차피 넌 일하러 나온 건데 돈 받고 일찍 들어가면 좋은 거 아닌가?

     

     

     

    그렇긴 하죠. 근데 이런 기분 나도 오랜만이라서..

    솔직히 오빠 백 프로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왠지 자꾸 끌리던 중이었는데.. 쪼끔 섭섭하당.

     

     

     

    후후, 아까보단 애정 표현이 어째 미지근해졌네? 영업용 멘트라도 듣기엔 나쁘지 않았는데..

     

     

     

    칫, 오빠야말로 누가 잘나신 도련님 아니랄까 봐 나 같은 것한텐 금세 거리 두기 하시네..

    근데 오빠 생각보다 못난 거 모르지?

     

     

     

    알아. 남자로선 별로인 거..

    그런데 여자들은 보통, 남자가 껄떡거리는 거 안 좋아할 텐데?

     

     

     

    호호 바보,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오빤 이래서 매력이라니까..

     

    여자도 사람인데 끌리는 이성한텐 당연히 안기고 싶겠죠 드러내서 표현은 못하더라도..

     

     

     

    넘겨짚어서 미안..

    섭섭하단 의미가 그런 거라면 너무 아쉬워할 건 없어. 심심하면 자주 부를 테니까 귀찮아하지나 마.

     

     

     

    정말? 아이 좋아라!

    한데 나, 콜걸 취급은 하지 마요. 이래 봬도 쉬운 여자 아니라구욧!

     

     

     

    알지 알아! 자존심 강한 가수 지망생 아가씨.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자기 애인 얼마나 이쁜지 확인하고 싶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리고 자꾸 애인 애인 하지 마. 아직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니..

     

     

     

    안 될 건 또 뭐람. 그냥 아는 동생이라 하고 소개해 주면 되지..

    그나저나 아직 애인까지는 진도를 안 빼셨으면 이 미니한테도 오빠 애인 될 기회가 있단 얘기네요? 그쵸?

     

     

     

     

    어린 아가씨가 맹랑하군.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빨리 일어나소! 콜택시 불러 놨으니..

     

     

     

     

    아니야, 아저씨. 얘 말도 일리가 있네. 셋이서 노는 그림도 재미있겠어. 콜택시는 취소하세요.

     

     

     

    그러시다가 후환을 어찌 감당하시려고요.

     

     

     

    후환은 무슨..

    엄마 아빠보다 내가 위라는 거 잊었어? 아저씨?

    정혼자가 벼슬도 아니고, 쫄 필요 없어요.

     

    우리 사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이참에 걔도 좀 알아야 돼.

     

     

     

     

    정혼자가 뭐야 오빠?

     

     

     

     

    응, 아가씨는 몰라도 돼. 신경 쓰지 마요 알면 다치니까..

     

    도련님, 말씀을 좀..

     

     

     

    하하, 알았어 알았어. 아저씨 나중에 혼나지 않게 내가 조심할게.

    걱정 말고, 나가 있다가 정연이 오면 이 방으로 안내해 줘요.

     

     

     

     

     

     

     

     

     

     

     

     

     

     

     

     

     

     


    외계인들의 인공 행성을 연상케 하는 사이키 조명이 천장 중앙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밀폐된 룸 내부의 현실감을 희석시키는 가운데, 한 손엔 탬버린 또 한 손엔 마이크를 잡은 민희가 신나게 몸을 흔들면서

    한창 뜨고 있는 유행가들을 목이 째져라 불러대고 있었다.


    최신 히트곡들이 줄줄이사탕처럼 그녀의 입에서 이어져 나오는 동안, 지수는 푹신한 소파에 눕다시피 기댄 채

    건성으로 탬버린을 두드렸다.


    제풀에 지쳤는지 민희는 노래를 중간에 멈추고 다시 바싹 붙어 앉아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인 다른 한 개의 마이크를 그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나 잠깐 쉴 테니깐, 이제 오빠가 불러 봐.

     

     


    나 노래 못 불러..

     

     

     

    알아. 오빠 노래 못하게 생겼어. 그래도 불러. 이런 데 왔으면 같이 불러야 맛이지. 나 혼자 벌써 몇 곡이냐고 지쳤어!

     

     

     

    ................

     

     

     

    아, 재미없어. 이럴 거면 밖에 있는 보디가드 아저씨라도 부르자. 노래 잘하실 것 같은데..

     

     

     

     


    그때였다. 투박한 노크 소리가 두세 번 들리더니 마 비서의 외치는 듯한 굵은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도련님!

     

     

     

     

    호호, 저 아저씨도 양반은 못 되네.

     

    아저씨! 들어오세요! 우리 같이 놀아요.

     

     

     

     

    정연 아가씨 도착하셨습니다.

     

     

     

    어, 들어와!

     

     

     

     

    잘 됐다. 넷이서 신나게 놀면 되겠네.

     

     

     

    어허, 넌 좀 가만히 있어.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방음용의 두꺼운 문이 열리고, 이십 대 초반의 늘씬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지적이면서도 다소곳한 고전미를 풍기며 들어왔다. 그러나 의외로 패션에 있어선, 과한 세련미보다는 어린 나이에 맞게

    (약간의 촌스러움이 가미된) 풋풋한 언밸런스가 선택된 느낌이었는데, 아마 자택에 있는 코디네이터의 권유를 묵살하고

    본인의 고집대로 입고 나온 듯했다.

     

    깨알 같은 보석 장식이 드문드문 수놓인 흰색 조끼 안에 (몸에 착 붙는) 반짝이 재질의 엷은 분홍색 긴팔티를 입고

    아래쪽은 장밋빛의 짧은 벨벳 스커트에 검은색 발목부츠를 신은 모습이, 차분한 단발머리에 굳이 포인트를 준

    금빛 머리핀만큼이나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얌전함의 틀에 갇힌 앳된 그녀가 평소와는 딴판으로

    본인의 숨겨진 귀여움을 작정하고 발산하려 하나 뜻대로 잘 표출되지 않은 (살짝 미스매칭 된) 분위기랄까.

    자신의 스타일링을 스스로는 만족하고 있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마비서가, 현재 지수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귀띔해 준 모양이다. 그렇게 짐작해야

    그녀의 이런 무리한(?) 시도가 설명되고 이해될 것 같은 지수였다. 그의 착각이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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